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을 살고 싶은 구독자에게

구독자, 유난히 연휴가 길었던 10월 어떻게 보냈나요?
저는 연휴에 충분히 뒹굴다가 시험도 몇 개 없어서 간만에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다가올 바쁨에 허덕이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을텐데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바로 지금 여기'를 되뇌니 다시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더라고요. 요즘은 과거도 미래도 잠시 내려놓고 싶어. 현재 충실히 살면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걱정도 두려움도 불안도 덜 찾아오고요.
그런 의미에서 감사 일기를 꾸준히 썼습니다. 희뿌연 렌즈 속에서 살다가 감사의 렌즈를 비추니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네요. 칭찬할 것도, 감사할 것도 많더라고요. 물론 10월엔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만 가까이 해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손 내 밀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들의 소중함을 더욱 알게 되었어요.
일기를 꾸준히 썼지만 빈칸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빈칸들을 좋아하는 문장 수집으로 채워나가면서 한 해를 꽉 채울 예정이에요. 10월은 유독 제가 '좋은 삶이란 이런 거지.'를 많이 느낄 수 있던 하루하루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직 두 달이 더 남았지만 올해를 통틀어서 가장 평온한 한 달이었어요. 2025년을 보내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좋은 삶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 상태는 '평온'이더라고요. 강렬한 것도 아닌 잔잔함.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충실히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번 편지에서는 구독자님에게 소중한 하루하루를 공유해보려고 해요.

10월에 읽은 책은 심신 단련이었어요. '평온함'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의 제격인 책이었죠. 이 책을 일기장에 필사하면서 사랑 가득한 이슬아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닮아갔어요. 특히 이슬아 작가님이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그랴~ 사랑햐~ 참말루~ 사랑" 전화를 끊고 나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귓가에 위잉위잉 맴돌았다. 나는 그에게 하려 했던 말의 반의반도 못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게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었으면 나는 진작 말렸다. 그는 몇 번이고 사랑의 말을 변주하며 반복할 테고 나는 황홀하고 정신 없는 패배를 매번 맞이 할 거싱다. 도대체 이 사랑은 무얼까. 어떻게 이렇게나 듬뿍 가능할까. 사랑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말할 수 있을까.
심신단련, 이슬아, p.86.
'사랑이 이렇게까지 듬뿍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옮겨 적으면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10월 2일
저와 몇 달 째 씨름하던 지갑을 드디어 '제대로' 잃어버렸어요. 근데 이상하게 제대로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어요. '이제 너를 찾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 지갑을 잃어버릴 때마다 나름의 사정과 불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지갑을 가졌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유독 이 지갑을 많이 잃어버렸거든요. 원래는 지갑을 이렇게 많이 잃어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작년부터 다섯 번 정도 잃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다시 돌아왔고요. 제가 찾지 않아도 찾아졌고, 찾으면 거기에 있었어요.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엔 정말 '잘 가.'라고 말하며 미련 없이 보냈어요.
10월 9일

한글날엔 엄마와 함께 뮤지컬 아몬드를 봤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하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아몬드
구독자, 상대방을 이해하는데도 행동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11월 그리고 앞으로는 아몬드의 주인공처럼 마음을 전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않을래요.
10월 17일
미래를 향한 고민을 해본 지 오래.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 시기라 스트레스 받긴 해요. 그냥 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편이에요. 취준을 본격적으로 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겠지만 올해까진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희망보단 걱정, 불안이 더 먼저 올라와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 삶의 질이 올라가요. 그래야 후회도 없고요.
10월 25일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중간고사를 지나고 남은 10월은 여기저기를 다니며 보냈어요.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제주로 훌쩍 날아가 맞이한 결혼식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영화 같은 축제였어요. 덕분에 '이렇게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구독자에게도 사랑을 듬뿍 줘야지.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결혼식에 가기 전 이 부부를 보면서 썼던 말인데 결혼식 포스터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 문장을 결혼식 포스터에서 다시 보니 마음이 찡했어요.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는 건 결국 사랑을 믿겠다는 말이에요. 물론 그런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겠네요. 뻔한 말이지만 저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래요!

10월 30일~11월 1일

10월의 마지막과 11월의 처음은 저 멀리 전라남도 답사와 함께 했어요. 이번 학기에는 사학과 수업만 거의 듣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집만 오갔어요.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이라 마음은 여유로웠어요. 일종의 힐링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번 답사는 저번 봄학기보다 훨씬 다채로웠어요. 담양, 나주, 화순, 강진, 해남, 목포까지 2박 3일 동안 소쇄원부터 고인돌 유적, 다산 초당, 목포 근대 역사까지 돌아봤어요.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고, 초록에서 단풍으로 짙어지는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시간만 더 많았다면 더 그 공간을 향유하고 그 시대의 마음을 온몸으로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백련사를 못 갔는데 강진 바다를 맘껏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하네요.

'역시 자연이 좋구나.' 새롭게 만난 인연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풍요로웠던 나날들이었어요. 요즘 제가 추구하는 게 '나의 세계를 넓히자'인데요.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는 일. 그게 가장 큰 영감이에요. 세계를 넓히면서 더 너그러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요. 감사해요. 모두들.

모든 실제적인 삶은 만남 속에 있다.
마르틴 부버
구독자, 요즘 이상하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얘기했어요. 그렇다고 매일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좋아하는 것들과 권태기가 와서 그런 걸 수도 있겠죠. 저번 달 종잡클 대표님 강연 "취향을 만든다는 건 싫어하는 걸 명확히 아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다른 방향으로 또 와닿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려면 거리두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영화'가 그랬었고요.
요즘엔 역사 공부만 하다 보니 관심사가 역사로 옮겨갔지만 막상 보고서나 에세이를 쓰면 음악과 영화로 연결 짓게 되더라고요. 역사를 단순히 사건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제 삶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죠. 이런 생각은 저번 학기 계쌤의 '역사학 입문'과 '조선시대사' 수업 덕분이긴 해요. 11월의 과제에는 이런 생각들을 담을 것 같아요.
🍂 10월에 느낀 좋은 삶이란
-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 과거나 미래를 붙잡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
-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바라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순간에 감사하며, 불완전한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
- 사랑을 주저하지 않는 것. 느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해에 머무르지 않고 표현으로 나아가는 것.
- 미래를 미리 짊어지지 않는 것. 불안보다는 지금의 평온을 선택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는 것.
- 계획은 느슨하게 세우며, 삶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함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
- 삶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 멈출 땐 멈추고 달릴 땐 달린다. 나만의 속도를 믿는 것.
- 어떤 대화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마음을 열고 타인의 세계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다름을 배움으로 여기는 것.
-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 모든 것을 좋아하려 애쓰지 않고, 나의 취향과 경계를 분명히 세우는 것.
- 취향을 만드는 것.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기 위해 잠시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다시 사랑할 여백을 남겨두는 것.
- 타인의 세계를 통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 혼자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 함께 넓어지는 것. 이해와 공감 속에서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 아는 대로 사는 것, 사는 대로 깨닫는 것. 생각이 삶이 되고, 삶이 다시 배움이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것.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 비움을 배우는 것. 떠나보내야 할 것을 집착하지 않고, 잊음과 잃음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
- 평온을 선택하는 것. 강렬함보다 잔잔함을 불안보다 충실함을 택하며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것.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즐기는 것. 예상치 못한 우연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좋은 삶 🍵
구독자님이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요.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11월엔 구독자도 이러한 좋은 삶을 함께 살아가기로 해요.
혼자서 말고, 우리 함께.
진심을 담아
2025년 10월에 예빈씀
[010dandan]의 2025년 10월 편지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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