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건 처음인데요

덜 울리는 항아리

직장 안, 밖의 나를 사랑하는 법

2024.08.07 | 조회 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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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7:30-9:00 오전 통합 보육

9:00-9:30 오전 간식

9:30-11:00 실내 놀이

11:00-12:00 실외 놀이

12:00-13:00 점심 식사

13:00-13:30 한글, 수 활동

13:30-15:00 낮잠

15:00-15:30 특별활동

15:30-16:00 오후 간식

16:00~19:30 오후 통합 보육 및 서류 작성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과를 보내는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 적응하기에 바쁜 1년이 지나고 2년 차 어린이집 교사가 되니 날마다 반복되는 삶이 숨 막히기 시작했다. 이어 높아진 연차만큼 복잡해진 업무, 함께 높아진 기대감, 그 기대감을 충족하기 위해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 그리고 또다시 7시 반에 출근.

   매일같이 5시간도 못 자는 나날들에 이끌려가니 몸이 아우성을 쳤다. 돈 무서워 못 맞았던 링거는 익숙해져갔고, 면역력이 떨어져 낯선 이름의 피부 묘기증이나 방광염이 생기기도 했다. 반 아이들이 열이 나면 나도 옮는 건 기본이었다. 그래도 나는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니까.

   새벽에 나갔다 밤에 들어오니 가족들과도 만날 새가 없었다. 서로 간의 대화는 점점 사라졌고, 일상 속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매번 뒤늦게 듣기 일쑤였다. 가족도 못 만나는데 친구는 웬 말인가. 그럴 여력도, 여유도, 체력도 없었다. 나의 인간관계들이 차츰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관계들을 챙기기보다 내 일을 해내야 했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니까.

   그렇게 내 삶은 오로지 직장밖에 남지 않은 삶이 되었다. ‘직장 안에서의 나만 있는 삶, 그 속에서 나는 직장에서 칭찬을 받으면 인정받는 조예지가 되었다. 직장에서 지적을 받으면 무능력한 조예지가 되었다.

   항상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부족한 점이 한구석 있기 마련이기에 실수하거나 무언가를 놓치는 순간이 생겼다. 그때, 누군가가 그 부분을 짚어주면, 오로지 나는 이것도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자책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아무것도 못하는 부족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했다.

   보람으로 가득 찼던 직장 일이 어느새 기계적이 되고 직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나오는 나를 발견했을 때, 번뜩 경각심이 들었다. 이렇게 지내서는 아이들을 돌볼 수도, 가르칠 수도, 더 이상 이 일을 지속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빨리 탈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동안 직장 일로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꾸역꾸역 시작해 보았다. 직장에만 매몰되어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무너진 건강을 위해 처음으로 운동을 배웠다. 거금을 들여 내가 좋아하는 베이스 기타를 사고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직장의 중요 업무를 잘하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도 들어갔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안해서라도 빠질 수 없도록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돈이 아까워서라도 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부담이 있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렇게 직장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어거지로 시간을 내서,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그 모든 것들을 했다. 남겨두고 가는 수많은 업무들에 마음이 무거웠다. 퇴근을 안 하고 남아있는 다른 선생님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직장에서 못다 한 일을 마치고 누군가 마취총을 쏜 듯 픽 쓰러져 자기 일 수였다. 그래도 1년 동안 그 시간을 악착같이 사수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직장 밖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천국의 계단을 1시간 넘게 탔을 때, 미친 듯이 그만두고 싶은 플랭크를 끝까지 해낼 때, “예지님은 워낙 성실하시니까라는 PT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 우직하게 노력하는, 그로 인해 변화된 몸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조예지를 만날 수 있었다.

   선망하던 베이스 기타의 묵직한 음색을 내 손으로 직접 낼 때, 막 걸음마를 떼듯 엉망진창이던 기타 잡는 자세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고 굳은 살이 생겼을 때, “예지는 재능이 있다니까!”라는 베이스 스승님의 말을 들었을 때. 도전의 기쁨을 느끼는 조예지를, 그로 인해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여 아마추어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조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고 싶은 욕심을 가득 감아 글을 적어낼 때, 그것을 글쓰기 멤버에게 보이자 푸실 님만의 분위기가 느껴져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 글쓰기 싸부님께 이 정도면 어린이집 교사 중에서 상위 0.3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만의 것이 있는 조예지를, 상위 0.1%가 되고 싶은 야망 있는 조예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 , 생각 등을 항아리로 개념화한 사티어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빈 항아리로 태어난다. ‘아-’라고 소리를 내면 울리는 항아리로, 살짝 건들어도 깨지는 항아리로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항아리의 안이 채워져 잘 깨지지 않는 단단한 항아리가 되는 것이다.

 

   나의 항아리는 직장에서의 경험이 담겨 절반쯤 채워진 항아리였으리라. 그래서 누군가 말했을 때 온몸을 다해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항아리였을 것이라. 하지만, 직장 밖으로 나가 다른 경험들로 나의 항아리를 채웠더니 이제는 제법 무게가 나간다. 직장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이전만큼 울리진 않는다. 그때 알았다. 직장에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직장 밖에서의 나도 있어야 하는 구나 하고.

   그래서 오늘도 퇴근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어 런닝머신 위에 나를 세운다. 자기 전 10분이라도 베이스 기타 위에 손을 얹어본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꺼내 이 글을 끄적여본다. 그렇게 깡깡- 거리는 빈 소리가 아닌 둥둥- 묵직하게 울리는 항아리가 되도록,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 본다.

 

내 항아리야, 잘 채워지고 있니?
내 항아리야, 잘 채워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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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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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심이

    0
    3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haeunoia

    0
    3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쓰니신나

    0
    3 months 전

    너무 잘 읽었어요^^ 술술 잘 읽히는 와중에 생각할 것과 글력으로 인한 감탄까지 선사해 주시니 참 좋으네요~^^

    ㄴ 답글 (1)
  • 반려산소통

    0
    3 months 전

    우와 너무 감동받으며 댓글 남겨요. 막내가 얼집에 다녀서 선생님들께 늘 감사항 마음이라 처음에 뿌잉 ㅜㅜ 하며 읽다가 상위 0.1프로로 만들어버리신 내공에 감화 받았습니다. 마쟈요 푸실님 글 넘 죠아요 🙏🏼 멋짐이 가득찬 항아리 잘 읽고 갑니다.

    ㄴ 답글 (1)
  • 세빌

    0
    3 months 전

    꽉 찬 항아리, 늘 채워져 가는 항아리(!)를 응원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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