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 장아찌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낭만>편'입니다.
듣기만 해도 코끝에 먼지 냄새가 나는 듯한 낭만의 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0세기의 스피-드 : 타닥타닥 타자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거의 소리는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입니다. 영화에 등장할 땐 경찰서 조사받는 씬과 자주 등장하지요. 쓰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는 특히나 낭만적인 아이템 같아서 이 타자기를 구하기 위해 당근마켓과 중고장터를 뒤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사용하는 방법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오타는 없다 : 원테이크의 원조 타자기
가장 경악했던 건 후진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장아찌를 담그며 얼마나 많은 글자들이 써졌다, 또 지워지기를 반복하는지 몰라요. 키보드이길 망정이지 타자기였다면 영락없이 종이를 버리고 다시 쓰거나, 종이를 꺼내 수정액을 바르고 그 위치에 고대로 세팅해서 다시 치는 정교함을 발휘해야 했다니... 낭만의 중압감은 보통의 무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자기를 쓰려는 자, 잉크로 범벅된 손가락을 견뎌라.
다음으로는 타자기의 잉크를 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점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더라고요. 가뜩이나 기계를 잘 못 다뤄서 뭘 교체하고 새로 끼우고 하는 건 자신이 없는데 잘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양손에 잔뜩 잉크 묻는 건 감수하고 하는 일이 타자기 잉크를 교체하는 일이라지 뭐예요? 나는 타자기의 낭만을 느낄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구매를 미룬 것이 오늘이 되니 아쉽네요. 만약 그때 이러네 저러네 해도 타자기를 손에 넣었다면, 타닥타닥 타자기의 소리를 이 장아찌에 동봉해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제 것 아닌 타자기의 소리라도 낭만적인 것은 마찬가지임으로 타인의 소리를 담아 보냅니다.
어쩐지 모닥불 타는 듯한 느낌이 드는 타자기의 소리로 오늘의 낭만을 채워보세요
삐삐거리는 네 이름은 삐삐
다음 낭만의 소리는 삐삐입니다. 삐삐의 본명은 다소 딱딱한 '무선호출기'라고 하는데요. 호출이 오면 삐삐- 울어대는 통에 삐삐라는 별명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삐삐 쓰는 게 되게 부러웠어요. 그래서 아쉬운 대로 생긴 건 제법 비슷한 다마고치를 열심히 키웠던 기억이 납니다.
삐삐하면 가열차게 울어대던 '삐삐'사운드도 사운드이지만 숫자만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었던 신박한 방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이보다 혁신적인 대화방식이 뭐가 있을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새삼 듭니다.
숫자로 대화하는 방법 (입문편)
1. 8282 : 빨리빨리 ➡️설명이 필요 없는 1차원적인 표현이지요?
2. 17171771 : I LUV YOU
➡️이유를 모르겠다면 17171771을 뒤집어 보세요! 비슷한 모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486 : 사랑해
➡️사.랑.해의 각 획수를 숫자로 적으면 4.8.6 이라고 해요.
4. 505 : SOS ➡️숫자의 영어화
5. 1010235 :열렬히 사모
6. 7942 : 친구 사이
7. 660660 : 뽀뽀 ➡️bbobbo
8. 952 : 굿모닝
9. 982 : 굿바이
10. 11010 : 흥 ➡️옆에서 보면 흥이 보여요!
적어놓고 보니 참신함과 오글거림 그사이 어딘가를 웃도는 표현들이 많네요. 따스운 것은 숫자를 이용해서 하는 많은 표현이 사랑 고백이라는 점이네요.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떨어뜨려 놓아도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주고받네요.
낭만의 소리로 삐삐를 언급한 만큼, 이름부터 삐삐인 삐삐의 삐삐 소리, 안 듣고 갈 수 없겠죠. 기다리던 호출이 왔습니다.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 치지직 주파
다음으로 만나볼 낭만의 소리는 주파수 맞추는 소리예요. 집에 있던 커다란 라디오를 기억해요. 어쩌다 한번 대청소하다가 아빠가 아끼는 CD가 나오면 그날 한정으로 종일 쩌렁쩌렁 노래를 불러대던 라디오. 다음번 대청소까지 아무도 찾지 않던 라디오. 볼륨 조절하는 건 줄 알고 돌렸다가 별안간 지직거리던 라디오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라디오로 가는 세계와 저의 첫 만남은 그랬어요. 어찌 보면 처음은 연결 실패였네요.
라디오를 들었던 시기는 아주 짧습니다. 때는 2009년경이었고 저를 잠 못 들게 하던 라디오는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신인 힙합 듀오였던 슈프림팀이 고정으로 나오던 프로그램이랑, 과거에 인기 있던 음악을 소개해주는 타임머신 같은 프로그램이었어요. (케케묵은 걸 좋아하는 제 취향과는 여러모로 잘 맞는 방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진행하는 까닭에 몰래 듣는 게 관건이었어요. MP3를 딸깍딸깍 돌리다 보면 지지직거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정겨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웃음을 참으며 라디오를 듣던 기억이 선명해요. 다음날 학교에선 졸린 눈을 비비며 친구들이 어제 심심타파를 들었는지 확인하러 다니기 바빴어요.
요즘은 라디오도 채널이 정해져 있어 지지직거리는 틈을 느낄 기회가 없더라고요. 편안해진 건 편안해진 거지만 뭐랄까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사이, 내 몸에 꼭 맞는 온도를 찾는 일을 하는 재미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틀면 바로 나오는 게 가장 편하겠지만 정교하게 돌리다 보면 마침내 맞아떨어지는 희열이 있었거든요.
낭만의 시그널 : 별이 빛나는 밤에 오프닝 곡
'라디오의 주파수' 하니 무릎반사 수준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 오프닝 곡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전 숱한 DJ를 거쳐 간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단 한 번도 고정으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별밤 오프닝 곡은 언제고 저를 낭만으로 데려가요.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습니다. 이상하게 눈을 가늘게 뜨게 되고 '캬-' 비슷한 소리를 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여름밤 보다는 특히 이맘때쯤에 무드가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준비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낭만>편'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의 낭만을 자극하는 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무엇이든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다들 건강 관리 잘하시고요.
다음 주에 또 다른 고릿적 이야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p.s : 101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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