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을까 궁금해서 왔어요”
봉사활동이 없는 날 수목원을 찾은 봉사자님을 만나 인사를 건넸더니 돌아온 말이었다. 또 하루는 표찰을 꼽던 중 숲 한 켠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해설사님을 발견했다. 꽃이 피는지 보는 중이였다는 설명이었다. 다들 못 말리는 꽃사랑이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다고 그 자리에서 당장 꽃이 피는 것이 아닌데, 궁금해서 못 참겠다며 굳이굳이 찾아가 바라보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호들갑을 떨며(꽃망울이 더 커졌다는 류의 귀여운 호들갑이다) 또 꽃이 피면 환희에 찬 얼굴로 동네방네 소식을 알린다. 사실 그 모습에서 나도 자유롭지 않다. 역시 개화는 식집사들을 설레게 하는 마법의 단어다.
요즘 시시때때로 꽃의 모양을 바꾸며 안달나게 만드는 식물이 있다. 바로 수련! 요즘 수목원 온실에서는 열대수련 꽃이 한창이다. 백색부터 노랑, 빨강, 보라까지 다채로운 색깔과 은은한 향으로 마음을 홀리는 녀석들인데, 수련의 아름다움은 클로드 모네를 통해서도 익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여튼 수목원의 다양한 수련을 익혀야 하고, 또 예쁘게 찍어서 홍보도 하려면 때를 잘 노려야 한다. 그런 내게 온실 담당 주무관은 제안했다.
“연못으로 들어오세요!”
아… 역시 무엇이든 자세히 보아야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온실 연못까지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전까지는 연못 위 다리에서 서서 난간 밖으로 손을 뻗어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는데, 수목원 근무 버프로 당당히 연못에 들어가 꽃도 잎도 만져가며, 향도 맡아가며 사진까지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못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에 바로 콜!을 외칠 수 없었다.
연못에 들어갔다 나오면 나의 옷은? 신발은? 현실적인 질문이 따라왔기 때문. 연못에 들어가지 않아도 요즘은 밖에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인데, 후텁지근한 온실, 그 속에서도 습도 높은 연못 안을 견딜 수 있을까? 연못으로 들어오라는 제안 수락은 하루 유예하고 갈아입을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모두 챙겨 다음날 당당히 입수했다. 이렇게 입수까지 하는데, 수련의 수술, 암술은 물론 옆 태까지 찍어 꽃받침도 보고, 잎모양까지 완벽히 담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모조리 동정(同定)해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현실을 맞닿기 전까지.
온실 속 연못에는 화분에 수련이 식재 돼 있었는데 한 화분에 여러 수련이 한데 모여 있어, 꽃 사진은 찍었어도 이 잎은 누구의 잎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꽃 모양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예쁜 건 많을수록 더 좋으니까 뭐 그런 마음인 건지 사람들은 비슷한 색의 수련들을 자꾸 자꾸 만들어내 꽃, 꽃받침, 잎, 줄기까지 함께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인지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수련 이름 맞추기는 깔끔히 포기하고 물 속의 느낌에 좀 더 집중했다. 언제 또 들어와 보겠는가? 이미 수십번을 오간 온실이었지만, 이렇게 물 속에 잠겨 천장을 바라볼 것이라 생각지는 못했으니까. 사실 신기한 거 반, 찝찝한 연못 냄새 반이긴 했다 ㅎㅎ
나름의 낭만을 찾고 있을 때, 또 다른 미션이 떨어졌다. 온실 밖 수연지에 있는 빅토리아 수련의 잎이 일부 가라앉고 있으니 걷어내라는 이야기. 이왕 장화도 입었으니 수연지도 들어나 가보자 싶었다. 하지만 바깥 연못은 깊은 곳은 수심이 5m까지 되니 긴장이 된 것도 사실. 물론 나는 매우 바깥에서 물이 허리춤 정도 들어차는 곳에서 살짝 돕기만 했다. 잎의 지름이 최대 3m까지 되기로 유명한(지구 상의 모든 식물 가운데 가장 넓은 잎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도 띄운다고…) 빅토리아 수련이 있다는데 또 가까이 봐야하지 않겠는가? 애석하게도 우리 수목원의 빅토리아 수련은 아직 아가아가하다.
하지만 몰랐다. 그렇게 어마무시한 가시를 가지고 있을지. 꽃받침과 줄기는 물론 잎 뒷면까지.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다가가기 어려운 도도한 친구다. 여튼 주무관님과 함께 뜰채로 어찌저찌 가라앉는 잎들을 건져내 들고 수연지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오니 앞으로 빅토리아 수련 필 때마다 ‘내가 말이야~’ 할 것 같은 에피소드 하나를 득템한 느낌이다. 건져 낸 잎은 몇 장 안됐지만 크기도 크고 가시도 커서 무겁고 무서웠던 건 안 비밀이다.
열대수련은 대게 아침에 일찍 꽃을 피우고 점심 무렵부터는 서서히 오므라들기 시작해 저녁시간이 되면 완전히 꽃봉오리를 닫는다. 꽃 피는 시간을 근무한다고 보면 그들은 수목원에서 8-5제 아니 7-4제쯤 근무한다. 그렇게 2~3일 오전에 꽃을 보여주고 저녁에 닫기를 반복하다가 꽃봉오리를 완전히 닫고 물속으로 잠수해버린다. 영원히 안녕, 하~야속하다. 짧게 몇시간 인사하는 것도 모자라 꽃잎 하나 남겨두지 않고 도톰한 촉수 같은 모양으로 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썩어 버린다니…
다른 수련들과 달리 밤에 피고 아침에 꽃을 닫는 야행성 빅토리아 수련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첫날 밤은 하얀 꽃을 피웠다가 다음날 분홍빛 꽃을 보여준단다. 꽃술을 품은 꽃송이 가운데 부분이 바짝 솟아오르면서 그렇게 보인다고.(이 부분은 아직 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나서 빅토리아 수련도 다른 수련들처럼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개화를 마친다고. 짧은 찰나만 보여주고 물 속으로 들어가버리니 아침에 피나 저녁에 피나 야속한 건 마찬가지. 찾아보니 수련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라고 한다. 꽃봉오리를 닫는 걸 잠잔다고 여겨 붙였다고 하는데, 어쩌면 물 속으로 가라앉는 그 과정을 담은 이름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런 야속함을 맛본 일은 어제도 있었다. 주무관님이 열대수련 표본을 위해 종류별로 채집해 오셨다. 연못 속의 젖은 모습과는 또 다르게 뽀송하게 핀 모습에 신기해하며 이번엔 사진을 제대로 찍어야지 다짐을 했다. 그래도 일단 점심시간이니 밥부터 먹고 시작했는데, 벽도 세팅하고, 꽃을 꽂을 화기도 준비하고 나니 얄궂게 꽃봉오리를 점점 닫는 수련이었다. 몰라봤다. 퇴근 시간은 완전히 닫히는 시간일 뿐, 근무 시간 중에도 계속 퇴근을 향해가는 녀석이라는 걸. 애석한 마음에 꽃봉오리를 살짝 살짝 제껴 보려고 해도 ‘퇴근 시간이야’ 하며 단호하게 꽃잎을 닫는 듯 했고, 할 수 없이 일부는 꽉 닫힌 상태라도 촬영을 하자 싶었다. 그런데 왜? 그 상태마저 고왔던 걸까? ㅎㅎ 본인은 의도한 적 없지만 상대(나)만 안달나는 아주 밀당의 고수다.
흔히 진흙 탕 속에서도 고고하게 올라와 말간 모습을 보여주는 연꽃과 수련을 비교한다. 연꽃은 꽃은 물론 잎사귀도 물 위로 껑충 솟아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에 반해 수련은 잎은 물 위에 둥둥 떠 늘 젖어 있고, 꽃도 수면 위에 동동 떠 있거나 살짝 올라와 있다. 연꽃은 꽃잎이 진 후에도 꽃턱이 남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혀 존재를 보여준다. 하지만 수련은 ‘할 일 다했으니 이만 사라질게요’ 같은 느낌으로 아련히 잠수해버린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연꽃을 진흙탕에서도 고고한 선비로 비유하며 옛 군자들은 찬양했지만, 수련의 마지막에 더 마음이 간다. 더 사연 있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하고 퇴사하는 직장인의 기개? 홀가분함?이 느껴진달까? 혹시 주변에서 수련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 꼬르륵 가라앉는 모습까지도 같이 봐주길. 개화의 환희 뿐 아니라 마지막 모습까지 누군가 봐준다는 것은 낭만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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