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웹툰 글콘티의 진화

"지금 쓰는 글콘티에서 몇번째 컷을 쓰고 있는지, 어디서 캐릭터가 대사를 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매번 일일이 체크하려니 힘들어요."

웹툰 작가 지인의 한마디가 글콘티 에디터 기능 개발의 시작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웹툰 에이전시 툴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작가들이 글콘티를 더 쉽게 쓸 수 있을까?'이기도 했다. 나 자신도 사실 기존 워드나 한글 등이 글콘티 작업엔 그다지 편하지 않았었고.

일반 에디터의 한계

처음에는 웹툰 에이전시 툴에도 기본 텍스트 에디터를 사용했다. 어차피 글만 빠르게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실제 원고를 작업하다보니 웹툰 글콘티는 일반 글쓰기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1. 주인공이 들어온다. ' 같은 컷 형식부터 시작해서, 인물의 대사, 효과음, 그리고 다양한 연출 지시까지 포함해야 했다.

일반 텍스트 에디터로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10화 글콘티를 쓰다가 중간에 5컷을 추가했더니, 밀린 컷 번호를 일일이 수정해야 했어요. 미춰버리는 줄 알았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드미러(CodeMirror)라는 라이브러리를 도입했다.

코드미러: 프로그래머의 도구를 작가에게

코드미러는 원래 프로그래머를 위한 코드 에디터다. 하지만 그 유연성과 확장성 때문에 웹툰 글콘티 작성에도 완벽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컷 넘버링'이었다. 마치 코드의 줄 번호처럼, 각 컷의 시작점을 자동으로 감지해 번호를 매기도록 했다. 덕분에 작가들은 컷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때 더 이상 번호를 수동으로 수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색상과 시각적 피드백: 글콘티의 지도 만들기

코드미러의 가장 큰 장점은 문법 강조(Syntax highlighting) 기능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구문을 색상으로 구분하는 이 기능을 웹툰 글콘티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했다.

이런 색상 구분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다. 작가가 글콘티를 검토할 때 어디에 대사가 있고 어디에 효과음이 있는지 즉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글콘티를 스크롤하면서 '이 장면에 효과음이 빠졌나? 대사가 너무 많나?' 체크할 때 정말 편해요."

실시간 피드백과 자동 포맷팅, 실시간 컷수

코드미러를 활용해 구현한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실시간 피드백이다. 작가가 '인물: 대사' 형식으로 입력하면 자동으로 서식이 적용되어 가독성이 높아진다.

이런 즉각적인 피드백은 최종 결과물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킨다.

웹툰 도메인 특화 기능

일반적인 코드 에디터와 달리, 우리의 글콘티 에디터는 웹툰 제작 과정에 맞춘 특화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컷 분석 덕분에 내 웹툰이 독백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을 더 늘렸죠."

앞으로의 과제

코드미러 기반 글콘티 에디터는 꽤 만족스럽지만, 아직 개선할 점이 남아있다:

특히 음성 입력은 작가들이 캐릭터의 목소리를 직접 연기하면서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만들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작업을 진행했다. 아래는 진행사항을 정리한 영상.

작가의 도구, 작가의 손에 맞게

글콘티 에디터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교훈은 "작가의 도구는 작가의 손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기능도 사용하기 어렵다면 소용없다. 웹툰이 탄생한지 20년이 넘었다. 그럼 웹툰용 글콘티 도구가 나와야 할 시점 아닐까?

코드미러를 도입한 이후, 작가들의 피드백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글콘티 작성이 웹툰 제작 과정 중 가장 즐거운 부분이 되었어요. 마치 색깔 블록을 조립하는 것처럼 직관적이거든요."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1인 웹툰 에이전시 툴의 목표다. 기술적으로 복잡한 부분은 도구가 알아서 처리하고, 작가는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다음 과제는 글콘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컷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것. 이 역시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꾸준히 진행해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