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고민 중 한가지는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이지않을까싶다. 매일 다른 메뉴를 찾아 점심 시간마다 옮겨다니는 것 도 쉽지 않다. 아니 요즘은 점심 식사비용이 만만치 않아 메뉴 고르기조차 싶지 않다. 일도 힘든데 점심시간 만이라도 즐겁고 또 좀 쉬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 가게는 도시락 배달 전문점이다. 매일 도시락을 싸서 고객에게 배달한다. 그런데 주문할 때 고객들은 메뉴를 말하지 않는다. 그냥
"도시락 5개 보내주세요"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메뉴는 내가 정한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시장 상황에 따라 밑반찬도 내 맘대로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객 들은 불만이 없다.
손님이 왕이 아니라 사장이 왕이다.ㅋ
골치 아픈 메뉴 고민을 대신 해 준 덕이다.
남편과 둘이 운영하는 동네 가게이다보니 여러 가지 메뉴를 동시에 소화할 수가 없어서 하루에 한가지 도시락만 만든다. 월요일엔 제육볶음 도시락, 화요일엔 생선까스 도시락 이렇게, 한 달에 스무 가지정도 메뉴를 개발해서 고객에게 매일 색다른 도시락을 맛 보여 주는 것이다.
짧은 점심시간 안에 백개가 넘는 도시락을 배달하려니 배달 시간도 내가 정한다. 최적 노선으로 동선을 짜고 순차적으로 배달을 순식간에 한다. 시간을 아끼기위해 계산도 도시락을 수거할 때 한다. 단골들 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네 안의 병원과 약국, 카센타 은행 작은공장 등이 우리 단골들이다. 대부분 수년간 단골이고 10년이상 단골도 꽤 된다. 그러다 보니 단골들의 상황과 식성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고객들도 역시 우리를 잘알고 이해해 준다. 어쩌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오늘은 두부김치도시락이다.
잘익은 김치를 듬성 듬성 썰어 볶아놓고 돼지고기 목살을 따로 익혀서 야채와 참기름을 두르고 휘리릭 섞어준다. 재래 시장 안 손두부집에서 받아 온 고소한 두부를 먹기 좋게 썰어 둔다. 밑반찬으로는 계란야채범벅과 돌김무침 그리고 칼슘듬뿍 갈색 쥐치뼈볶음과 볼어묵볶음. 그리고 요즘 제철인 영양 부추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새콤달콤 양념장 만들어 살살 버무려 주면 색감도 식감도 좋은 겉절이 반찬이 된다.
이제부터는 그림을 그릴 차례이다.
오늘 밥에는 기장 쌀을 섞어서 보슬한 흰 밥사이로 노란 빛 구슬들을 심었다. 뽀얀 두부는 세 개를 가지런히 먼저 담고 붉은 빛 김치볶음은 돼지고기가 보이도록 두부 옆에 놓았다. 밑반찬으로는 노란 계란물에 초록 파송송 뿌려 범벅으로 담고 대비 되도록 검은 색 돌김무침을 옆에 담았다. 갈색빛 쥐치뼈볶음과 볼어묵볶음도 밋밋하지 않도록 물엿을 살짝 뿌려 반짝이게 포인트를 주었다. 그리고 초록색 영양 부추 샐러드는 오른쪽 윗 칸에 배치하고 빨강 노랑 파프리카로 화려함을 더했다.
국은 근대를 넣은 된장국이다. 미리 받아 놓은 쌀뜨물에 다시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먼저 내고 싱싱하고 푸릇한 근대를 넣어 한소끔 끓여주면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게가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오늘도 우리 단골고객들이 이 도시락으로 눈과 입이 행복하기를,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10분 쪽잠이라도 누리기를 바래본다.
도시락을 배달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기도한다. 한의원 실장님은 시아버지께서 된장국을 좋아하셔서 된장국을 사고 싶다고 한다. 도시락집이지만 단골이 원한다면 반찬도 판매한다. 에코 비닐백에 건더기 듬뿍 넣어 도시락 수거하러 가는 남편에게 부탁한다. 직장 생활하며 가족도 챙겨야하는 고객의 착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별한 부탁도 받았다. 안경점하는 사장님께서 이웃에 장애우부부가 사는데 반찬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어려워도 밥은 먹어야 하는데 그분들 딱한 사정을 알고 내게 부탁하신 것이다. 아픈몸으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가늠이 되니 거절 할수 없는 부탁이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넉넉하게 반찬 담고 밥까지 크게 담아 한 동네이니 그분 댁에 배달해 드리고 있다. 물론 안경점 사장님께서 매달 비용을 보내주신다.
행복한만찬이 행복한 반찬이 되는 날이다.
"사장님 ! 사거리 한의원에 갖다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
우리 두사람이 행복한만찬의 사장이고 회장이다^^ 남편이 내게 붙혀준 직함이다.
요즘엔 기분좋으면 "작가님"이라고도 불러준다.
이렇게 오늘도 피곤하지만 건강한 하루를 꽉 채웠다. 도시락을 회수해 오고 설겆이를 하고 장부 정리를 한다. 내일 장 볼 리스트도 작성하고나면 진이 다 빠진다.
나는 오늘도 도시락에 맘껏 그림을 그렸다.
쓰고뱉다-서꽃
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 60의 아줌마.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 중이다.
인생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 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
주고 싶어 쓰는 사람이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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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점심 고민을 하던 칠팔 년의 시간 속에서 '행복한 만찬'이 가까이 있었다면 정말 행복했을 텐데 생각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행복하세요. 😁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그러셨군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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