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많이 늦어지고 아이도 낳지 않기로 하니 다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자녀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남편 얘기를 하고 있고, 자녀들 캠핑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남편과의 카페 데이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자녀들의 친구들 얘기까지 하면서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감 영역이 따로 있는 듯했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슬프고 울고 싶었지만 어쩌랴! 그래도 적응해 살아야만 했다. 나는 나름의 멋진 삶을 살고자 고민했다. ‘아! 그렇지 취미 생활을 해 봐야지’라고 생각을 떠올리며 '악기를 배우고 앙상블에 들어가 연주자 생활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악기의 경우, 어릴 적 피아노와 대학교 때 배웠던 클래식기타가 있었다. 그렇지만 피아노와 클래식기타는 내가 선택했던 악기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배워보라고 해서 배웠었다. 이제 결혼도 하고 나름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내가 선택한 악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배울까 곰곰 생각해 보니,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가 떠오르면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생각났다. '그래, 이참에 클라리넷을 배워서 클라리넷 앙상블에 들어가 연주 활동을 해보자'라는 야심찬 생각에 클라리넷을 배웠다. 간절함에 의해 시작했기에 열심을 내어서 배웠다.
클라리넷 소리도 찬찬히 복식호흡을 해서 따라갔고 진도도 어느 정도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클라리넷만의 결정적인 어려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음에서 '시'음으로의 이동이 매우 어려웠고, 피아노와 연주하려면 조를 바꿔야 하는 이조악기였다. 그러니까 피아노로 '도'를 치면 '시플랫'음이 났다. 순간 ‘아뿔싸’라는 탄식이 나오며 괜한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오선지 노트를 사다가 어렸을 때 배운 조가 붙는 순서인 "파도솔레라미시"를 생각해 가면서 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계산했다. 집중해서 차근차근 보니 클라리넷을 피아노와 연주할 때 필요한 조바꿈 방식을 터득해서 실제로 교회 찬양팀에서 다른 악기들과 함께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바로바로 조바꿈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어느 정도 능숙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문화센터 선생님으로부터 앙상블 단원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받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입단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온전히 클라리넷에 올인하여 생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탈퇴하기도 좀 곤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직장에 책임자로 승진하게 되면서 한동안 클라리넷을 하지 못했고 급기야는 암이 발병하여 한동안 악기 연습도 할 수 없었다. 2017년 암치료가 끝난 후 요양병원에서 회복을 위해 두 달을 머무는 동안 남편이 서울에서 내 클라리넷 가방을 들고 요양병원에 왔다. 원장님은 작은 음악회를 열게 해 주었다. 나는 병원 원장님이 피아노 반주를 해 주시고 나는 클라리넷을 불었다. 다들 좋다고 박수를 치는데, 어느 까칠한 간호사가 웃으면서 “감정을 넣어야죠, 감정을~~~”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뿔싸'하는 탄성과 함께 정곡을 찔린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음악 연주를 하는데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정확한 한계치였다. 어릴 적 유치원 다닐 때도 피아노를 쳤지만, 감정이 들어가지 않고 '띵땅띵땅~' 치기만 했고, 중학교 노래 시험을 볼 때도 선생님께서 "목소리는 좋은데 감정이 안 들어가네"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클라리넷의 경우 악기 자체의 소리가 고와서 감정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잘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간호사분이 파악을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이건 악기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감정이 문제인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겼다. 무슨 악기를 연주해도 감정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했고 고운 마음으로 정성껏 나의 감정을 악기라는 통로를 통해 배출시켜야 하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악기를 분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흐물흐물 내 마음속으로 밀려왔다.
사람인 이상 내게도 감정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의 감정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에 신경이 쏠려 미처 감정을 표현 못 하는 줄 알았다. 아는 지인은 음악 연주에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악기로 곡을 연주하는 것이 좋아서 ‘룰루랄라’하고 감정이 차오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될 거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악기 연주하는 것이 내 취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악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친구들과 공감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악기 연주를 해서 연주자 생활을 하자고 한 것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사실은 종양 제거 수술로 인해 오른쪽 팔로 무거운 것은 되도록 들지 말라고 한 의사의 권고도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올라온 후 다시 클라리넷을 조립해서 들어보았다. 역시 좀 무거웠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감정표현의 문제는 비단 악기 연주에서 뿐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감정표현을 잘 못했다. 좋아하거나, 또는 좋다, 싫다 말도 하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나였다. 그나마 중학생이 되고서야 나는 내 감정표현을 말하는 것이 아닌 편지를 써서 표출하곤 했다. 사람을 대면해서는 감정표현은 잘 못했다. 지금도 싫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툴다. 싫거나 부정적인 감정은 내내 쌓아 두었다가 나중에 화로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화를 내지 못하면 마음에 쌓여서 혼자 앓거나 일기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클라리넷 이후에 선택한 취미들을 보면 코바늘 뜨개질과 글쓰기였다. 코바늘 뜨개질은 감정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차근차근 뜨면 뜨개질의 결이 부드러워진다. 뜨개질도 아롱지고 다롱져서 예쁘다.
내가 뜬 경우에는 결이 아주 부드럽지는 않지만, 결과물 자체가 워낙 예쁘게 나와서 감정표현을 고려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강사님 말씀으로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뜨면 된다. 또 고민이 많을 때, 뜨개질을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고민이 없어지는 그야말로 힐링 효과가 나는 재미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뜨개질 취미도 선생님이 멀리 이사 가셔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로 시작한 취미는 글쓰기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좋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고쳐야 할 점이 생기면서 조금은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 생각과 감정을 미려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직봉과 같은 취미이기도 한데, 배워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러나 힘들게 배운 만큼 보람도 크다. 뿌듯하다.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내가 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워낙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감정표현이 서툴렀다.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어떤 때는 감정 기복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악기던, 가창이던, 클라리넷이던 무슨 취미이건 간데 조금은 감정이 잘 표현이 안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기로 인정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꾸 내가 하는, 아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박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원래 나는 감정표현이 서툰 사람이니까 취미들에도 서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수십 년간 내 인생을 통해 ‘나는 감정표현이 서투르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클라리넷을 통해 태어나 처음 나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로 취미를 선택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성취감을 느끼며 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며 나아가 비록 내가 악기에 감정표현이 서투르더라도,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의 결론에 다다른 것도 참 귀한 깨달음인 것 같다. 앞으로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면서 내가 뭔가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나는 소중하니까.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필자 소개>
살아오면서 다양하게 굴곡진 삶을 당당하게 맛보며 살아온 그녀. 1990년대 만화 캐릭터 영심이처럼 밝고 활기차게 그리고 힘겹지만 가뿐하게 어려움들을 이겨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욱 행복하다. 2022년 세움북스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매일 SNS에 글을 올려왔고 2024년 <쓰고 뱉다 23기생>이 되면서 그녀의 글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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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나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취미생활, 영심이 님의 배움에 대한 열심이 열매를 맺은 것 같아요~♡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넘넘 감사드려요~~ 9월 한달 풍성한 삶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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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산소통
우와. 일단 저 코바느질 너무 좋아해서 감탄하며 읽고 봤어요! 가방 넘 멋지게 뜨셨네요! 제가 최근 쓰뱉러라 요양원에서 지내셨던 줄은 몰랐습니다. 취미를 통한 깨달음 나눔 넘 감사해요. 맘에 담아갑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넘넘 감사드립니다^^ 9월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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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색소폰과 통기타를 연주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악기에 감정을 싣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도 웃음으로 감정을 숨기면서 감정표현에 인색한 삶을 살아왔는데, 잊고 있던 제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하지만 감정표현이 서툰 면도 보드랍게 다듬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와 색소폰도 하셨어요? 통기타는 저는 코드를 못 외워서 포기했드랬어요 ㅋㅋ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넘 늦게 봐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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