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도서전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진지했다. 작년에는 출판사 홍보 담당자였던 과거 DNA를 버리지 못한 채 출판사 부스 기획과 이벤트를 주로 살폈다. 출판사 부스 키워드는 무엇일까. 출판사가 sns 또는 출판사 회원가입 인증을 유도하고, 예비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굿즈(책갈피, 배지, 키링, 에코백, 포스터, 도서 소개 책자 등)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봤다. 부스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받기 위해 오래 서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서 있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아마도 언젠가 다시 출판사를 다니게 된다면 이 모든 게 레퍼런스가 되리라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올해는 철저히 책을 만들고 판매하려는 예비 출판인의 모드였다. 독립출판으로 가제본(샘플북)을 만들었고, 인쇄 들어가기 전에 출판사 등록을 하려고 이름을 고민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사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니까 작년처럼 중대형 출판사들의 부스까지 챙기고 살피는 대신 그 시간을 모두 ‘책마을’ 부스에서 쓸 계획이었다. 이런 걸 계획까지 해야 해? 하고 의아해하는 독자분도 계실 것 같아 설명하자면, 책이 좋아 도서전을 간 사람들에게 출판사 부스는 그냥 지나치기가 정말 어려운 곳이다. 한번 마음을 뺏기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시간과 돈과 체력까지 몽땅 쓰기 좋은 곳.
그렇게 나와의 약속을 단단히 해두고도 A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몇 번이고 발길이 느려졌다. ‘아니 여기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웃거렸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책마을’은 1인 출판사를 비롯해 독립출판 및 아트북 생산자들이 모인 특별 판매부스다. 올해는 61개의 부스가 마련됐다. 책마을 부스에서 내가 알아가고 싶은 것은 네 가지였다. 첫째, 출판사 이름이 뭐지? 둘째,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아 판매로 이어지는 책은 어떤 특징이 있지? 어떤 책이 잘 팔리지? 셋째, 부스가 어ᄄᅠᇂ게 꾸며졌고, 책은 어떻게 진열되어 있지? 넷째, 판매자가 어떤 멘트를 할 때 내가 머무르고 책을 좀 더 살펴보게 되었더라? 그러면서 책마을 부스 전체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봤다. 다 둘러보고 부스를 떠난 이후에도 기억에 남는 출판사 이름은 무엇인가를 의식하려 애썼던 것 같다.
그건 나의 향후 계획과도 연결되어 있는 목적이 뚜렷한 스터디와 같았다. 사실 내게는 이런 계획이 있었다. 6월 안에 출판사를 등록하고, 7월 초 인쇄가 끝나면 서점 입고를 진행해야겠다는 계획. 그런데 출판사 이름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 도서전에서 힌트를 찾고 싶었던 것. 당시 고민하던 출판사 이름은 아래와 같다.
| 단단한마음, 틈새서재, 오늘의 시도, 내일의 서재, 다시빛, 마음온도, 한낮의숨, 바람의결, 바람결, 오름서재, 한낮의결, 내일의온도. (담장너머도 있었으나 이미 출판인쇄업에 등록된 이름이라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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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려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그때 좀 놀랐는데 내가 크게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좋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사실 내 마음 속 1번은 ‘단단한마음’이었다. 귀가 얇아 외부의 말에 잘 휘둘리고, 자책하는 나 말고 어떤 상황에서든 잘 견디는 단단한마음을 갖고 싶어서. 개복치 같은 내 멘탈을 단단한마음으로 무장하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이름. 그것은 이미 만들어둔 가제본 《시도라 불러야 할 어떤 실패》를 설명하기에도 적합한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점 헷갈렸다. 내 마음 속에 생각해둔 이름 대신 사람들이 좋다는 이름으로 등록을 해야 하나? 그게 좋겠지? 그러면서도 주저하게 만드는 무엇이 마음 안에 있었다.
그 타이밍에 찾은 책마을 부스는 사례 공부하기 아주 좋은 장소였다. ‘하호하호’, ‘쿠쿠루쿠쿠’, ‘소환사’, ‘디자인사강’, ‘파도’, ‘메이커메이커’, ‘닻프레스’, ‘딸세포학과’ 등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아주 가볍게 지었다 싶은 이름도 보였는데, 그래도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너무 진지하고 너무 진심인 나를 좀 환기하게 됐달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이자 즐거움은 ‘쿠쿠루쿠쿠’(cucurrucucu) 라는 출판사를 알게 된 것이다. 쿠쿠루쿠쿠는 ‘구구구’ 우는 비둘기 울음소리를 뜻한다고 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느린 호흡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일상에서 포착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는 출판사답게 매대에 깔린 책들이 아주 흥미로웠다. 판매자(쿠쿠루쿠쿠의 출판사 대표 겸 작가)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의 포인트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을지도.
쿠쿠루쿠쿠 매대에는 책에 대한 소개와 이 책을 봤으면 하는 사람(“이런 분께 추천해요”)이 노란 색지에 예쁘게 타이핑되어 꾸며져 있었다. 《응답하는 사람》(하나의 사물이 품은 무수한 이야기로, 넥타이의 다채로운 무늬를 보며 떠올린 다양한 형태의 글을 사진과 함께 담은 책), 《파도가 머무는 자리》(집 앞마당을 자유롭게 뛰노는 고양이 가족의 사진을 담은 책), 《깊고 무거운 다짐》(결혼을 하며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질문을 받고 남편과 함께 답을 써 내려간 책), 《안부의 안부》(오래 전 누군가 나에게 안부를 물었던 편지에 안부를 물어보는 책, 40여 명이 수집하고 있던 오래된 편지와 사연을 엮은 내용), 《포개진 계절》(초록 풍경을 1년 동안 사진으로 찍고, 죽음과 사라짐을 글로 담은 책) 등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들었다 놨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매대에 깔린 책들을 전부 다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아주 신중한 고민 끝에 생애 첫 시골생활에 대한 기록을 담은 《괴산일기》(1년 동안 괴산에 살면서 만난 40가지 장면과 그 장면을 보고 떠오른 생각과 글을 그림으로 담음) 한 권을 샀다. 세컨하우스로 시골 ‘빈집’을 열심히 찾다가 아이를 낳은 뒤로 멈춰 버린 나의 로망을 실현한 사람이 궁금했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로컬로의 이주를 미래 계획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내게는 안 사고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었다.
쿠쿠루쿠쿠 출판사가 판매하는 특별 굿즈도 출판사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접 주운 돌을 깨끗하게 닦아(물론 특수처리도) 배지로 판매하고 있었다. 돌배지에는 모두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강, 결, 곁, 곳, 공, (...) 담, 땅, 때, 뜰, 뜻, (...) 볕 식으로. ‘ㄱ’부터 시작해 ‘ㅎ’의 ‘힘’까지. 그중 ‘빛’, ‘숲’, ‘숨’, ‘흙’, ‘흥’은 이미 판매가 된 상태였다. “이거 문장을 만들려면 한 10개는 사야겠는데요?”하며 까르르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판매자, 구매자를 계속 살펴볼 만큼 오래 머물렀다는 의미)
또 다른 수확은 ‘딸세포학과’의 발견이다. 언제부터인가 구술생애 기록과 인터뷰의 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러다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 있는데(물론 엄두가 나지 않는 일), 그것을 이미 실현한 사람들이 딸세포학과에 있었다.
딸이 묻고 듣고 쓰는 엄마의 역사이자 모녀 구술생애사 시리즈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도 흥미로웠는데, 엄마를 인터뷰하려다 결국 못하게 된 이야기를 엮은 《나의 엄마 인터뷰 실패기》도 흥미로웠다. 엄마 인터뷰 책이라고 얘기했을 때 다수의 반응은 이럴 것이다. “그런 프로젝트는 너무 많고 흔하잖아.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걸?”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그럴 때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우리 삶은 원래 평범하고 특별할 게 없잖아? 너는 날마다 특별해?”라고. 평범함 속에도 진짜 보물을 발견해내고, 어떻게든 눈앞에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노력과 성과를 단순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내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한참 머물면서 출간된 책들을 꼼꼼이 살펴봤다. 부스를 지키고 있는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날의 판매자를 붙들고 어떻게 기획을 하게 되었는지 묻고 현재 책이 있기 전의 히스토리도 들었다. (당연히 책을 여러 권 샀으리라 짐작이 되시죠?) 명함도 받았다. (평범한 이야기를 잘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긴 ‘딸세포학과’의 책들은 이후 ‘알라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주목해야 할 책으로 선정됐다.)
도서전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긴 시간 고민해온 출판사명을 확정했다. 출판사 이름은 ‘솔솔솔’. 바람이 불듯이 독자의 마음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책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더 고민하지 않고 결정해버렸다. 1권만 낼 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다음 책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또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 부르기 쉽고 외우기 쉬운 이름으로 최종 결정!
출판사 등록을 하고 나니 써보고 싶은 이야기도 자연스레 생각난다. 레터의 코너인 ‘대체 산에 뭐가 있는데요?’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의 여름 사진집’, ‘부동산사장님이 함께 울어준 아파트매매일기’, ‘인터뷰이의 말말말’까지. 내가 글을 쓰는 속도보다는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 더 많을 테니까 책을 만드는 시점에는 더 많은 에피소드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안일한 기대도 품어보게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지쳐서 이제 그만 나갈까 고민하다가도 부스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에너지가 샘솟았던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 올해 도서전은 내게도 분명한 ‘믿을구석’이었다. 오픈런하길 정말 잘했다.
📍 아무도 안 궁금하실 수도 있겠지만, 책을 내려던 계획은 역시 미뤄졌습니다. 제가 한시적으로 취업을 하게 되어 9월 중순까지는 육아-회사 일-가사의 세 가지를 돌보고 챙기느라 여력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올해 안에는 반드시 실물 책을 소개할 수 있도록 느려도 계속 가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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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이 사람이 생각났다!’ 하는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내 일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또 본인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신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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