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박카스가 있었다.

아메리카노 이전, 우리를 눈뜨게 만들었던 자양강장제의 역사

2023.01.30 | 조회 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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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구독자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오늘 유달리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일요일은 없는 셈 치고 잠을 잤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요. 오전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정말 아메리카노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오늘은 그래도 점심 먹고 꾹 참았다가 글을 쓰는 지금 마시고 있답니다.☕️

오늘 보내드릴 편지의 주제는, 며칠 전 사무실에 방문한 거래처 사장님이 주신 영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사한 사무실에 빈손으로 오기 뭐하셨는지 그 분이 박카스를 사들고 오셨더라고요. 책상에 건네진 박카스를 쥐는데 통통한 그립감에서 '그땐 그랬지'하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그리하여 오늘의 주제는 아메리카노와 에너지드링크 이전 우리의 눈을 부릅뜨게 했던 놀라운 음료, 박카스로 담아드립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

'박카스'의 다른 이름은 디오니소스?

박카스에 대해 적기로 마음 먹고 보니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이름이었어요. 직관적인 비타500에 비해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찾아보니 놀랍게도 박카스의 다른 이름은 디오니소스였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디오니소스 [출처 : 위키백과]
카라바조가 그린 디오니소스 [출처 : 위키백과]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라 불리는 포도주와 축제의 신이 로마로 가면 이름이 바쿠스로 바뀝니다. 동아제약의 강신호 회장은 '바쿠스'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 만든 피로회복제의 이름을 <박카스>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처음엔 의아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가장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해야 할 때 빛을 발하는 게 박카스인데...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만드는 포도주의 신 이름에서 착안한 술이라니, 좀 이상하잖아요? 어째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수에 놀고먹는 신의 이름이 붙은 걸까..고민하던 중, 박카스가 출시되던 연도가 눈에 들어왔어요.

1961년, 국민 모두가 굶주리던 그 시절의 포도주

박카스는 61년생입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환갑이 지난 어른인데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1961년엔 굶주림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동아제약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53.7세였다고 하니, 오늘날의 박카스보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었던 셈입니다. 약을 만드는 동아제약에서는 이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간 기능에 도움을 주는 피로회복제를 연구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로회복제가 바로 박카스였던 것인데요. 마땅한 약도 없이 컨디션이 좋지 않던 사람들에게 '맛있는 피로회복제'는 과연 포도주와 같은 역할을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했던 <박카스>의 작명가, 강신호 회장은 평소 필기를 자주하여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곤 한다는데요. 신 회장이 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보았던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술을 많이 마신 애주가들을 보호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간의 피로회복을 돕는 신약과 딱 어울린다는 판단이 들어 붙인 이름이었다고 하네요. 듣고 보니 이제야 왜 포도주의 신이 피로회복제의 이름으로 함께하게 된 것인지 납득이 갑니다.

알약부터 젤리까지, 박카스 변천사

63년이라는 세월동안 살아남은 피로회복제 박카스가 우리가 아는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생각보다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합니다. 박카스 하면 너무나 익숙하게 병을 따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1961년 <박카스>로 시작할 땐 알약의 형태였다고 해요.

초기 알약 형태의 박카스 (출처: 동아제약)
초기 알약 형태의 박카스 (출처: 동아제약)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멀티비타민처럼 알약의 형태로 판매되던 박카스. 인기는 많았지만 제조기술의 부족으로 내부에 있는 알약이 자꾸만 녹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반품이 속출하니까 앞으로 팔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이어졌겠죠? 이에 동아제약은 박카스 형태를 조금 바꿔보기로 결심합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다음 박카스는 이름하야 '앰플 박카스'!

앰플 형태의 박카스 (출처 : 동아제약)
앰플 형태의 박카스 (출처 : 동아제약)

새롭게 선보인 앰플 박카스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 앰플 형태 역시 운반을 하는 과정에서 깨지거나 제품이 손상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해요. 알약의 형태도, 앰플의 형태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동아제약에서는 박카스를 튼튼한 병에 담아 팔기 시작하는데요. 이 박카스가 우리에게 친숙한 갈색 병에 든 박카스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 : D와 F 사이

다시, 거래처 사장님이 박카스를 사다주신 그 날 제 책상으로 돌아가봅니다. 그날 제 손에 쥐어진 박카스는 정확히 <박카스F>였는데요. 박카스면 박카스지 F는 뭔가 궁금한 마음에 초록창에 박카스F를 검색해보았습니다. 

박카스 F [출처 : 동아제약]
박카스 F [출처 : 동아제약]

쉽게 말하면, 살 수 있는 장소가 다릅니다. 박카스D는 자양강장제의 주 원료인 타우린이 2,000mg들어있다고 해요. 반면 박카스 F는 D의 절반인 1,000mg만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박카스D는 오직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는데요. 박카스가 이렇게 투 트랙의 판매노선을 갖게된 것은 비타 500과 같은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편의점과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비타 500에 비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박카스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빠른 시간 안에, 박카스의 자리를 비타 500과 오로나민C가 대체한 것 같지 않으신가요?

새로운 피로회복제들의 등장으로 어르신들이 마시는 올드한 피로회복제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던 박카스는 돌파구를 찾기 시작합니다. 편의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박카스 F와 카페인에 약한 사람들을 위해 디카페인으로 만들어진 박카스 A, 그리고 위트있는 아이디어로 남녀노소의 호기심을 끄는 박카스 젤리가 모두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카스가 오랜 시간 동안 정말 주력해온 건 따로 있어요. 

청춘의 문장들 : 박카스 CF

바로, 일상에 내밀하게 손내미는 CF와 주옥같은 카피입니다.

1962년 '젊음과 활력을'이라는 야심찬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박카스. 이때까지만 해도 초기의 목표에 걸맞박카스를 마신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박카스 광고를 보는 15초 간, 감성의 피로는 회복하게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우리를 공감하게 했던 박카스 광고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1997년)

젊음, 지킬 것은 지킨다 (1999년)


제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박혀있는 박카스 역사의 첫 장입니다. 시트콤 <논스톱>과 투톱으로 제게 대학생활의 낭만을 꿈꾸게 해주었던 CF였어요.

꼭 가고 싶습니다! (2003년)

박카스 CF였던 건 기억하지 못하셨더라도 이 문구를 보자마자 추억에 웃음 짓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개그프로그램에서도 자주 활용되었던 기억이 나요.

 

오늘은 육체 피로는 물론 감성 피로를 날리는 데에도 한몫 했던 국민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담아 드렸습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셨을 여러분에게 바쿠스 신의 가호가 닿기를 바랍니다. 혹 장아찌만으론 성에 안 찬다 하지면 편의점과 약국에서 박카스를 한 병 드시는 것도 방법일 것 같고요. 그걸로도 좀 부족하다 싶으실 땐 다이렉트로 바쿠스 신을 만나실 수 있는 알콜 한 잔도 정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날이 많이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얼마 남지 않은 2023년의 1월도 무사히 잘 보내고 2월로 함께 나아가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다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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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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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레네

    0
    almost 2 years 전

    저는 늘 박카스를 뚜껑에 따라 소주처럼 마시곤 했어요... ㅎ 요구르트의 아랫부분을 이로 아득아득 까서 먹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어렸을 적 할머니가 집에 손님이 오실 때마다 하나씩 꺼내 놓으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귀한 음료란 인식이 있었거든요. 박카스 참 그립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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