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연애시 탑티어 원태연이 흘린 감수성을 따라서

2023.05.01 | 조회 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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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있었습니다. 금주의 특이사항은 길었던 머리를 묶이지도 않을 만큼 짧게 잘랐다는 거예요. 송로버섯 같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빨리 감을 수 있어서 좋고요. 빨리 말라서 두배 더 좋답니다. 산뜻하게 남은 날들을 걸어가보겠다는 의지예요.

예전엔 아날로그의 신에게 공수라도 받듯 5분 안에 주제가 떠올랐는데요. 요즘은 조금 고민이 필요합니다. 바로 떠오르는 주제들은 이미 한번씩 다뤄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벅차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며칠 고민하다 생각했던 오늘의 주제는 원태연 시인으로 시작된 90년대 연애시예요. 지금 읽으면 낯간지러운 감이 있지만요.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라는 문장은 이따금 마음에 내려앉는 날이 있더라고요.  

90년대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안 읽어본 사람이 없다는 원시인의 연애시 이야기, 그럼 시작해 볼게요.

7년 간의 마음을 엮은 첫 시집 : 연애시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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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 시인이 1992년 발표한 첫 시집<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은 중학생 때부터 7년간 썼던 글을 모아 냈던 시집이라고 합니다. 사격을 했다는 시인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조준했고 제대로 가서 닿았죠. 첫 시집은 물론이고 이듬해에 나온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사랑에 빠진 독자들의 잠 못 드는 밤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죠. 원태연 시인은 시집을 내자마자 밀리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90년대에 대학생이 아니어서 그랬을까요. 시기를 지나 마주한 원태연의 시들은 치아가 시큰거리게 달았고 누가 볼까 두려웠으며 닭살이 오소소 돋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옛날 제과점에 파는 버터케이크 같은 느낌이었어요. 먹으라고 만든 건에 먹어도 되나 싶게 달큰하기만 했던, 촌스러운 녹색과 분홍색 꽃장식이 잔뜩 올라간 오래된 버터케이크요. 책장을 더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음유시인의 가사

특정 시기에 빵 떴던 감수성 풍부한 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원태연 시인이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건 제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였어요. 책장은 못 넘겼는데 트랙은 허구헌 날 한곡재생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원태연 시인이 작사한 노래가 어떤 것들인데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아래를 봐주세요! (다시 봐도 엄청나다 엄청나!)

UN – 그녀에게

김현철  왜 그래 

장나라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백지영  그여자

혜령  슬픔을 참는 세 가지 방법

이동건  나의 바람이 저 하늘에 닿기를

노아  눈물에게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김세영- 밤의 길목에서

유미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김현철  나를 

신승훈 -라디오를 켜봐요

신승훈  나비효과

파란 첫사랑

애프터스쿨  샴푸

이중에서도 제가 진짜 놀랐던 건, 중학교 때 자주 들었던 신승훈의 노래 두 곡이 모두 원태연 작사라는 점이었어요. 

특히 나비효과는 가사가 정말 좋다고 집중해서 들었던 곡이라 더욱 그랬답니다. 오랜만에 함께 듣고 싶어서 영상을 동봉합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제 인생 최고의 멜로는 아닌데요. 누가 제게 최초의 멜로를 물으면 이 영화를 대답할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요. 단언컨대 이전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이렇게 울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보면 주환(이범수)가 제일 불쌍한데 핀 조명이 떨어진 곳 외엔 눈과 마음이 닿을 수 없던 어린 시절엔 예정된 사랑의 끝을 향해 가는 크림(이보영)과 케이(권상우)가 너무 슬퍼서 많이 울었네요. 글자 그대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였어요. 10대 시절, 이따금 울고 싶을 땐 오늘날 누누티비를 방불케 했던 어둠의 스트리밍 경로를 통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보고 훌쩍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감독이 원태연 시인이더라고요. 책장 앞에서 무시했던 것에 복수라도 하듯 학창시절을 너울대며 감수성 펀치를 날렸습니다.

어느 한 시절을 풍미했던 구닥다리 연애시 같은 거지 생각했는데 그 구닥다리에 제 학창시절도 포함이더라고요. 적극 공감하며 가사를 따라 적던 시기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 버렸지만 원태연의 감수성은 2007년과 2009년 사이를 웃돌며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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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다시 편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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