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암전되고 언니들이 무대 위로 솟아올랐다. 그 순간, 눈가가 뜨거워지며 주책맞게 눈물이 찔끔 나와버렸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재빠르게 눈물을 훔치고 환호해봤다. <나의 최애>라는 주제를 생각하다 떠오른 작년 비보쇼 오프닝 현장이었다. 개그우먼 송은이, 김숙 두 명이 2015년부터 진행하는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첫 방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듣고 있는 나는 땡땡이(비밀보장 청취자 애칭)다.

이 비밀보장의 언니들은 과거 소개한 적 있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두 작가님보다 먼저였던 나의 언니들이다. 비밀보장은 숙이 언니가 섭외된 방송에서 녹화 며칠 전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고 그걸 옆에서 지켜본 은이 언니가 ‘더 이상 잘리지 않는 방송’을 만들겠다 나서며 시작됐다. 팟캐스트 시작 당시에도 이미 연차가 꽤 쌓인 개그우먼이었지만 남의 사무실 한쪽을 월월세로 빌려 대강의 오디오 장비로 직접 편집을 하며 만든 방송은 그 근원!부터 응원이 됐다. 마흔이 넘은 언니들이, 더구나 무언가를 벌써 이룬 것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다니!
한 시간 반의 퇴근길, 쭉정이 같은 몸을 광역버스 안에 구겨 넣고, 언니들의 팟캐스트와 그 당시 언니들의 라디오(프로그램명도 언니네 라디오)를 교차로 들었다. 회사에서 잔뜩 찌그러진 날도 언니들의 농담도 조언도 들으면서 하루의 웃음분량을 간신히 채웠다. 고민상담을 컨셉으로 하는 팟캐스트였기에 다른 청취자 사연에 고민에 내 경험들을 겹쳐보며, 숙이 언니의 막무가내식 욕설에 시원해하고 숙이 언니의 언행을 수습하다 버럭하는 은이 언니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집에 가는 길은 매일 너무 긴 경기도민은 그렇게 팟캐스트를 듣다 웃다 졸다 다시 앞으로 감았다 반복하며 집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땡땡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언니들은 ‘비보쇼’라는 공연도 열었다. 첫 비보쇼는 티켓팅에 실패했고, 2018년 비보쇼는 티켓팅에 성공했지만, 하필 회사에 이슈가 생겨 주말에 근무를 해야 했다. 포기할 수 없던 공연이기에 회사 선배에게 급한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딱 4시간을 빼서 비보쇼를 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주말 오전부터 출근해 우울했지만, 언니들이 준비한 쇼를 실컷 즐기며 한층 상기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복귀가 그리 서럽진 않았다. 적어도 비보쇼는 사수했으니까! 그 즈음 주말에도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문서를 수정하고, 페스티벌에 도착해서도 근처 카페를 찾아 노트북을 펼칠 만큼 주말에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 스트레스가 고조되던 당시, 주말 출근 중 4시간의 일탈은 ‘이 맛에 돈 벌지’를 실감케 했다.


이 후에 2020년 비보쇼에는 티켓팅에 성공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공연이 취소되었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작년 비보쇼.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을 보며 왜 눈물이 나왔을까? 6년만에 만난 언니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각자 제2~3의 전성기를 맞고, 월월세를 탈출하여 번듯한 빌딩까지 세울 정도의 큰 회사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 나는 다니던 회사는 그만두고 백수 생활 중이었다. 자랑스러운 땡땡이가 되겠다는 마음 따위는 없었지만, 언니들의 성장과 빗대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얼했나? 하는 영양가 없는 생각을 종종 했더랬다.
하지만 비보쇼에서 만난 언니들은 그동안 이뤄낸 성과에 안주할 생각이 없다는 듯 어느 가수 콘서트 못지 않게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으며 성심성의껏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본업인 코미디 상황극도 보여주고, 본인도 민망해한 근육 옷도 입으며 성실하게 3시간 가까운 무대를 선보였다. 얼마나 많은 회의와 수정을 거쳤을지, 노력의 시간이 짐작되는 공연이었다. 언니들이 땡땡이들에게 보내는 것 같은 노래 7도로 마무리 됐다. 가사가 스크린에 띄워져 같이 곱씹어 부르다 보니 참 언니들 같은 따뜻한 노래였다.
7도 혼자선 의미 없잖아. 내가 있어 니가 좀 더 빛이 날거야
지금까지 잘해 온 널 주목해 니가 있어 나도 있고 내가 있어 너도 있고 함께라서 빛날거야더블V, <7도>
마침 지난주 10주년 비보쇼가 있었다. 하지만 난 보기 좋게 티켓팅에 실패하고 후기만 살펴봤다. 어느 새 10년, 어떤 땡땡이는 공부를 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과거 사연 속 어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단다. 그리고 지금의 난 계약 종료 한달을 앞둔 기간제 근무자가 됐다. ‘00을 이뤘다’, ‘00을 새롭게 시작했다’다는 그럴 듯한 뒷문장은 아직 만들지 못했다. 다만 내가 견뎠던 시간들 그리고 놓고 온 것들에 대해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로 만들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나도 언니들처럼 잘리지 않는 직장, 내일을 만들려고 한 선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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