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안녕하세요. 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만추'였습니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데, 어제 벼르고 방문한 공간의 사장님의 멘트에서 정답을 발견했네요. 가을로 가득했던 가을의 막바지를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 지 궁금하네요.
우리는 모두 쓸쓸함으로 중무장한, 이 계절의 문턱에서 조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전 수시로 대학이 확정되었음에도 수능을 앞두고 마음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뭐라고 우린 그토록 절박했나 싶은데요. 제가 수능을 경험한 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능은 숱한 고삼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이내 의자에 앉히고 있네요.
그래서 오늘은 '수능'을 주제로 여러분께 편지를 보냅니다
93년생 대학수학능력시험 (반갑다 동년배🙋🏻♀️)
수학능력시험은 94년도 입시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사실 '수능'하면 오로지 몇 과목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무심한 시험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이 수능이 암기로 점철된 시험제도를 바꾸기 위해 시작된 당시로서는 센세이셔널한 변화였대요.
'학력고사'라고 불리던 수능 이전의 시험은 암기대회에 가까웠습니다. 외워서 치르는 학력고사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평가할 최선의 방법일까, 자연스럽게 많은 고민이 따랐고 이 고민은 시험 전면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1993년 야심 차게 첫 번째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었는데요. 이때만 하더라도 수능은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두 번 치르는 형태의 시험이었대요. 8월 20일과 11월 16일에 두번의 수능을 보고 자기에게 유리한 점수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인데요. 의도는 좋았으나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수능은 일 년에 일 회만 치르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1993년은 수능이 2회 치러진 유일한 연도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이 대실패했기 때문이었대요.
한 회에 두 번 치러졌던 역사는 특별하지만 사실 수능은 변화가 잦은 시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꼽자면 '배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93년도 시작된 수능부터 96년까지는 수능 만점이 200점이었다고 해요. 97년부터는 두 배 늘어난 400점 만점의 배점으로 시험을 치렀고요. 2004년까지 400점 만점 기준의 시험이 시행되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100점이 추가된 500점 만점의 시험으로 배점이 한 차례 더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어느덧 시간이 십 년쯤 지나서 450점 만점이었던가...400점 만점이었던가... 제가 치른 수능의 만점이 몇 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여러분은 몇 점 만점 시절에 수능을 보셨나요...?
(요즘은 몇 점 만점인가요..? 언뜻 찾아보니 한국사다 뭐다 십 년 사이에 뭐가 많이도 늘었네요)
은근한 응원과 온기, 필적확인란 문구
냉혹한 시험장에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꾹꾹 눌러 쓰던 필적확인란 문구를 기억합니다. 필적확인란 문구는 말 그대로 개개인의 필적을 확인하기 위한 문구입니다. 시험지 답안에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고유한 필적을 통해 본인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작성하기 시작했는데요. 다정한 출제위원들은 따뜻하게 고른 티가 나는 필적확인란 문구로 그 해의 수험생들을 울고 웃기곤 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은근-한 응원과 온기의 문구들을 모아봤습니다.
2006학년도 수능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정지용, 향수)
2007학년도 수능
넓은 벌 동 쪽 끝으로 (정지용, 향수)
2008학년도 수능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윤동주, 소년)
2009학년도 수능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 별 헤는 밤)
2010학년도 수능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2011학년도 수능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채봉, 첫 마음)
2012학년도 수능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황동규, 즐거운 편지)
2013학년도 수능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 가을에)
2014학년도 수능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 작은 연가)
2015학년도 수능
햇살도 동글동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주, 돌의 배)
2016학년도 수능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2017학년도 수능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2018학년도 수능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김영랑, 바다로 가자)
2019학년도 수능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 편지)
2020학년도 수능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박두진, 별 밭에 누워)
2021학년도 수능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2022학년도 수능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이해인, 작은 노래 2)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라는 정지용 시인의 시구절은 2006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서 사용되었네요. 여러분은 어떤 문구가 가장 마음에 드세요?
저는 평소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편지도 좋고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도 좋지만요. 수능을 앞둔 친구들에게 전해지는 문구라고 생각하니 '큰 바다 넓은 하늘을 가졌노라' 와 '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청년이여 노래하라)'가 어쩐지, 가슴이 뻐렁 치고 좋으네요.
📻응원이 필요했던 고삼이 듣던 응원가
마지막으로 노래를 소개하고 싶은데, 뭘 마지막으로 실을까 고민하다가요. 제가 십 년 넘게 베어 물고 달콤하다 느끼고 있는 '멜론'에 접속했습니다. 호갱소리를 들으면서도 멜론 스트리밍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이 안에 그 시절 제가 듣던, 사랑하던 노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2012년 9월부터 10월 11월까지의 플레이리스트로 지난 기억을 소환해보았습니다.
참 귀엽고 애틋했던 건, 종교 없는 제가 ccm을 많이 들었더라고요. (어딘가 자꾸 기대고 싶어지던 시절이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호기롭게 '기독교인이 가장 좋아하는 씨씨엠 101'이라는 앨범에 담긴 '축복송'을 틀고 열심히 들었네요. 수능 점수가 축복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귀한 축복을 많이 받았다 싶기는 해서 축복송의 링크를 공유합니다.
다음으로는 수고한 당신에게 언제나 유효한 '수고했어, 오늘도'를 열심히 들었네요. 옥상달빛은 복을 많이 받으실 거 같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계신 건가요. 그것도 무려 십 년간...앞으로도 이어질 텐데.... 오늘도 수고한 많은 분들께 '수고했어 오늘도'링크를 공유합니다.
다음은 들국화입니다. 2012년 11월에 전 들국화 '내가 찾는 아이'를 즐겨듣는 사람이었더라고요. 오랜만에 들으니 참 좋습니다. 영상을 찾던 중, 영화 연애편지에서 손예진 배우가 내가 찾는 아이를 부르는 장면이 예뻐서 영화 중 일부 링크를 공유합니다.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내가 찾는 아이 듣기)
그 시절, 이 노래만 들으면 어딘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영은이 부른 혼자가 아닌 나. 갑자기 떠오른 흑역사인데 이 노래를 들으며 어딘가를 달려갔던 기억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 아찔합니다. 왜 달렸는지는 당최 모르겠으나, 다시 들어도 단전에서부터 희망이 차오르는 이 기분이 참 좋으네요.
마지막은 말 그대로 응원가를 보냅니다.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인생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나 제법 맘에 드는 정도의 대학에 진학해서도 행복했고요. 학교에서 배운 가르침으로 여전히 전 제법 운 좋게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실은 여러분을 돕습니다. 모든 게 잘 될 거고요.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이번에 잘 풀리지 않았다면 영웅 서사엔 약간의 시련이 필요해서 그런 거예요.
수능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 당신에게도 그렇습니다.
안도의 심호흡을 내쉴 날이 그리 멀지 않았어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당신을 항상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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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수험생이 아닌데도 너무 따뜻하네요, 건네는 응원이 제 오늘을 시리지 않게 살아가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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