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캠프를 다녀온 건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였다. 마지막 네 번의 항암치료 부작용은 허벅지의 심한 근육통이었는데 체력장하고 나서의 힘들었던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통증은 강하게 내 다리를 짓눌렀다. 방사선 치료 받기 전 조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치 상해를 입은 군인이 긴급히 도피하여 숨듯 강원도 고성에서 열리는 암 캠프장으로 향했다.
남편이 (지금은 없어진) 상봉터미널로 배웅을 해 줬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얼마던가. 암 캠프에 가보니 다양한 종류의 암을 가지신 분들이 계셨고 암의 현실을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암 캠프는 강의와 운동, 건강식, 힐링을 위한 명소 나들이를 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건강을 다루도록 치병(治病)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암 캠프의 강사이자 대표이신 분은 육종암 말기 셨는데 기적적으로 이겨내셔서 15년 이상 살고 계신 분이셨다. 자연치유로 이겨내신 분이셨는데 그분의 강의에서 암에 잘 걸리기 좋은 성격이 있다고 하셨다. 싫은 걸 싫다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 남한테 싫은 티 못 내고 꾹꾹 참는 사람 등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암에 걸리는 원인은 굉장히 다양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유전적인 원인이 가장 크고, 스트레스, 성격, 식습관, 운동 부족 등 여러 원인이 어우러져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만으로 단편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다시 암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지금껏 살아온 삶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재발한다는 것이다. 강사님이 말한 삶이란 생활 습관, 식습관뿐 아니라 나의 성격적인 부분까지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지하게 강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게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성격적인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암 캠프의 강사님도 육종암인 자신 또한 모난 성격들을 암을 계기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나는? 나는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우선 대표님의 암에 걸리기 쉬운 성격 이야기에, 마음에 찔림이 느껴졌다. 나 역시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남한테 기분 나쁜 티, 싫은 티를 못 내는 나였기 때문이다. 내 말로 인해서 남이 상처받는 게 싫었고, 내가 기분 나쁜 티를 내서 남이 기분 나빠지는 게 싫었다. 그야말로 미움받는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거절할 줄 아는 용기도 부족했다. 왜 난 이렇게 밖에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도 그게 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나조차도 싫었다.
그러나 병이 암이다 보니까 나에게도 암은 충격은 충격이었는지, 거절 못 하는 나,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나에서 탈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탈피해야만 했다. 친구가 만나자는 약속을 할 때도 예전과는 달리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일정을 보고, 또 나의 컨디션 상황을 봐서 시간이 나는 날임에도 쉬어야 하겠기에 약속을 거절하였다. 좋은 방법은 바로 약속을 승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내 일정을 보고 알려주겠다고 한 박자 길게 잡는 것이었다. 또한 무의미한 모임에는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번은 내가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기로 했을 때, 한 후배가 얼굴을 찡그리며 염색도 안 하냐고 했을 때, 그때는 바로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 곰곰 생각했다. 암 캠프의 강사님은 하고 싶은 말, 되받아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용감하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헤어지고 왔기 때문에 곧바로 되받아치지는 못했지만, 나는 카톡으로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였다.
내가 아직 암이어서 치료를 받은 상태고, '경피독'이라 해서 피부로 스며든 독은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염색을 하지 않는 거라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차분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후배는 너무 미안해하며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 사과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미안하다고 했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큰마음을 먹고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됨을 보고 내가 상대방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을 계기로 내 의사를 좀 더 분명히 밝히게 된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아직도 많이 미숙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내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암이 참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암을 통해 환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건 분명하다. 나도 그랬다. 암이 이 정도로 끝난 것만도 감사하다. 하지만 어느 영화 대사처럼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적 성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암을 겪은 지 칠 년 차가 되는 해인데, 상대방으로부터 원망이나 타박 등 안 좋은 얘기를 접했을 때, 옛날 같았으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괴로워했고 또 그 영향이 오래 지속되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타박을 듣는 일이 생겨도 이제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훌훌 털게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 마음도 좀 더 정리되고 ‘잘못한 것은 고치면 되지’와 같이 생각의 레퍼토리가 바뀌었다. 쉰 살이 넘어서 가장 잘된 점이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더라도 나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성장이다.
이렇게 성장한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고 나이가 들어 좀 더 나 자신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흐뭇하고 뿌듯하다. 물론 상대방이 나의 잘못에 대해 지적한 것은 ‘그래, 이제 알았으니 고치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되어 취할 것은, 취하고 흘려들을 것은 흘려듣게 되었다.
아마 나의 삶을 다 바꾼다고 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삶으로 인해서 암이 다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하게 일 년에 한 번, 암 추적 검사일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오그라들고 참 겸손해진다. 암을 겪었던 친구들도 늘 공감하는 얘기다. 암 앞에서는 그 누구도 당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암 이후의 삶은 신이 내게 덤으로 주신 또 하나의 삶이라 생각한다. 이번 삶에선 좀 더 나 자신을 나 자신답게 가꾸고 표현하는 삶으로 색칠해 나가고 싶다.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필자 소개>
필명: 영심이
살아오면서 다양하게 굴곡진 삶을 당당하게 맛보며 살아온 그녀. 1990년대 만화 캐릭터 영심이처럼 밝고 활기차게 그리고 힘겹지만 가뿐하게 어려움들을 이겨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욱 행복하다. 2022년 세움북스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매일 SNS에 글을 올려왔고 2024년 <쓰고 뱉다 23기생>이 되면서 그녀의 글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댓글 5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쓰니신나
할 말이 있으면 하면서 스트레스를 다스려야 하네요! 힘겨웠을 경험을 용기있게 돌아보고, 필요 가득한 글로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영심이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세빌
한의학에서 암과 비슷한 것을 부르는 말 중에 '적취'라는 것이 있는데요. 쌓이고 모인다는 뜻을 가졌더라고요. 저도 착한아이가 되려고만 하는 모습이 많은데, 그걸 벗으려 해도 잘 안 되는데, 용기를 내어 봐야겠어요. "나를 나답게 가꾸는 영심이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아~ 적취라는 말이 있군요!!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참으면 병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화평키 위해서는 적절히 그리고 적절한 때에 해야 하는데 지혜가 참 필요한 것 같아요. 감사드려요 세빌님~~ 세빌님의 세빌은 세빌리아의 세빌인가요?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떠올네요 ㅋㅋ 헛소리 죄송합니다.~~ 즐거운 9월 되세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세빌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세빌로이 쿠로발 이안>인데 줄여서 <세빌>이란 애칭을 가졌더라고요. 그 주인공이 멋있어 보여서 쓰는 이름이에요^^ 좋은 9월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