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쩐지 1막 1장이 끝난 기분이 드는데요. 앞으로 열릴 2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걱정하기 보다는 기대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개월 간 음악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달 '서울도시연대'에서 진행했던 '수집가의 가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레트로한 물건들을 사모으시는 '레트로인간'님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레트로인간님께서 의기양양하게 꺼내신 아이템 중 하나가 제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게 바로 <을지악보>였어요. 어린 시절 문방구에 가면 연예인 포토카드와 양대산맥을 이루던 게 이 악보였던 기억이 났거든요. 음악 모임 참여자들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된다면, 꼭 저 악보를 선물하리라- 마음 먹고, 아직 추웠던 어느날 레트로인간님께 DM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악보를 사서 건네는 날이 올까 했는데 시간은 기어코 흘러서 모든 게 끝났네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준 을지 악보를 생각하다 보니, 어쩌다 생겨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의 편지 주제는 을지악보로 정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을지악보를 찾아서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지금까지 담아드린 장아찌의 주제들은 이미 세상에서 한번은 주목을 받았던 아이템들이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잘 정리해둔 글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한 글을 적기가 쉬웠어요. 그런데 우리의 을지악보... 그 어디에서도 정체를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블로그에 추억 어린 이미지들로 가득한 을지악보의 유래를 찾기 위해 며칠 전 손에 넣은 을지 악보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델이 되어준 악보 속 노래는 명곡이라 잠깐 듣고 갈게요. 을지 악보 덕분에 오랜만에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 줄줄입니다.
우선 악보를 살펴볼게요. 중간에 <을지피아노키타피스>라고 제목이 적혀있는데요. 저 '키타'가 뻘하게 터지는 부분입니다. 185번이라 적힌 숫자로 추정해볼 때, <다 줄꺼야>는 185번째 악보가 발행된 곡이 아닐까 싶고요.
'을지악보'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 <을지출판사>에서 발행했던 악보인데, 음악도서를 주로 발간하는 출판사였던 것 같습니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 넷츠고에서 오래된 악보까지 다운 받을 수 있다는데... 천리안과 나우누리가 없어진 이 시점엔 어떡해야 하는 건지 또 의문이 생기네요. (아, 옛날이여)
낱장짜리 악보지만 정보가 확실합니다. 김영근님이 발행하셨네요. 연락처도 적혀있는데요. (02)-2642-7605입니다. 정가는 500원이지만 2023년 5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악보는 없습니다. 문방구에서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판매하고 계셔요.
그럼 이제 단서는 발행인 김영근님과 연락처 그리고 을지출판사 정도가 있을 거 같습니다.
초록창에 검색을 시작해봤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아무리 쳐도 안 나와요! 안 나옵니다... 그래서 <다 줄꺼야>를 제외한, 다른 악보들을 주욱 넘겨보았는데요.
제목이 유쾌해서 구매한 을지피아노키타피스 36번 <이모숀(감동)> 악보에서 을지출판사의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단 가슴이 웅장해졌던 건 '서기'를 표기하고 있다는 점...! 이모숀(감동)은 서기 1989년에 세상에 등장했군요. 의외였던 건 을지출판사의 위치였어요. 본사가 을지로가 아닌 서울시 양천구 목2동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검색해봤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이름으로 검색되는 출판사는 '을지출판공사'였는데 위치가 마포구 서교동에 있어서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대표적인 출판작들도 음악도서와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그러던 중, 한 블로그에서 이모숀(감동)보다 먼저 나온 악보집에 발행처가 '을지출판공사'로 적혀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시기 이게 유행이라 을지출판공사와 을지출판사에서 모두 악보가 발행되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요. 아쉽게도 을지악보가 악보로 대표되는 이유, 지금 을지출판사의 상황을 확인하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랍니다.
악보피스계의 원조, 삼호출판사
현재 찾아볼 수 있는 대다수의 악보피스는 <을지출판사>에서 만들어진 것들인데요. 몇몇 카페 글들을 확인하다 보면, 당시 악보피스계의 투톱이 삼호악보와 을지악보였다라는 회고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삼호출판사를 열심히 뒤져보았더니, 둘 중 원조는 삼호출판사더라고요.
1977년 창업한 삼호출판사는 그때도 지금도 음악과 관련한 도서들을 출판하는 회사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타악보를 만들어 판매했던 곳이 이 삼호출판사였다고 해요. 통기타의 인기가 대단하던 시절, 유행팝송을 연주할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을텐데 정성스러운 디테일 한 꼬집 추가한 게 있습니다. 영어를 읽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한국어로 병기했던 독음! 세심한 배려로 삼호출판사의 악보는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는데요. 삼호출판사에서 판매고를 올리자 주변 출판사들도 삼삼오오 악보제작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악보들은 을지악보가 대부분이지만 승자는 삼호출판사인 것 같아요. 가장 처음 만들었다는 점도 한 몫하겠지만, 2023년인 현재까지도 다양한 곡의 악보를 제작하는 작업을 도맡아 하는 음악도서 출판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O.S.T의 악보집, 유명 아이돌의 노래를 엮어 만든 악보집, 남녀노소 감동하게 하는 디즈니 악보집은 여전히 콜렉터와 악기연주가들에게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모숀(감동)은 대체 어떤 노래란 말인가
을지악보로 해답을 풀지는 못했지만, 70년대부터 인기를 끌던 악기 연주에 힘입어 만들어지기 시작한 악보피스! 그래도 좀 속이 시원한가 싶다가... 아직 풀리지 않은 열쇠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다름 아닌, 서기 1889년에 만들어진 을지악보 속 그 노래, 이모숀(감동)의 멜로디였는데요. 궁금해서 유튜브를 헤엄쳐 다니다가, 어떤 분께서 80년대에 나온 피아노곡이라며 연주하는 영상을 찾게 되었어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영상을 가져와봤습니다.
생각보다 경쾌하고 밝은 선율! 오늘의 닫는 노래는 이모숀(감동)
오늘은 그 언젠가 사랑하던 영화, 가수, 음악을 기억하기 위해 사모으던 악보를 따라간 여정을 담아 보내드렸습니다. 여러분의 댁엔 아직 악보피스가 남아 있으신가요? 추억할 거리가 있는 분들은 언제든 이야기 전해주세요 :) 함께 케케 묵어간다면 좋겠습니다.
더운듯 추운듯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여의나루를 지나는데 즐거워 보이는 나들이족들 표정에 덩달아 즐거워지더라고요. 놓치면 일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4월 말의 정취,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주에 다시 편지할게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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