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입추에 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만 선선해도 마음이 일렁일렁해요. 먼발치에서 파도처럼 오는 듯 가는 듯 하루 만큼씩 가을이 오고 있나 봅니다. 구독자님은 애창곡 있으신가요? 여름에 어울리는 신나는 노래인가요. 가을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발라드인가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의 편지 주제가 노래방이기 때문이에요. 노래방이 없는 나라였다면 우리 서로 애창곡을 물어볼 수나 있었을까요. 전 국민의 가창 장소 노래방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1991년 부산,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
우리나라 첫번째 노래방은 1991년 오픈한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입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반주기계, 가라오케의 역사는 그보다 오래되었지만 그때는 진입장벽이 높았습니다. 술이며 안주며 뭔가 시켜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쌌거든요. 부산에 살던 화교 출신의 형충당은 오락실 사장이었습니다. 그밖에 특징을 들자면 컴퓨터를 무척 잘했죠. 어느 날 그는 기존 가라오케 기계를 개조하여 번호를 누르면 반주와 가사가 나오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기세를 몰아 형충당은 300원에 노래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1.6평짜리 노래연습장을 오락실 한 켠에 오픈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코인노래방으로 시작된 셈입니다.
![1993년 설문조사 결과 [출처: 네이버 옛날신문]](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8/1786350211501321.webp)
처음 노래방으로 등록된 업체는 부산 광안리 소재의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입니다.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1년 사이 전국 각지에 10,000개가 넘는 매장이 생겨났습니다. 노래방은 그야말로 남녀노소에게 허용된 곳이었습니다. 어린이 동요, 구성진 트로트, 심지어 퇴폐풍조라는 이유로 노래방의 인기를 문제 삼던 운동권의 민중가요까지도 부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숱한 사람이 열창한 애창곡의 주인공, 조용필 역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아내 잃은 슬픔을 털어냈던 적이 있다고 하네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희 부모님도 노래방 마니아셨어요. 조각조각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는 노래방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더니 화면 가득 삐에로가 나와 엉엉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의 애창곡으로 선명한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는 올해 초 <낭만 장아찌 주문 배송> 편지로도 다루었네요.
이색 노래방 열전
![노래방 풍경 [출처: 경향신문]](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8/1786350365686624.webp)
아, 노래방에 관한 기억이 하나 더 있어요. 우리 동네에 <한강 노래방>이 그랜드 오픈했을 때의 일입니다. 2000년이 되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노래방 바닥엔 금붕어 떼가 지나다녔어요. 그러고 보면 전국 각지에 참 특이한 콘셉트의 노래방도 많았던 거 같은데요. 빼놓을 수 없는 게 외계인 튀어나올 것 같은 데몰리션노래방입니다.

세기말 감성의 첫 페이지, 데몰리션노래방의 역사는 1998년 성남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Hope’를 본 몇몇 분 중에 데몰리션노래방을 떠올리신 분도 계시더라고요. 제 첫 데몰리션노래방의 역사는 2004년쯤이었고 지역은 울산이었어요.

이맘때쯤이라 사촌언니 집에 놀러 갔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 저 빼고 가기 좀 그러니까 데려가 줬거든요. 통도 환타지아라는 놀이공원에 갔다가 데몰리션 노래방에 갔었고 언니들이 빅마마 체념을, 체념한 사람 치곤 너무 파워풀하게 불러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찾아보니 통도 환타지아도 이젠 없는 놀이공원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360도 돌아가는 놀이기구 타고 거꾸로 매달려서 엉엉 울었는데…

또 하나의 이색 노래방을 꼽자면 홍대의 명물 수 노래방을 말하고 싶어요. 분홍색과 함박만 한 꽃으로 점철된 공주 노래방 같았어요. 통창이 뚫려서 밖에 지나가면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게 특별했네요. 노래방은 대체로 지하에 어둡게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홍대 수노래방은 지금도 건재하네요. 양지에 버젓이 서 있어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요.
애창곡의 역사

수노래방이 존재감을 호소해도 부를 노래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일 거예요. 이번엔 방마다 울려 퍼지던 대한민국 애창곡을 따라가 볼까요? 노래방이 시작된 1991년부터 2011년까지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무엇일까요? 금영노래방 기계가 기억하는 역사는 이렇습니다.
1991년
1위 - 붉은 노을(이문세)
2위 - 내사랑 내곁에(김현식)
3위 - 남행열차(김수희)
붉은 노을은 20여 년간 질 줄을 모르고, 남행열차는 20여 년간 멈출 줄을 모르네요.
1992년
1위 - 사랑과 우정사이(피노키오)
2위 - 흐린 기억 속에 그대(현진영)
3위 - 라구요(강산에)
놀라운 거 하나 말해드리자면 92년 4위 애창곡은 라디오헤드 creep입니다.
1993년
1위 - 사랑할수록(부활)
2위 - 숨어 우는 바람소리(이정옥)
3위 - 갈색추억(한혜진)
1994년
1위 - 서시(신성우)
2위 -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3위 - 서른 즈음에(김광석)
93년과 94년의 노래방은 제법 쓸쓸했겠어요. 제목부터 심금을 울리네요.
1995년
1위 - 가질 수 없는 너(뱅크)
2위 - 슬퍼지려 하기 전에(쿨)
3위 - 잘못된 만남(김건모)
1996년
1위 - 아름다운 구속(김종서)
2위 - 취중진담(전람회)
3위 - 천생연분(솔리드)
1997년
1위 - 행복한 나를(에코)
2위 - 당돌한 여자(서주경)
3위 - 꽃바람 여인(조승구)
1998년
1위 - 고해(임재범)
2위 - 그녀와의 이별(김현정)
3위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강산에)
1위로 등장한 고해를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1999년
1위 - 누이(설운도)
2위 - 천년의 사랑(박완규)
3위 - 천상재회(최진희)
새천년을 앞두고 천자가 들어가는 제목이 많았네요.
2000년
1위 - TEARS(소찬휘)
2위 - 사랑 TWO(윤도현)
3위 - 애정표현(플라워)
한층 잔인한 옥타브로 채워진 새천년의 노래방 풍경
2001년
1위 - 귀거래사(김선우)
2위 - 땡벌(강진)
3위 - 빗속의 여인(김건모)
지난 동두천 편에 다뤘던 빗속의 여인 리메이크 버전이 2001년 3위를 차지했네요!
2002년
1위 - Never Ending Story(부활)
2위 - 낭만고양이(체리필터)
3위 - 보고싶다(김범수)
2003년
1위 - 체념(빅마마)
2위 - 하늘을 달린다(이적)
3위 - 친구(안재욱)
울산 빅마마 언니들의 체념이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2004년
1위 - 우연히(우연이)
2위 - 청혼(노을)
3위 - 내 여자라니까(이승기)
예스아윌…!
2005년
1위 - 겁쟁이(버즈)
2위 - 가시(버즈)
3위 - 어머나(장윤정)
전국 남학생이 버즈에 꽂혀 있을 때 별안간 트로트 신데렐라가 등장했습니다.
2006년
1위 - 남자를 몰라(버즈)
2위 - 내 사람(SG워너비)
3위 - 사랑 안 해(백지영)
2007년
1위 - 체념(빅마마)
2위 - 사랑앓이(FT아일랜드)
3위 - 무조건(박상철)
2008년
1위 - 애인 있어요(이은미)
2위 - 만약에(드라마 '쾌도 홍길동')(태연)
3위 - 체념(빅마마)
체념은 꾸준히 사랑받네요.
2009년
1위 - 애인 있어요(이은미)
2위 - Gee(소녀시대)
3위 - 8282(다비치)
2010년
1위 - 못해(포맨)
2위 - 애인 있어요(이은미)
3위 - 죽어도 못 보내(2AM)
절절한 2010년
2011년
1위 - 좋은 날(아이유)
2위 - 너를 위해(영화 '동감')(임재범)
3위 - 애인 있어요(이은미)
제목을 훑어보니 불러본 적 없더라도 들어본 적은 확실히 있는 곡들이네요!
오늘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전 국민의 스트레스와 감수성을 어루만진 작은 공간, 노래방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구독자님의 애창곡은 위 순위에 있었나요?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 부르는 숨겨진 명곡이 있으셨을까요? 노래방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또 어떤 게 있으신가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오늘의 편지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주에 또 편지할게요.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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