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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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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을 마무리하며
메일리작업은 일종의 치유의 리츄얼이라 할 수 있다. . ‘오픈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쓰고뱉다의 글쓰기 과정 최고 단계인 숙성반을 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나의 고민이었다. 메일리 서비스를 통한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7편은 나의
자율적이고 풍성한 삶을 위하여(2)
어느새 이뤄진 어릴 적 꿈. ‘나는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본질에 맞닿아잇는 질문들이란 나에게 사치였다. 주어진 환경이 거기까지 뚫고 가도록 도
뒤늦게 찾아온 성장통, 아팠지만 결국은 성장해 내다
힐링, 이제 싫은 건 싫다고 말할래. 암 캠프를 다녀온 건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였다. 마지막 네 번의 항암치료 부작용은 허벅지의 심한 근육통이었는데 체력장하고 나서의 힘들었던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걷기가 힘들 정
자율적이고 풍성한 삶을 위하여
클라리넷: 내가 마흔이 되어서 선택한 첫 취미 그리고 깨달음. 결혼이 많이 늦어지고 아이도 낳지 않기로 하니 다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자녀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남편 얘
뜨거운 열정 시대를 후회없이 살다
사회복지사 시절, 제2의 인생 엄마의 마음으로. 조금은 빠른 제2의 인생이었다. 학부를 전산 전공을 살려서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고객지원센터와 프리랜서 강사 그리고 대학 연구소의 일원으로 약 15년간 일을 했다. 그러나 전산 전
영심이와 왕경태의 결혼
연애에서 결혼까지 최악의 모습을 보이다.. 결혼하던 해인 2008년 초 만해도 결혼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화목한 것도 아니고 내 직장이 번듯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쎄, 어쩌면 그런
뜨거운 열정의 시대를 후회없이 살다
첫 번째 직장: 고객지원실 인포담당자. 감정형이어서 그랬을까? 좋아하는 일에는 굉장한 열정이 살아있었던 것 같다. 첫 직장은 외국계 컴퓨터 회사 고객지원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그 당시 일이 즐겁기는 했지만, 정직원
이제는 한번 말해볼래
엄마와의 화해 : 30대에 살짝, 그리고 50대에 완전히 회복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엄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열 손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처럼 부모님은 자식들 각각을 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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