지난 주 금요일부터 이번 주 일요일까지 딱 10일간 제주에 있습니다. 포장하자면 제주 10일 살이고 워케이션(Work + Vacataion, Workcation, 일과 휴가의 합성어)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어요. 제주는 5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씩 짧게 여행 왔는데 5년 차인 올해 10일이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아직 워케이션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발행합니다. 토요일 저는 버스투어를 하는 동안 이 글을 발행합니다.
인연에 감사합니다. 제주에 연고도 없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저에게 이런 행운이 어떻게 왔을까요? 지인이 제주에서 워케이션 3주를 간다고 했어요. 부럽다고 말했지요. 한 채를 혼자 쓰고 방이 하나 남으니 저에게 와도 된다고 하더군요. 막연히 부럽기만 했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던 제가 제주에서 워케이션 할 수 있을까요? 민폐일 것 같기도 하고, 모니터도 없이 일하는 건 불편할 것 같고, 저녁 약속이나 회식 등의 일정과 겹치는 것도 있고 갈 수 없을 거라는 핑계만 떠올랐어요.
망설이는 저에게 친구가 적극 가라고 권했습니다. 모니터는 임대도 가능할 거라며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민폐가 가능한지 물었어요. 역시나 가족, 이웃, 친지가 다 오가는데 다행히 한 주는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추가로 숙소를 얻으면 되니 총 10일로 제주 살이를 확정했습니다. 가끔 출장으로 노트북으로 일하기도 하니 모니터 없이 일주일 동안 일하기로 했습니다. 제주 관광지는 거의 다녀왔기에 이번엔 어디를 갈지 노션 페이지를 만들어 정리했답니다. 다음에 갈 곳까지 정리했으니 또 와야겠어요.
여행 중 오스틴(조만간 오스틴에 주재원으로 간다고 해서 제가 닉네님을 붙여봤습니다)은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궤영숯궁보멍 해설 프로그램을 마치고 함께 시오름에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죠. 돌아가는 길에 숙소가 같은 중문 쪽이라는 걸 알아서 오스틴이 저를 태워줬습니다. 혼자 여행을 왔으니 저녁도 혼자 먹을 것 같아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어요. 제주 여행을 많이 다닌 오스틴 덕에 대중교통으로 2시간 넘게 걸려 올 거리를 편하게 왔고, 밥도 함께 먹고, 주변 정보도 얻었어요. 오스틴이 알려준 군산오름은 2번이나 다녀왔고 짬을 내어 베릿내 오름도 다녀왔어요. 오스틴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운영하는 브라우니바에도 들렀답니다.
바이오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설한 비오피티아 타운하우스 안에 있는 수풍석 뮤지엄을 관람하거나,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박물관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제주곶자왈도립공원과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힐링하는 시간 모두가 좋았습니다. 예술과 숲이 함께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하니 제주에서 살고 싶네요.
중문 근처에 머무르며 어슬렁거리다보니 마치 동네 주민인 것처럼, 로컬 맛집을 찾아다니고 주변의 꽃과 나무를 자주 보며 이름을 찾아가는 산책 시간이 가장 좋았어요. 서어나무, 먼나무, 백서향, 서향, 동백꽃이 이제 친숙하답니다.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거나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를 읽으며 어린 프루스트의 마음을 따라가는 시간 또한 기억에 남을 겁니다. 인연과 기회로 가득한 제주살이로 행복의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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