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으려는 구독자에게

구독자, 9월이 다 지나가버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가을이 찾아왔다. 행복한 순간도 흠뻑 만끽하고, 기쁨과 슬픔, 혼란의 눈물 한껏 흘려주고 9월이 끝났다.
손에 잡힐 듯하면 다 빠져 나가버리는 것들. 덧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그 속에서 나는 '지금'을 위해 살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근데 그 슬픔이 무뎌져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때 더 마음이 아파온다. 그 감정은 무엇일까. 마음껏 슬퍼하는 것도 재능이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구독자, 울고 싶을 때 울자. 있을 때 힘껏 사랑하자.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기억이 점점 사라져간다면 마지막에 남는 건 뭘까. 영화 <스틸 앨리스>를 오랜만에 봤다.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보면 "예뻐."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난 할머니를 기억하니까 괜찮다.
가만히 명상하는 것보다 열심히 움직이는 게 이런 마음을 달랠 길이었다. 오랜만에 꾸준히 달리는 대신 인터벌, TT 훈련을 하면서 나만의 리듬을 회복하러 애썼다. 본격적으로 하프 마라톤을 하반기 목표로 정하면서 '건강'을 최우선하는 중이다. 슬로우 러닝이 아니라 기록을 위해 3km를 최대의 속도로 달린 날도 있다. 튼튼히 몸을 가꿔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줄 힘을 기르자는 마음이다.
'굳이 프로젝트'도 하면서 하루에 하나 행복을 찍었다. 가끔은 사진을 못 찍을 만큼 행복이 없었던 하루도 있었다. 그럴 땐 억지로도 산책을 나가서 하늘 사진이나 나무 사진이나 고양이 사진을 남겼다.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걸 사오기도 했다.
무기력하고 어딘가 나사 빠진 마음도 들 때가 있었다. 그때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약속이 없더라도 스스로에게 매일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마포 출사 프로젝트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해줬다.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 아무데나 버린 쓰레기,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들. 오토바이와 여러 탈 것들. 바삐 움직이는 자영업자들. 구독자, 아무것도 모르겠을 땐 주변에 있는 것들을 찍어보자. 그럼 무의식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이 뭔지 알게 될 것이다.
8~9월에 찍은 필름 2롤이 인화된 파일을 얼마 전에 받았다. 디지털과 다르게 필름은 빛바랜 사진 같다. 붙잡고 싶은 순간들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디지털과 달리 필름은 즉각적인 확인이 불과하다. 시간 차를 두고 그때를 추억하며 열어본다. 잘 나오면 좋고 아쉬우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파일을 여는 순간 마포 출사 프로젝트할 때 '순간선' 작가님이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라져가는 것들, 없어질 것 같은 걸 담으면 사진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여름 끝무렵에 담은 이번 필름은 다시는 안 돌아오는 계절의 기록이었다. 어떤 장면이 남았고 또 어떤 장면은 사라졌을지 궁금했다. '내'가 찍힌 필름은 다 사라지고 내가 '소중한 사람들'을 찍어준 사진만이 남았다. 내가 나온 사진도 하나 있었는데 그 마저도 상대방은 다 나오고 나는 일부만 나왔다. 필름이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구독자도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서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달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그 사이에 많은 게 변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을 전하기로 했다. 사진에 나온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거나 안부를 물었다. 진심은 미루면 안 된다. 전하고 싶은 충동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이 필름 사진 중 하나를 골라 16장의 엽서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앞으로도 15명에게 진심을 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손편지를 쓸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단단편지에선 구독자님이 함께 내 삶을 동행하는 느낌이라면 손편지는 직접 진심을 전달할 수 있어서 좋달까. 손편지를 전해 줄 상황이 안 되어도 손편지로 적는 건 뭔가 의식의 흐름으로 쓰게 되니까 그냥 내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 같다. 이상한 마음도 그대로. 사랑 가득한 마음도 그대로. 어떤 마음이든 주저하지 않는다. 그 글이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적어내려 간다. 반응을 생각하거나 오히려 잘 쓰려고 하면 탈이 나니 최대한 정제되지 않은 마음을 꺼내려 한다.
단단편지는 보여지는 글이다 보니 자꾸 정제하고 형식을 예쁘게 하려고 한다. 근데 내가 요즘 사랑하는 김화진 작가님의 소설들처럼 그냥 다 꺼내는 게 맞는 것 같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괜찮은 척 안 하려고 한다. 유독 단단편지를 쓸 때는 가라앉은 감정이 많이 찾아오긴 하지만. 회고를 해도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달도 있겠지. 사람들은 보통 행복보다 불행을 더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오히려 그런 마음을 나눠야 더 끈끈해진다고 믿는다. 이런 마음은 일상에서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마음이니까. 구독자, 다들 여기선 이상해져도 좋아. 그런 마음을 나누면서 씩씩해지자는 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기도 하니까.
앞으로 여기선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을 거다. 한 달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짐하고 싶은 마음. 이 편지를 통해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려 한다. 날 것 그대로 꺼내고 나누고 싶다.

사랑, 편지를 쓰면서 항상 포함하는 단어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형식적인 말밖에 못하는 요즘이다. 물론 너무 사랑해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망설일 때도 있다. 그때는 그냥 표현한다. 거기에 진심은 있으니까 어떻게든 닿겠지라는 마음으로.
9월엔 생일이 있어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거면 된다 진짜. 그 사람들이 건강한 것도. 그 이상 바라는 건 내 욕심이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옆에 있을게."
내 마음을 모르겠어 갈팡질팡할 때도 많다. 이상해도 못나고 모순된 마음도 꺼내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사랑을 잊고 싶지 않아서, 잃고 싶지도 않다. 완벽하지도 않고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할래요.
구독자, 이번 가을엔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기보다 그냥 하루하루를 필름카메라로 찍듯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담아봐요. 구독자만의 순간을 담아두길. 그리고 공유해줘요.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이 흐르기 전에 붙잡을 수 있는 건 용기를 내길. 후회보다는 진심을 따르는 행동을 하길.

사랑을 담아
2025년 9월에 예빈씀
ps.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도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필요할 이야기 같았거든요. 힘든 마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줬으면 해요. 지나가는 길목인 거죠.
[010dandan]의 2025년 9월 편지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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