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광복절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연휴 내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습니다. 유물과 유적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여름방학과 국경일의 여파로 연휴 내내 박물관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박물관 1층 <역사의 길> 가장 마지막 관은 ‘대한제국실’입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엔 박물관에 어떤 관이 신설될까요. 사람이 떠나고 물건만 남았을 때, 우리를 대표할 유물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유물은 제가 갖지 못했던 거예요. 2001년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더니 컴퓨터에 웬 매트가 연결되어 있었어요. 모니터에 뜨는 화살표 모양대로 매트 위 화살표를 밟는 게임이라고 했습니다. 친척 오빠네서 빌려 왔다나요. 게임 이름은 DDR이랬어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댄스 댄스 레볼루션, DDR과 펌프 잇 업, 펌프입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DDR

DDR은 일본의 게임 회사, 코나미가 1998년 아케이드 게임으로 출시했습니다. 찾아보니 코나미사가 리듬 게임을 만든 건 예정된 순서 같더라고요. 1980년대 코나미가 만든 게임들도 음악으로 유명했습니다. 몰입감을 높이는 배경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던 코나미사가 DDR보다 앞서서 내놓았던 건 비트 마니아입니다.

턴테이블처럼 생긴 기계에서 박자에 맞춰 휠을 돌리고 버튼을 누르는 리듬 게임입니다. 비트 마니아의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출시한 것이 DDR이었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DDR은 오락실 게임을 넘어 가정용으로도 만들어집니다. 코나미사의 가정용 DDR 매트가 주목받자 다른 회사에서 아류작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열풍을 일으킨 DDR은 당시 야후 코리아 CF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보기 어려운 그 시절의 감성이 정겹고 재밌어서 링크를 첨부합니다.
DDR에서 펌프로 : 안다미로의 pump it up

코나미사의 DDR은 상하좌우를 가리키는 화살표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오락실에 종종 보이는 리듬 게임 기계엔 중앙 버튼이 있어요. 이게 한국 펌프와 일본 DDR의 차이라고 합니다. 펌프는 1999년 한국에서 출시된 펌프 잇 업의 줄임말입니다. 너무 비슷한 외관과 게임 방식으로 코나미사가 안다미로에 소송을 거는 일까지 벌어지는데요. 2002년 양사가 합의하면서 소송을 마무리했고, 안다미로는 코나미에 화해금을 지급한 뒤 펌프 생산을 이어갑니다.
오락실의 DDR과 펌프가 인기 있던 까닭은 플레이어만 즐거운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재야의 고수가 등장하면 발재간을 보기 위해 기계 주변으로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으니까요.
KBS<강력추천 고교챔프>에 지역을 대표하는 DDR 고수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던 것에서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한국 오락실에서는 DDR보다 펌프가 훨씬 익숙한 풍경으로 남게 됩니다. 펌프가 한국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입니다
버터플라이, 베토벤 바이러스, 그리고 BanYa(반야)

DDR 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노래는 단연 스웨덴 가수 smile.dk의 <butterfly>입니다. 몇 년 전에 강릉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DDR 얘기를 하다가 노래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그거 뭐지….야이야이야…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버터플라이! 외치고 유유히 길을 떠나셨어요. 강릉 바다 볼 때 보다 속이 더 시원했던 순간입니다.
이렇듯, DDR에도 좋은 삽입곡이 많았지만, 펌프를 이기기엔 무리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노래가 나왔으니까요. 듀스, 박진영, 클론 등 당시 사랑받던 가수들의 음악이 많아서 모두의 흥을 돋우기 좋았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버터플라이만큼 인기를 끌었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지요. <베토벤 바이러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 3악장을 빠른 댄스음악으로 편곡한 곡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터키행진곡>,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을 댄스곡으로 바꾼 음악들은 클래식 선율을 오락실의 강렬한 비트로 바꿔 놓으며 펌프만의 음악으로 기억됩니다. 이 음악들은 안다미로 내부의 음악프로듀싱 팀인 반야(BanYa)의 작품이었습니다. 한국 청소년들의 놀이터가 오락실에서 피시방으로 넘어가면서 펌프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아졌지만, 펌프는 지금도 새로운 음악을 추가하며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집 근처에 그린마트라는 슈퍼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트 주인 분이 건물주셨던 모양이에요. 마트 옆에 다른 가게가 있었는데요. 얼마 뒤, 가게가 사라지고 그린마트에서 운영하는 오락실이 되었어요. 삐까뻔쩍한 오락실은 아니었지만 동전 노래방도 있고 비트 마니아도 있고 펌프도 두 대 있었답니다. 300원에 세 곡을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모든 곡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마지막 한 번을 보너스로 할 수 있었어요. 엄마한테 천 원 받으면 맨날 동전 바꿔서 펌프를 하는 초딩 시절을 보냈습니다. 맨날하니까 나중엔 잘하게 되었어요. 동전 노래방에서 놀던 형님들이 펌프 앞에 삼백 원 동전탑 세 개 쌓아주고 가면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놀 수 있었고요. 아쉽지 않냐면서 동전 넣는 입구를 꼬챙이로 세 번 눌러서 불법으로 작동시켜 주는 비행청소년 형님들이 제게 입체적인 인간을 처음 보여준 존재가 아니었나 싶어요. 동전 노래방에서 <퀵서비스맨>을 열창하다 나와서 꼬챙이로 펌프 작동 시켜준 중학생 형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옆을 스쳐 가도 못 알아보겠죠? 지난주 노래방의 역사를 쓰다 보가 그 <퀵서비스맨> 형님이 생각나서 오늘은 DDR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시작된 편지가 펌프로 끝났네요. 언젠가 먼 시간 뒤, 펌프 기계도 전시실 유리관 안에 들어가 있게 되는 날이 오려나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창문 너머로 <짱! 오락실>이 보입니다. 이따 지나가다 펌프 있는지 슥 보고 가야겠어요. 있어도 오늘은 못 할 거 같지만 정말 있다면 다음에 친구 만나서 한판 하자고 꼬실 거예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주엔 광복절 내내 만난 달항아리가 건네준 콘텐츠, 목욕탕 원조 음료 빙그레 바나나우유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다가오는 한 주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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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생각
DDR 위에서 뛰면서 친구들과 야쿠르트 내기하던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젠 고혈압 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를 않네요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로울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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