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등산 갔어요”라는 대답이 자주 반복되던 어느 연말이었다. 산만 타지 말고 ‘괜찮은 남자’도 잘 찾아보라는 기혼자 선배의 걱정이 1절을 지나 2절로 이어졌다. 더 길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에 얼른 소리쳤다. “에이, 선배 진짜! 남자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산이 좋아서 가는 거라니까요!”
하지만...... 젊은 미혼 남녀가 모이는 2030 등산 동호회에 설렘 모먼트가 전~혀 없다? 그건 사실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동호회에 가입하자마자 *정기산행*부터 신청했다. 낯가림쟁이인 나로서는 의외의 용기를 낸 셈인데 이왕 시작했으니 단체 활동부터 제대로 해보겠다는 나름의 포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또 정기산행지는 스텝들이 등산 난이도나 등산 지역 등을 두루 고려해서 아주 신중하게 결정했을 테니 초보 등산인도 충분히 가볼 수 있는 곳일 거라 여겼다.
| *정기산행*은 단체 관광버스 2대 정도에 탑승 가능한 인원을 선착순으로 받아 진행된다. 동호회 스텝들이 남녀 성비와 동호회 활동 등급을 고려하여 조 편성을 하는데 어느 조장의 조원으로 속하게 될지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

그러나 정기산행 장소는 한 겨울의 ‘설악산’이었다. ‘악’자 들어가는 산은 험난하다는데!? 그날 코스는 설악산 오색 약수터(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대청봉(정상)을 찍고 중청대피소를 거쳐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총 거리 14km의 난이도 중상 코스였다. ‘중상’이라고 한 이유는 초보 산악인 입장에서 볼 때, 대청봉까지 오르는 구간(5km)이 꽤 가파른 구간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청봉에서 한계령까지 내려오는 구간(9km)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모르니까 용감하게 떠났다. 그리고 집결장소에서 곧 발견했다. 심장을 빨리 뛰게 할 것 같은 사람을. 내 이상형은 배우 유지태처럼 쌍꺼풀 없는 눈에 흐릿하게 생긴 외모였다. 그는 꽤 흐릿하고 깨끗한 인상이었다. 덕분에 즐거이 버스에 올라탔다. 궁금한 마음에 그가 앉은 자리 가까이에 앉아 인사를 건네고 닉네임을 물었다. 마음에겐 나대지 말라고 다독이며 그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쳐다보고 궁금해 하고, 쳐다보고 궁금해 하다가 어느 틈엔가 잠이 들었다.
설악산 오색 약수터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서너 시 무렵. 등산 준비(정비)를 마치고 같은 조 원들과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타깝게도 버스에서 본 유지태 닮은 남자는 우리 조가 아니었다. ‘근데, 나 산 타러 온 거잖아? 걷다가 자연스레 말 걸면 되지.’ 이건 분명 산에서 괜찮은 남자 찾아보라는 선배 말에 발끈했던 내 태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음이자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걸었다.
얼마 못가 금세 뒤쳐졌다.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친분 있는 사람들은 수다를 떨면서 덜 힘들게 올랐지만 나는 친한 사람이 없었으니 혼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새 내 속도에 맞춰 걸어주는 동호회 회원들이 나타났다. 동호회의 고인물(=좋은 의미로 오래 활동한 멤버)들에게는 뉴 페이스를 잘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걸까. 그들은 정말 어디선가 나타났고, 하나같이 정해진 레퍼토리라도 있는 것처럼 동호회에 언제 가입했는지, 닉네임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렇지만 이름과 나이는 묻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이름과 나이, 사는 곳을 말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 그 자체가 주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본다면 내가 말한 자유로움, 해방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나이, 직업, 사는 곳, 학교(전공) 등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니 말이다. 개인 신상을 오픈하지 않은 채 나누는 대화는 본질에 좀 더 가까웠다. 그 본질이란 물론 ‘산’이었다. 이제 막 열심히 산 타보겠다고 가입한 사람에게 아름답고 매력 있는 전국의 산들을 끊임없이 들려주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더구나 초보 산악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등산 고수가 이성이라면? 자연스레 멋져 보일 수밖에.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꼭 대학교 고학번 선배들이 신입생 앞에서 멋져 보이려는 행동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비빨을 세우고, 온갖 등산 정보를 총동원해 지적여보이고자 했던 모습 말이다. 실은 어떤 대화는 대화를 빙자한 자만추 탐색이 깔려 있었을 테지만. 그런 탐색 과정에 나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응했다. 평소라면 경계하고 신중했을 사람에게도. 당시에는 산에서 만난 사람은 대부분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대책 없는 낙관이 자리 잡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좋은 사람도 어쩌면 그 순간 혹은 그날의 인연일 뿐이라 여겼다. 그러니 솔직할 수 있었다. 계속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에너지 쓸 필요가 없으니까. 이 사람이 별로라면 오늘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고, 다음부터 겹치는 산행을 안 가면 그만일 뿐인 것이니까. 덕분에 산타는 동안이라면 어느 누가 곁에 오더라도 쉽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대화든 유쾌하게 나눴다. 나의 ‘사교성’이 최대치로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가볍게 웃고 떠들며 걷다가 어느 시점엔 꽤 진지한 얘기를 서슴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오래 알고 지낸 가까운 사람에겐 꺼려하면서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는 속 깊은 이야기를 잘 털어놓을 수 있었던 때처럼. 그건 정말 ‘산’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분명 여럿이 함께 걷고 있지만, 산길 양옆으로 자란 무성한 풀과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싸여 상대와 나 둘만 있다는 착각을 종종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오직 둘뿐이라는 착각이 자주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그러니 유지태 닮은 남자는 놓쳤지만 산탈수록 신기하게도 내게 호의를 보이는 이성이 꾸준히 나타났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상대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산행은 어디 갈 건지 묻는 사람도 있었고, 어느 산이 좋으니 다음에 같이 가자는 사람도 있었다. 때때로 정상에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한 다음 사진을 보내줄 테니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속이 보이는 얕은 수법에 나는 흔쾌히 넘어가주었다.
우연히 여러 번 산행이 겹쳤던 회원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호감 정도를 갖고 있었다. 산을 잘 탔고, 대화를 재미있게 했고, 무엇보다 술자리에서 흐트러지지 않았다. 동호회에서는 산행 끝나면 피로도 풀고 친목을 다질 겸 뒤풀이를 했는데, 술 마시다 보면 늘 취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취한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손버릇, 말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더라도 술자리에서 꽐라된 모습을 봤다면 가차없이 내 바운더리에서 아웃. 반면 그는 언제나 반듯했다.
처음엔 또 어느 산에 갈 건지를 물었고,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평소에는 뭘 좋아하는지, 지금 뭐하는지를 묻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산이 아닌 미술관에서 만났다. 동호회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단둘이. 그림을 본 건지 그를 본 건지. 그것도 아님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아주 가까운 것도, 아주 먼 것도 아닌 엉거주춤 상태의 우리를 본 건지 모르겠다. 어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수도. 그 묘하게 낯설고 긴장되고 떨리는 상태로 그나마 확실하게 본 건 술 마시다 취기가 올라 빨개진 서로의 얼굴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땐 소나기가 내렸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천천히 걷다가 생각했다. 우산을 같이 쓰고 걷는 건 옷이 다 젖어도 참 좋은 것이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그 썸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새로운 산행에 갈 때마다 나는 금사빠처럼 내 마음에 괜찮은 사람을 용케 찾아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산타다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혼자만 저만치 앞서 가는 사람인지, 주변을 살펴보면서 뒤쳐진 사람을 챙기고 격려하며 가는 사람인지가 보였다. 또 자연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인지, 정상을 찍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사람인지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졌다. 개인 신상으로 기준을 세우지 않고도 누군가를 알고자 한다면 관찰하고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산에서는 충분했다.
내가 그렇게 나만의 기준으로 알아보는 동안 나 또한 누군가가 알아보는 대상이 되었을까? 산에 다니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놀랍게도(!) 가까워지는 이성도 늘었다. 회사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아직 회사에 있으면 저녁 먹자는 연락이 제일 많았다. 내키지 않는 연락도 있었고, 단둘이 만나기 꺼려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럴 땐 서울 중심가에 회사가 있는 게 다행이 아니라 불행이라 느껴졌다. 내가 가는 산행마다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다. ‘긴가민가’가 ‘역시’였을 때 내 마음은 좋기보다는 두려움이 커서 의식적으로 그를 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히 더 대화해보고 싶고,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그가 준비한 산행을 따라가기도 하고, 나 역시 내가 받았던 것처럼 의도된 연출임에도 자연스러운 척 연락을 해보기도 했으니까. 그가 내 호감의 표시를 알았을까? 알아챘을까? 내 연락을 반가워할까 수차례 고민했고 고민하는 동안 마음은 요동쳤다. 그가 회사 선배가 말한 ‘괜찮은 남자’가 정말 맞을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의 마음이 나와 같은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때의 요동은 아주 즐거운 요동이었다.
등산 횟수로만 따진다면 ‘고수’에 가까울 만큼 자주 산에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짝꿍(=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양산 천성산, 부산 금정산, 경주 남산을 연이어 타는 1박 3산 산행을 함께 했던 멤버들 중에 그가 있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러 차례 함께 산행한 경험과 추억이 있는 익숙하고도 편한 사람이었기에 특별히 그와 대화를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던 기억이다. 그는 산타는 내내 바빠 보였다. 계속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받느라 수시로 뒤쳐졌다. 천성산, 금정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때는 토요일 한낮. 부산대 앞 허름한 숙소에 짐 풀고 그때부터는 MT 온 대학생처럼 정말 신나게 놀았다. 숙소에서 쉴 새 없이 게임했다. 연거푸 마시고 놀다가 잠들어 다음날 경주 남산을 올랐을 때, 그의 본가가 경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의 첫 산행 기억은 그 정도였다. 다만 그 산행 멤버 모두가 친밀했기에 동갑내기인 그 또한 한번 봤음에도 친밀하다고 느꼈다. 그가 다음 달 한라산을 갈 예정인데 아직 등산스틱이 없다는 얘기를 했을 때, 선뜻 내 것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 정도는 등산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쉬운 호의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천성산, 금정산, 경주 남산을 가는 1박 3산 산행이 애초에 그가 나를 만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되었던 산행이었다는 것을. 등산스틱을 빌려야겠다는 것도 그의 계획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우리는 몇 번을 더 만났다. 그가 야근한 내게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연락을 했을 때도 나는 그가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그리고 어쩌다 그에게 운전연수까지 받았던 날, 그에게 고백을 받았다.
그의 고백을 듣고는 그냥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은데? 애매한 거절을 했는데도 그는 변함없이 다음날 아침에도, 그 다음날 아침에도 굿모닝 카톡을 보냈다. 그가 매일 아침 카톡을 보내오던 때에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고객사 뉴스 모니터링을 해야 했다. 새벽 4시는 깊이 잠들어 있기에 너무 충분하고도 완벽한 시간 아닌가? 그런데 그때 그에게 또 연락이 왔다.
“네가 이 시간에 혼자 깨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의 빗장은 완전히 열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솔직히 연애를 대하는 내 마음이 이전과 달랐다는 건 알았다.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컸고, 아직은 친구 같은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괜찮다는 그의 말에 해보기로 했다. 아마도 그때 나는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는 나의 기대를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채워주었다. 야근이 연이어지는 날이면 그는 언제나 회사 앞에서 기다리다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의 차 안에서 입 벌리고 잠이 들어도, 금방 끝난다는 나의 말이 무색하게 계속 야근이 길어져 그의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조차도 그는 화 한번 내지 않았다.
헷갈리지 않는 연애를 하는 동안 우리는 동호회 사람들이 모르지만 동호회 사람들 무리에 끼어 관악산, 구로올레길, 칠보산, 마이산, 민주지산, 지리산 등을 꾸준히 다녔다. 오대산, 모악산, 한라산, 가리산 등등 단둘이도 다녔다. 그리고 그의 성실하고도 꾸준한 믿음과 사랑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19 시기에 발생한 여러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혼했다.
산이 있어 나는 야근하는 30대 회사원 시절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그 산 덕분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데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결혼하며 육아 동지가 된 동성의 산 전우들까지도 만났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운이 오도록 언제든 ‘흔쾌히’, ‘기꺼이’, ‘즐거이’의 마음을 산에서만큼은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니 오늘의 긴 레터를 다 잊어도 ‘흔쾌히’, ‘기꺼이’, ‘즐거이’만큼은 잊지 말고 움직여보시기를 바란다.
🔖 마지막으로 첫 정기산행이었던 설악산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전하며 물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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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꺼내는 클리셰 같은 문장. 후배를 둔 직장인이라면 뜨끔할 이 문장을 구독자 여러분께 던집니다. 어느덧 사회생활 10년이 훌쩍 넘은 경력자들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때론 답답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분노를 삭혀가며 고군분투 중인데요, 이런 저희에게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들려주실 귀한 선배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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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이 사람이 생각났다!’ 하는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내 일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또 본인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신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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