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으로 뜬 전직 초등교사의 인터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잠실, 송파, 강남을 거쳐 분당 학군지에서 아이들을 지도했다는 교사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꽤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선행 학습을 이미 끝낸) 학생들 대부분이 교과과정에 있어서는 월등한 성적을 보이는 반면, 인성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게 교사의 평가였다.
만약 체육시간에 편을 나눠 피구를 하다가 같은 반 친구가 공에 맞고 넘어져 피가 난다면?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면서 친구를 살펴보러 모여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설명은 달랐다. 다친 사람이 있어도 피구 경기는 중단 없이 계속됐다. 다친 아이를 걱정하는 건 교사뿐이었으며 친구를 부축해서 양호실에 데려가려는 학생도 없었다고. 오히려 다친 학생 때문에 팀 인원이 한명 줄어 불리하다고 투덜거리는 학생들만 있었다고 한다.
교사가 고작 이 에피소드 하나로 요즘 학생들의 인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 같지는 않다. 십수 년간 쌓인 무수히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토대로 냉정하게 지적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기려는 태도, 강한 승리욕을 갖고 목표를 달성하려는 자세는 자라는 아이들이 인생을 사는데 꼭 가져가야 할 모습일 테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만큼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자세 또한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자 가치가 아닐까?
어느 교사가 말한 학교 교실 충격 근황을 들으면서 나는 이미 수차례 한 다짐을 새롭게 다시 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과하게 욕심내지 말자고. 아이에게 늘 이겨야 한다는 마음만 가르치지는 말자고. (또 이미 이런 사람들과는 서로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기는 했지만) 아이에게 투자한다는 이유로 너무 열심히 교육템을 사고, 아이가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면서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에만(주로 경쟁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애쓰는 다른 양육자들의 말이나 행동에도 휘둘리지 말자고. 그 욕심이 때로 아이를 망칠 수 있으니까.
아마도 내가 양육자로서 진짜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떻게 하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정신이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게 할 것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 작가이자 보육사 겸 칼럼리스트인 브래디 미카코의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는 시험 본 아들과 미카코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아들: "기말고사 첫 번째 문제는 '엠퍼시(empathy)'란 무엇인가? 였어."
브래디 미카코: "그게 뭐야. 갑자기 엠퍼시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한마디도 못 할 걸. 그거 엄청 심오하다고 할까. 어렵지 않냐. 너는 뭐라고 적었는데?"
아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중에서
영국에서는 점점 심해지는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생들에게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엠퍼시’를 중요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타인을 평범하게 동정하거나 공감하는 것을 가리키는 ‘심퍼시’와 달리 ‘엠퍼시’는 자신이 타인의 입장이었다면 어떨지 상상함으로써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고 나누는 지적 능력을 일컫는다. 브래디 미카코의 아들이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 보는 일’이라는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답을 찾기까지 아이는, 아이의 엄마인 브래디 미카코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지 생각하니 나의 육아가 조금 더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아이에게 정말 공들여 가르쳐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려워도, 잘 이해가 안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임없이 대화하면서 찾아야 할 삶의 중요한 가치 말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육아선배인 오랜 친구들이 뭐라고 할지 짐작이 간다. "OO아, 지금 너의 생각은 너무 나이브해. 정신차려~")
<코너 속 코너> 책방산책📚
경주 화랑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책방 ‘지금 니 생각 중이야’는 사실 방문했을 적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명절을 보내러 경주에 가면 언제나 문이 닫혀 있었죠. 과연 저 책방은 운영을 하는 걸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다 명절도, 빨간날도 아닌 시기에 경주에 방문했더니 책방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냉큼 들어가 보게 되었어요.
책방 히스토리와 영업시간이 적힌 손글씨 간판(?)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방 공간 빽빽하게 정말 다양한 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시대별, 다양한 분야별 책들이 꽂혀 있었고, 특히 책방에서 운영되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자신만의 책을 펴낸 독립출판물이 많이 보였습니다.
제가 눈 여겨 본 것은 크게 두 가지 였는데요. 첫째는 책방이 동네 주민, 단골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점이었어요. 책방 구석구석 단골들의 기증 책들이 코너마다 놓여 있었고요,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기록, 필사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책방지기를 그린 캐리커처와 책방 드로잉까지도요.
또 다른 점은 ‘안아주는 방’이었어요. 책방 제일 안쪽에는 푸른 숲이 프린트된 커튼을 젖히니 마치 한의원 침대처럼 따뜻하게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편하게 이용 가능하다’는 문구처럼 정말 누구든 방해받지 않고 온전하게 휴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책방에 마련되어 있다니! 그 동안 이곳저곳 책방을 다녀봤지만 이런 휴식 공간이 마련된 곳은 처음 봤기에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가까이 산다면 모임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 와보면 이 책방과 책방지기가 가진 고유한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동네 책방은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우니까요.
저의 마음을 눈치 채신 건지 책방지기 님은 앞으로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특별히 저는 언제든 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회원들만 볼 수 있는 폐쇄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 승인도 받아주셨답니다.
만약 다음에 다시 가볼 시간이 마련된다면 저는 책방 손님이자 동네 주민들이 직접 쓴 글로 출간된 책을 살펴보고 싶어요. 어떤 이야기를 펼쳐두었을지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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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아빠
피구를 통한 요즘 아이들에 대한 단상에도 깊게 공감합니다. 당장 저희 아이들만해도 얘기를 해보면 남들에 대한 Empathy 가 되었건 Sympathy 가 되었건 모두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관심없고 관련 없는 일에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개입하려고 참견하려고 하지 않아요. 무관심하고 무지합니다. 집에서는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디에선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배우게 되는것 같아요. 교육 시스템부터 다시 손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같은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그 어떤 말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요. 인간 본성의 착함과 따뜻함을 발전시켜서 함께 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성과를 낼수 있다는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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