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유부

44. 능숙한 솔로 플레이의 비결!

구례에서 만난 멋진 선배들

2024.04.05 | 조회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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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는 부유하는 유부입니다 ㅎㅎ 지난주, 저는 봄을 만끽하려고 구례에 다녀왔습니다. 산수유부터 수선화, 앵두꽃, 살구꽃, 벚꽃까지 여러 봄꽃들을 두루 보고 왔는데요, 떠올려보니 꽃만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식당과 시장, 또 올라오는 기차 안 곳곳에서 인상적인 선배님들을 만나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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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애 계절은 봄. 차애는 정하지 못했어도 최애는 누가 뭐래도 봄, 봄이다2024년 목표 빙고에서는 2칸이 여행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혼자 3일간 여행하기와 가본 적 없는 국내 도시 3곳 가기가 그것이었다. 적어 놓기는 했지만 막상 언제 어디를 갈거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하다가 어디선가 들었던 '구례의 봄'이 생각났다. 나의 최애 계절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장소. 그래, 구례! 그길로 늘 그랬듯 충동적으로 숙소와 기차편을 예매해버렸고, 구례 봄 여행이 시작됐다.

혼자 여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소리와 사람들에 대한 레이더가 더 예민하게 작동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 일수도 있고, 심심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다.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발견을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행의 셋째 날 저녁, 배도 크게 고프지 않았고 숙소에는 전날 먹다 남긴 음식들이 있었기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맥주나 사 들어가야지 하다 한 분식점을 발견했다.

전날에도 그 전날에도 지났던 길이지만 셔터가 내려져 보지 못했던 그곳에서는 로타리김밥이라는 큰 글씨의 간판과 함께 기름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간판부터 식당 안팎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인테리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과감한 면모를 선보였다. 이름도, 간판도 이미 맛있었다!! 가게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손님들이 맛집임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줬다. 확신에 가득 차 가게 앞에 빼꼼 얼굴을 드밀고 서있으니 옆에 있던 단골로 추정되는 손님이 사장님을 대신해 전한다. “주문 밀려서 좀 걸려요.” 사장님은 무심하게 튀김기에서 김말이와 오징어, 고구마 튀김을 망으로 꺼내어 탁탁 기름을 털어 커다란 철제 쟁반에 무심하게 흩뿌려 놓는다. 두 손으로 튀김을 펼쳐 놓으며 바삭해지도록 고루 공기를 입힌다.

두 번 튀겨내는 로타리김밥의 튀김.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두 번 튀겨내는 로타리김밥의 튀김.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말이와 오징어 튀김 3개씩을 주문하고 기다리기 시작, 본격적인 사장님의 튀김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김치통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김말이를 튀김 반죽에 묻혀 무심하게 기름 속으로 집어넣는다. 이곳의 김말이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진정한 수제 김말이었다. 다음은 오징어 차례. 플라스틱 반찬통에서 생오징어를 꺼내 얇다란 도마(일까?)에 올려 도마째 손에 들고 쑹덩쑹덩 썰어 튀김 옷을 입히고 기름 속으로 투하. 완벽한 오픈 키친 앞에서 이십여 분의 요리쇼를 보고 나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오래 기다렸다며 서비스로 튀김 두개를 더 얹어 주셨다. 두둑한 종이봉투에 왠지 현지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 자리에서만 25년째 영업 중이라는데맛은 설명한 필요가 없었다.

화려한 솔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배님은 한 분 더 계셨다. 첫째 날 방문했던 흑돼지집. 두루치기를 주문하니 거기 앉어라고 응대하던 사장님. 잠시 앉아 있으니 옆테이블에서 삶아서 까놓은 꼬막에 양념장을 휘휘 두르고, 당일 해 놓은 듯한 배추 무침과 애호박 무침을 툭툭 담고, 막 버무린듯한 오이 김치까지 도합 7가지 찬을 삽시간에 후루룩 차려 낸다. 그리곤 부엌으로 들어가서 또 무언가 뚝딱뚝딱, 잠시 후 다시 등장해 식탁에 부르스타(휴대용 가스버너는 맛이 안 산다) 올리고 불 켜”, 그 위에 양념 고기가 든 팬을 하나 올려놓고는 뒤에 있는 집게랑 가위로 고기 잘라서 먹어.” 직접 찾아 건네주지는 않으면서 집어 든 집게와 가위를 족족 퇴짜 놓으시고는 아니 그거 말고 쩌거. 아니 아니, 그거슨 잘 안 짤려라고 하시면서 도구까지 지정해 주신다.

무심하게 차려진 흑돼지집의 반찬들. 나의 사진도 무심했다.
무심하게 차려진 흑돼지집의 반찬들. 나의 사진도 무심했다.

사장님은 어느 새 옆자리에 앉아 삶은 달걀을 까 먹으며 반찬 부족하면 더 갖다 먹고~라는 멘트를 던진다. 사장님 특유의 서비스 멘트랄까. 살짝 퉁명스러운 접대가 아닌가 싶었지만 반찬 면면을 살펴보니 모두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 게다가 간도 아주 적당하다. 역시 미식의 고장 전라도인가 감탄하면서, 팬 위에 고기는 왜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는지. 식당을 들어가기 전 나름대로 친절했다라는 방문평을 읽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서도 부족함 없이 필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구례 선배들이었다. 불필요한 행동이나 멘트는 없었다. 오직 계산된 행동과 필요한 서비스만 있을 뿐. 맛의 기본기는 탄탄하되,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능숙한 스킬로 손님에게 팀플을 요청하는 동시에 넉넉한 인심으로 의아함을 누그러뜨리고, 뛰어난 맛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찌보면 혼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자신의 주특기는 고도로 연마하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서슴없이 요청할 줄 알고 도움에 대해서는 꼭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일을 할 때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 애쓰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일흔 정도 된 할머님이 옆자리에 탑승하셨다. 여행하고 가냐는 질문으로 대화를 튼 할머니는 본인은 난생 처음으로 23일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 밝혔다. ‘혼자서 대단하시다는 내 감탄에 신이 나셨는지 남원 광한루에서 찍은 꽃과 원앙 사진을 보여주시며, 무용담 같은 여행담을 늘어 놓으셨다. 모텔에서 혼자 잠을 청할 때는 무서운 마음도 들었지만, 막상 해보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는 경험과 자식들 눈치 보지 않고 구경하고 싶은 만큼 보다가 또 쉬고 싶은 만큼 쉬다가 편안하게 즐겼다는 이야기. 여행을 더 하고 싶었지만 비가 오고 힘도 들어 계획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쿨한 여정까지. 기차표는 역에서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 예매했단다. 미리 계획했다면 빠른 KTX를 탔을테지만 새마을호를 타니 경치가 잘 보여서 이것대로 좋다고. 다만 더 젊었을 때 여행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고. 내게도 여행 많이 다니라는 당부를 남기셨다.

여행도, 일도, 어쩜 인생도 자기만의 속도로 가면서도 때때로 필요할 땐 서슴없이 도움을 청하고 적절하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곳곳에서 배움을 주는 선배들을 만나 더 즐거운 봄나들이였다.

구례 여행에 걸맞은 사진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첨부해봅니다. 구례 산수유마을💛
구례 여행에 걸맞은 사진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첨부해봅니다. 구례 산수유마을💛

 

<코너 속 코너> 계절산보🚶'새순도 같이 봐주세요!'

저는 요즘 매일 삼십 분 정도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시에 살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더라고요. 직장인 시절에는 새벽에 출근했다가 늦은 밤에 퇴근하던 광역 통근자로 살아 계절감을 모르고 살았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바쁜 현생을 사는 많은 구독자님들은 과거의 저와 비슷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잠깐 대리만족이라도 하시라고 산책을 하며 발견한 계절의 변화들을 코너로 공유해볼까 합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리만족이니 만약 오늘 여유가 된다면 식후 10분이라도 사무실이나 집 주변을 잠시 걸어볼 수 있다면 훨씬 좋겠네요 :)

바야흐로 봄, 온 동네의 꽃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새순도 하나 둘 재잘대며 움트기 시작한다. 새들의 지저귐도 연일 계속되는 사랑스러운 소란이 가득한 요즘. 화려한 봄 꽃 앞에서 멈추기를 반복, 사진 찍지 않고 걸어가는 법을 나는 모른다. 더불어 내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친구는 바로 연두빛 새순들. 원래 알고 있던 잎 모양보다 더 작고 연한 빛깔의 새순들을 하나씩 발견해 본다면 올 봄 산책의 재미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형광 연두빛 하트를 그리는 사철나무의 새순
형광 연두빛 하트를 그리는 사철나무의 새순
청순한 분홍빛 잎줄기가 인상적인 단풍나무 잎
청순한 분홍빛 잎줄기가 인상적인 단풍나무 잎
잎 모양 그대로 앙증맞게 웅크리고 있는 은행나무 잎, 밤에 보니 연두색 별 같기도
잎 모양 그대로 앙증맞게 웅크리고 있는 은행나무 잎, 밤에 보니 연두색 별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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