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27개국이지만 문은 하나입니다. 규정(Regulation) 형태의 법은 회원국 별도 입법 없이 27개국에 동시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한 번 준비로 27개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 번 어긋나면 27개 시장이 한꺼번에 닫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에는 세 개의 시계가 돌고 있습니다. 이미 울린 시계, 연말에 울리는 시계, 그리고 처음부터 계속 돌고 있던 시계입니다. EU 수출을 준비한다면 세 시계의 시각을 모두 읽어야 합니다.
첫 번째 시계 — 이미 울렸습니다: 포장재 규정(PPWR)
지난달, 2026년 8월 12일부터 EU 포장·포장폐기물 규정(PPWR)의 일반 적용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지침을 대체한 규정이라 27개국에 직접 적용되며, 포장을 부자재가 아니라 설계부터 폐기까지 관리해야 하는 규제 대상으로 격상시킨 법입니다.
식품 수출기업에 가장 직접적인 조항은 식품접촉 포장재의 과불화화합물(PFAS) 제한입니다. 개별 PFAS 25ppb, 합산 250ppb, 고분자 포함 전체 50ppm — 세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고, 이 조항에는 재고 소진 경과조치가 없습니다. 8월 12일 이후 EU 시장에 처음 출시되는 식품접촉 포장재는 즉시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그 전에 이미 출시된 물량은 계속 유통 가능). 의도적으로 넣은 PFAS만이 아니라 비의도적으로 섞여 있는 PFAS에도 적용된다는 점이 실무 난도를 높입니다. 방유·방습 코팅이 들어가는 포장류라면 남의 일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이 조항은 서류 요구로 나타납니다. EU 바이어들이 포장재 시험성적서를 거래 조건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최근 EU 쪽 거래처가 포장 관련 서류를 갑자기 요청해 왔다면, 그 배경이 PPWR입니다.
두 번째 시계 — 연말에 울립니다: 산림전용 방지 규정(EUDR)
EUDR은 소,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대두, 목재의 7대 원자재와 그 파생제품에 대해, 2020년 말 이후 산림 파괴와 무관하게 생산되었음을 실사 선언으로 입증해야 EU 유통이 가능해지는 규정입니다. 초콜릿처럼 코코아를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이 부속서의 관세분류(CN코드) 기준으로 대상에 들어 있습니다.
이 규정은 두 번 연기되었습니다. 원래 2024년 말 시행이 2025년 말로, 다시 2025년 12월 개정으로 대·중견기업 2026년 12월 30일, 초소·소규모 기업 2027년 6월 30일로 밀렸습니다. 두 번의 연기가 주는 잘못된 신호가 있습니다. 또 미뤄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연기는 절차 간소화와 묶여 확정된 것이고, 시행 양식과 시스템 기술 규칙까지 올해 이미 채택되었습니다. 세 번째 연기에 사업 일정을 베팅하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한국 수출기업 입장에서 확인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내 제품에 7대 원자재가 원료로 들어가는지, 들어간다면 그 제품이 부속서 CN코드 기준으로 대상인지. 코코아 함유 과자류가 대표적 확인 대상이고, 대상 범위 자체가 간소화 패키지를 통해 계속 조정되고 있어(일부 품목 제외, 추가 편입 논의 병행) 원문 기준의 추적이 필요한 규제입니다. 대상이라면 실사 선언은 통상 EU 측 수입자의 몫이지만, 그 선언에 필요한 원료 이력 정보를 대는 것은 결국 공급자인 한국 기업입니다.
세 번째 시계 — 처음부터 돌고 있었습니다: 성분이 막는 문
EU에는 시행일과 무관하게 상시 작동하는 함정이 둘 있습니다. 신규 규제보다 이 상시 함정에 걸리는 한국 기업이 실제로는 더 많습니다.
하나는 동물성 성분이 든 복합식품입니다. 육류, 유제품, 난류, 수산물 성분이 포함된 가공식품은 그 성분 때문에 별도의 위생 요건이 붙습니다. 성분에 따라 EU가 승인한 국가·시설에서 유래해야 하고 위생증명 요건이 걸리는데, 이 조합이 맞지 않으면 제품 전체가 수출 불가가 됩니다. 만두, 라면 스프의 육류 성분, 유제품 함유 과자처럼 K푸드의 주력 품목군이 정확히 이 지점에 걸립니다. 레시피의 성분 한 줄이 시장 하나를 통째로 막을 수 있는 구조라, EU행 제품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성분표를 이 기준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신식품(Novel Food) 제도입니다. 1997년 5월 이전에 EU에서 유의미하게 섭취된 이력이 입증되지 않는 원료는 신식품으로 분류되어 사전 승인 없이는 쓸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수십 년 먹어온 원료라는 사실은 여기서 아무 힘이 없습니다. EU에서의 섭취 이력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전통 원료를 앞세운 제품일수록 먼저 확인해야 하는 역설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라벨에서는 알레르기 표시가 14종입니다. 중국 8종, 미국 9종과 또 다릅니다. 참깨는 미국처럼 포함되고, 여기에 셀러리, 겨자, 루핀, 아황산류, 연체동물처럼 한국 기업에 낯선 항목들이 더해집니다.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결론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알레르기 표기는 국가마다 목록이 달라, 한 라벨을 복사해 돌려쓰는 순간 어딘가에서 반드시 어긋납니다.
정리
EU는 하나의 문, 세 개의 시계입니다. 이미 울린 PPWR은 포장 서류 대응이 현재 진행형 과제이고, 연말의 EUDR은 코코아·커피·팜유 원료 제품의 대상 여부 확인이 이번 분기의 과제이며, 상시 작동하는 복합식품·신식품 요건은 제품 개발 단계의 성분 검토 과제입니다. 셋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품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류와 성분과 이력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27개국이 한 번에 걸려 있어, 준비의 보상도 실수의 비용도 다른 시장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PPWR 적합성 서류의 구성과 시험 항목, EUDR 대상 CN코드 확인 방법과 실사 선언 협조 실무, 복합식품 위생 요건의 성분별 판정, 신식품 목록 확인 경로, EU 라벨 작성 항목별 기준은 실무편에서 다룹니다. 실무편은 추후 멤버십 전용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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