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별일 없으셨나요? 이번 주에 저는 꼬릿꼬릿한 내추럴 와인을 오랜만에 마시고 기분이 좋았고요. 새롭게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홍보가 시작되어서 걱정과 떨리는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주일을 보내셨을지 궁금하네요.
장아찌에서 한 번도 말씀드린 적 없는데요. 저는 향수를 좋아해요. 화장품을 사는 것보다 먼저 시작한 일이 향수를 사는 일이었고요. 장기 여행을 떠날 때면 여행과 어울리는 향수를 사서 좋든 싫든 그 여행지에서는 그 향수만 뿌리기도 한답니다. (코로나로 여행을 갈 수 없어서 향수가 도통 늘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기필코!)
그런데도 아직 향수 얘기로 편지를 드린 적이 없어서 오늘의 주제는 향수! 그 중에서도 9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매력적인 향수, 쁘아종(poison)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보내 드립니다.
과거엔 잡지에 향수를 뿌린 종이를 동봉해서 향수 마케팅을 했다는데, 새삼 우리의 전자우편으로 그런 것까진 할 수가 없다는 게 아쉽네요! 그래도 오래된 향에 대해 그리워하는 향수만큼은 여러분이 계신 그곳 어디든 닿을 수 있도록! 힘차게 시작해보겠습니다. 😊
1화장대 1쁘아종! 90년대를 풍미했던 매혹의 향수🔮
디올 쁘아종은 85년도에 출시됐습니다. 오늘날엔 다양한 향수들이 만들어지고 알려져 선택지가 넓지만요. 90년대만 하더라도 향수의 가짓수나 판매처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사용하던 향수도 몇 가지로 추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쁘아종은 여러모로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 있는 향수였습니다. 이름부터 강렬해요. 쁘아종은 Poison의 프랑스식 표현으로 '독'을 의미합니다. 왠지 향수 하면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만 붙여야 할 것 같은데 강렬한 워딩을 사용한 이 향수의 정체는 뭔지 모두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름에 버금가게 파격적인 포스터 역시, 모두를 쁘아종 앞으로 집결시키는 요인이 되었는데요.
'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매혹적인 마녀가 쁘아종을 들고 있는 모습은 뭇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 사과를 연상케 하는 귀여운 바틀의 모양, 잘 익은 열매를 연상시키는 짙은 보라 색상은 오브제로도 멋진 기능을 했어요. ‘내 화장대에도 하나 올려두고 싶은 예쁜 향수’로 여성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1차로 시각을, 2차로 후각을 만족시킨 쁘아종의 매력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90년대 여성들치고 이 향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고 해요.
🚫No Perfumer Zone (feat. Poison)
독을 상징하며 대놓고 매혹적으로 나온 향이 은은하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쁘아종은 존재감이 상당한 향수였습니다. 한 명만 뿌려도 누군가 쁘아종을 뿌리고 왔구나! 알 수 있을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향수가 공전의 히트를 쳤으니, 세상은 온통 매혹적인 쁘아종 향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향기에 곤욕을 겪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가볍게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같이 탄 사람들이 있었고요. 심각하게는 오감 만족 파인다이닝을 추구하는 레스토랑 운영자들이 있었습니다.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써서 음식을 내가면 뭐하겠어요. 매혹적인 쁘아종 향기가 진동하는 탓에 온전히 음식을 즐기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완벽한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던 몇몇 레스토랑은 쁘아종을 비롯한 향수를 뿌리고 방문하는 것을 막아서기까지 했대요. 노키즈 존에 앞서 노퍼퓨머존이 있었다니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에피소드네요.
쁘아종의 자매님들👩👩👧👧
그러거나 말거나 오리지널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자매품들이 속출하기 마련이지요. 디올은 기존 쁘아종이 가지고 있었던 ‘매혹적인 향’을 뛰어넘는 쁘아종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쁘아종의 자매님들을 소개합니다.
상큼하고 깨끗한 비누향으로 사랑받았던 Tendre Poison (1994)
85년 쁘아종이 출시되고 9년 뒤 새롭게 등장한 쁘아종 라인은 '땅뜨르 쁘아종'이었습니다. 매혹적인 이미지를 선보였던 오리지널과 달리 베르가못, 오렌지 등의 재료로 상큼하고 깨끗한 비누 향 혹은 고급티슈 향이 나는 향수였는데요. 오리지날 쁘아종이 누구나 하나쯤 화장대에 두고 싶은 제품이었다면, 이 땅뜨르쁘아종은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화장대에서 손이 가장 잘 가는 향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묵직함과 가벼움 사이, 꽃과 과일의 향연 Hypnotic Poison (1998)
그로부터 4년 뒤, 새롭게 출시된 쁘아종은 이쁘노틱 쁘아종이었습니다. 이 향의 특징은 '밸런스'라고 전해지는데요. 다소 리치할 수 있는 코코넛 향과 다양한 과일, 꽃의 향기가 모두 갖춰져 있지만 무엇 하나 대단히 무겁거나 튀지 않고 고르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고보니 앞서 나온 오리지날과 땅뜨르쁘아종의 중간쯤 서있는 향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윽한 꽃비누 향, Pure Poison(2004)
다음은 2004년 출시된 퓨어쁘아종이 있습니다. 향의 노트나 후기를 살펴보았을 때, 포스터가 너무 과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원숙하고 그윽한 꽃비누 향이 난다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깨끗한 느낌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이전보다 포스터가 향수를 잘 반영하고 있는 느낌은 덜한데요. 아쉬운 포스터와 별개로 오늘날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향수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향수들 중 유일하게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구요.
밤에 피는 장미 Midnight Poison (2007)
3년 뒤 출시된 쁘아종은 미드나잇 쁘아종입니다. 미드나잇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깊고 푸른 색상으로 사랑받았던 제품인데요. 패출리와 장미의 조합으로 매혹적인 섹시함은 물론 시크함도 느껴볼 수 있는 향수였습니다. 그야말로 '밤에 피는 장미'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향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쁘아종의 딸 Poison girl (2016)
미드나잇 출시로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디올은 새로운 쁘아종으로 girl을 선보이는데요. poison과 girl. 사뭇 다른 두 단어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은 girl입니다. 지금까지의 쁘아종 라인과 달리 10대 후반, 20대 초반까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향은 마치 오리지날 쁘아종이 낳은 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국내에선 구하기 어렵고 직구를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땅뜨르 쁘아종을 찾습니다.’ 빈티지 향수 아시나요?
초록 창에 땅뜨르 쁘아종을 검색하면 어떤 향수도 그만한 게 없었다며 중고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판매되지 않는 향수를 소장하는 컬렉터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이들은 판매 중단된 향수들을 <빈티지향수>라고 부르며 모으고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있는데 그래도 되나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일 텐데요. 변향되지 않은 이상, 잘 관리한 향수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빛과 온도에 민감하고 시트러스 계열이 특히 취약하다고 하니 주의해서 사용하세요!)
오죽하면 100여 년 전에 출시된 향수를 구하고 판매하는 장이 있을 지경이에요.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 엄마 품에서 나는 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땅드르쁘아종을 비롯한 다양한 향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금! 빈티지의 메카인 황학동 만물시장과 동묘일대엔 빈티지 향수도 가득가득하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디올, 랑방, 샤넬 등 브랜드 향수는 모두 몇 차례 리뉴얼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패키지와 향기 모두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하는데요. 혹시, 내가 쓰는 향수의 지난 향이 궁금하시다면? 빈티지샵 주변에 있는 빈티지 향수가게에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Off The Record : 땅뜨르쁘아종의 하위호환 <카보틴 드 그레>
사실, 제가 땅뜨르쁘아종을 진짜 가지고 싶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 스타일일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정말 열심히 찾았는데요. 아쉽게 모두 거래가 끝난 글들 밖엔 뜨지 않았어요. 그래서 속타게 향수 커뮤니티를 뒤졌었는데… 많은 분들이 땅뜨르쁘아종의 하위호환모델로 카보틴이라는 브랜드의 ‘그레’를 꼽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직구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웬걸! 해외에선 아직 이 제품이 나오고 있지 뭐예요. 기쁜 마음으로 카보틴 드 그레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2주 정도 뒤에 도착했어요.
향의 첫 번째 느낌은 예전에 유행하던 엽기토끼! 마시마로의 궁둥이에서 나는 향기랑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땅뜨르쁘아종이나 카보틴 드 그레나 비누 향으로 유명한 향수였다고 하는데요. 마시마로 궁둥이 향과 함께 끝에서 리치한 꿀향이 느껴졌습니다. 묵직한 꿀 느낌 때문에 겨울에서 봄 넘어가는 이맘때쯤? 가장 잘 어울릴 향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는데요. 누군가 이 향을 오늘날 뿌리기엔 좀 촌스럽다고 코멘트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그러므로 제가 빈티지한 ootd를 선보이고 싶은 날이나, 포근한 느낌의 의상을 선택했을 땐,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이 될 수 있게 도와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답니다. (반전)
🔮시각, 후각을 넘어! 청각까지 poison!
마무리를 짓기 전, 그 당시 쁘아종의 인기를 알려주는 노래를 한 곡 동봉합니다. 90년대 당시 히트곡 제조기로 이름을 날리던 작곡가 주영훈은 어디서든 사랑받는 쁘아종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 솔로 가수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노래는 쁘아종만큼이나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인기곡이 되었고요. 음악방송에서 곡의 퍼포먼스를 돕던 브이맨은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 들었으면, 아는 분들은 어떤 노래일지 다 느낌 오실 것 같은데요? 듣자마자 신나버리는 엄정화의 포이즌, 오랜만에 함께 들어볼까요?
오늘은 시대를 풍미했던 불멸의 향수, 쁘아종을 담아드렸습니다.
글을 적으며 자료조사를 하던 중, 한 조향사의 인터뷰가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2012년에 작성된 기사인데,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 같아요.
향수든 다른 무엇이든, 여러분의 텅 빈 마음을 위로할 무언가가 하나쯤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다음 주엔 더 흥미로운 고릿적 이야기를 담아
여러분께 편지할게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한 주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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