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차별이 더 아프다.

#1 프롤로그 _ 착한 차별의 민낯

단추 하나로 깨달은, 우리가 몰랐던 선의의 폭력

2025.09.01 | 조회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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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요!"

 

얼마나 많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 말을 건넸을까. 칭찬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표정에 스치는 미묘한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착한 차별'이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몰랐다.

 

"여자인데 이런 일을 잘하네요."

"나이답지 않게 젊으시네요!"

"장애가 있는데도 이렇게 긍정적이시네요."

 

이런 말들, 한 번쯤은 해본 적 있지 않은가? 아니면 들어본 적이라도? 선의에서 비롯된 말인데, 왜 상처가 될까?

 

내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을 연구하게 된 것은,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었다.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할 거예요?"라는 무심한 질문 하나가 어떻게 커리어의 천장이 되는지, 몸소 경험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은 학술 논문이나 연구가 아닌,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국어 시험지에서 왔다.

 

그날은 평범한 저녁이었다. 식탁에 앉아 아이의 시험지를 살펴보는데, 한 문제가 틀렸다.

'소매, 단추, 수건, 호주머니' 중 다른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다.

'이건 너무 쉬운 문제 아닌가?' 했는데, 아이는 빨간 X를 받아왔다.

 

"이걸 왜 틀렸지?"

"쭌아, 이 문제에 답이 왜 단추라고 생각해?"

 

나에게 이 장면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8살짜리 아이가 보여준 특유의 당당함이었다. 마치 '엄마는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그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 소매랑 수건이랑 호주머니는 실로 만들어졌잖아요. 근데 단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잖아요. 그러니까 답은 단추에요!"

 

번개가 내리친 듯했다. 40년 넘게 ''이라는 카테고리로만 세상을 보던 내게, 8살 아이는 '재료'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선물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마치 뉴턴의 사과처럼, 그 순간 내 고정관념이라는 중력이 무너져 내렸다.

 

"~~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그 렌즈는 우리의 경험, 교육, 문화적 배경에 의해 형성된다. 나이 들수록 그 렌즈는 더 단단해진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경험이라는 동그라미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생각도 더 단단해진다.

 

그러다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누군가를 만나면? , 그때의 그 기분이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 추상적인 개념이라 이해가 잘 안 됐는데,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DEI 강의를 하고 나면 가장 많이 듣는 피드백이다. 한국어로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우리가 모르는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왜 어렵게 느껴질까?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다양성하면 인종, 성별, 성소수자를 먼저 떠올리고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얼마나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고 있는가. 다양성은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

 

한국형 D&I 프로그램 개발 연구 발표 후, 지난 5년간 수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교육을 진행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차별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대부분 진심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할까?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선의에서 비롯된 무의식적 차별,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를 소외시키는 말과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처음 DEI 교육을 시작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건 서구의 개념이잖아요. 한국은 문화가 다르니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요."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말하려다 보면 직장 생활이 불편해지지 않을까요?"

"차별이라는 말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우리는 그냥 익숙한 대로 사는 건데..."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 기업과 조직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이것은 거부가 아니라 간극이었다. 서구에서 발전한 DEI 개념과 한국의 문화적 맥락 사이의 간극, 추상적인 이론과 일상에서의 실천 사이의 간극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형 DEI'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우리의 일상과 문화 속에서 실천 가능한 포용의 언어를 찾아 나섰다.

 

선의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별이 되는 말이나 행동. 우리는 대부분 의도적으로 타인을 차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을 주거나 칭찬하려는 마음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차별감을 주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착한 차별'이 문제일까? 그것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차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무의식적 편향(unconscious bias)'이라고 부른다. 우리 뇌는 효율성을 위해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편향을 만들어낸다.

 

의도적인 악의에서 비롯된 노골적인 차별은 쉽게 인식하고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의에서 비롯된 차별은? 그 해악을 인식하기도 어렵고, 지적받았을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이는 '인지 부조화'라는 심리적 현상과 관련이 깊다. 우리는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어하는데,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은 이 자아상과 충돌한다. 이 불편한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난 좋은 뜻으로 한 건데..."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차단하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묘하다.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정답'을 강요한다. 마치 수학 문제처럼 하나의 답만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술 시간에 더 가깝지 않을까? 빨간색으로 그린 하늘도, 파란색으로 그린 당근도 틀린 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옷차림, 말투, 심지어 피부색이나 종교적 상징물까지도 우리 마음속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중요한 건 이런 편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주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용기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부패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 극적인 행동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순간들에 숨어 있다.

 

청각장애인 캐셔와 소통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꺼내든 메모장, 낯선 이방인을 향해 건넨 따뜻한 미소, 소수자의 이야기에 기울인 진심 어린 귀... 이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씩 더 따뜻하게 만들어간다.

 

이 글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착한 차별의 실체를 심리학적 렌즈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DEI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매일을 변화시키는 실천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쉽고 실천 가능한 포인트를 담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DEI를 도입하는 지금, 많은 직장인들이 이 개념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이 책은 비난이나 훈계가 아닌, 자기 성찰적 내러티브를 통해 접근한다. 우리 모두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마치 수많은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우리의 작은 용기가 편견이라는 단단한 벽에 균열을 낸다.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마치 봄이 오는 것처럼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오늘 하루, 혹시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을 깨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는가? 내일은 그 순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당신의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오늘 하루, 나의 편견을 깨기 위한 작은 용기는 어디에 있었나?"

함께 이 여정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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