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여러모로 시험에 빠져드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방학이 간절했어요. 여름/겨울이면 합법적으로 주어지던 우리의 청량한 방학을 그리워하며 오늘의 장아찌, 잃어버린 우리들의 여름방학 편을 시작합니다.
방학을 책임지던 공영방송 EBS : 방학 생활
놓을 방에 배울 학, 배움을 놓는다고 해서 방학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아침에도 배움은 이어졌습니다. 아침 9시쯤 13번을 틀면 EBS에서 학년별로 차례차례 여름방학생활을 방영하곤 했습니다. 전 과목을 아우르며 다양한 내용들이 방영되었지만 가장 비중이 컸던 건 사회와 과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거실에 드러누워 방학 생활을 보면서 여름을 맞았습니다. 찾아보니 오늘날까지도 방학 생활은 이어지고 있더라구요. 교육 방송이 존재하고 방학이 계속되는 한, 친구들의 아침을 깨우는 방학 생활 프로그램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2002년 5학년 여름방학 생활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 가져왔습니다. 주제가 디지털인데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디지털'과 '첨단'이라는 말이 세상에 만연했던 것 같아요. 디지털이 공기처럼 익숙한 요즘 친구들도 교육과정에서 디지털의 의미를 배우는지 새삼 궁금해지네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영상 초반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친구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그 시절 우리 모두를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게 만든 EBS TV로 보는 원작동화가 떠오르네요. 양파의 왕따 일기, 모두 기억하고 계시는가요?
곤충채집부터 관찰일기까지, 탐구생활🐞
여름철 문방구에 가면 입구에 곤충을 담는 채집함과 잠자리채가 널려있었습니다. 그걸 사 들고 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곤 했어요. 시끄럽고 오동통했던 매미와 푸르뎅뎅하던 매미의 날개. 이제사 생각해보면 땅속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단 한 번 가열차게 울 수 있었던 매미에게 우리의 순수가 너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전 컬렉터처럼 많은 곤충을 잡아가야만 했던 세대는 아니었는데요. 이보다 앞선 세대엔 나비부터 여치까지 형형색색의 벌레들을 채집해서 꺼내보이는 것이 숙제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문방구에선 채집함과 잠자리채 옆에 멋들어진 모양새를 자랑하는 곤충 채집본까지도 팔았다고 하네요.
어떤 선생님들은 잡는 것보다 관찰하는 것에 방점을 찍으시기도 했습니다. 정량보다 정성을 보겠다는 의도일까요.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을 관찰하며 하루하루 일기를 써오는 것이 숙제였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단골로 잡혀 오던 친구들은 달팽이, 개미 등이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작은 새우 키우기, 개미 키우기 교구를 문방구 등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시작되는 일기공장
곤충을 채집하고 여름방학 생활을 보고 방학이면 개봉하는 어린이 영화를 두어 편 봅니다. 여름방학 시즌 중 어느 시기는 휴가를 맞이해 가족끼리 피서를 다녀오기도 해요. 새카맣게 타서 목이며 팔이며 불긋하게 익은 팔에 살이 벗겨지기 시작할 때쯤 마음에 불안이 찾아옵니다. 미래의 내가 책임질 일이라며 모른 척하던 성가신 일거리가 떠오르기 때문인데요. 바로 일기입니다. 모름지기 일기의 개연성이란, 날씨에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일기를 방치하고 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그 부분이에요. 다른 건 어찌어찌 써보겠는데, 날씨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영리한 친구들은 달력에 날씨만 미리 표시해두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끔 팔이 아파 더 이상 긴 내용의 일기를 쓸 수 없을 때면, 아무도 시키지 않은 동시일기를 쓰는 등 나름의 변주로 땜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미선 짤'하면 뜨는 이 장면도 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순풍산부인과 '미달이의 방학숙제'편에서 방학 숙제를 하지 않고 개학을 맞게 된 미달이를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동원되는데요.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해 '스토리는 내가 짤 거고 글씨는 누가 쓸래?'하는 장면이 오래오래 회자되고 있습니다.
일기도 일기지만 단골 숙제였던 한자 쓰기도 팔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엄마, 아빠, 형제, 자매의 찬스를 쓰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가족들을 단합시켜주던 방학의 마지막 장이었죠.
여름 방학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어린 여름을
더 이상 여름방학이 없는 우리를 적당히 위로할 작품으로 '기쿠지로의 여름'을 담습니다.
딱 저들의 머리를 가려주는 토란대 정도의 위안만 될 거예요.
무더운 여름, 뜻대로 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하나도 없지만, 서로에게 작은 변화를 남기고 한 시절은 지나갑니다. 영화를 보는 게 어렵다면, 청량한 그 OST라도 들어보세요.
오늘은 고민이 고작 밀린 방학 숙제였던 호시절의 추억을 담아보았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은 사라졌지만, 성숙한 취향이 만든 또 다른 즐거움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계시겠지요? 낭만 장아찌가 그 기다림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많이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도 여름과 잘 어울리는 주제를 들고 당신의 메일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여름다운 한 주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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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팀장
난 디지털이 아니라 사이버세상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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