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는 사람들

거미줄에 걸린 파리의 운명_찰라흐

2024.03.22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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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된 편지

벌써 몇 년 전에 받은 편지인데 그 편지를 보고 다시 A가 생각났다.

A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2002년 월드컵 당시 A는 태극기가 달린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누볐다.

중산층의 평범했던 A의 집은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반지하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중학생 때였다. 낯선 동네 낯선 친구들. 집안 형편이 어려워 A는 학교를 마친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18살 때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이면 사이키를 터뜨리고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누볐다. 신나는 추억도 잠시 음주를 한 친구가 사고로 떠나버렸다. 그때 이후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오토바이를 팔아버렸다.

20살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 친구는 A에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며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A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비싼 양주도 마실 수 있고 이쁜 여자들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한창인 나이여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호스트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A는 술 냄새를 풍기며 일어나 해장을 했다. 그리고 남들이 쉬는 동안 일을 했지만 적지 않은 돈을 벌었기에 그곳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24살 호스트바 일을 하면서 월수입이 천만 원을 넘었지만 늘 돈이 없었다. 버는 돈의 대부분은 일숫돈을 채우느라 여유가 없었다. 이유는 스포츠토토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벌어도 사채 빚을 갚을 수는 없었다. 점점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산더미처럼 불어난 빚에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해 도박에서 벗어나고자 일하던 지역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26살 부산에서의 생활은 더없이 좋았다. 관광지라 그런지 손님 층도 달랐다. A는 어느새 5명의 선수들을 거느리는 마담이 되어 있었고 열심히 일한 결과 1년 반 만에 빚 청산을 할 수 있었다. 나름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이제 도박이 아닌 클럽에서 놀면서 날려버렸다.

클럽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며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돈도 여자도 부족할 것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같이 일하며 알게 된 친구가 연락이 와 부산에서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일을 하며 같은 집에서 생활했다. 예전에 그 친구가 필로폰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의 권유에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거절할 수 있었기에 약을 한다는 그 친구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당시 하지 않았다.

29살 어느 여름날 이제 돌아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여느 토요일처럼 클럽에서 놀고 있었다, 같이 간 멤버들과 샴페인을 마시고 놀고 있는데 같이 사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클럽 1층으로 오라고 했다. 인천까지 가서 약을 구해왔다며 들떠 있었다. A는 도대체 그게 뭐길래 그러냐고 했더니 그 친구는 “파라다이스를 구경시켜줄게”라고 했다. 그날 드디어 A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말았다. 그날의 그 느낌이 박제되어 버렸다.

그렇게 A는 빠져나올 수 없는 세계로 더 들어가고 있었고 더 대담해져가고 있었다.

여자와 약이 항상 함께였다.

30살이 된 A는 점점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다. 대인기피증과 자괴감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병과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A에게 마약을 공급하던 사람이 사라져 하는 수없이 마약을 중단했지만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기 비하를 하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며 결국 죽을 결심을 했다. 당시 생활했던 오피스텔의 문을 잠그고 불을 끈 후 촛불을 켜 집구석 구석을 살펴 바람이 새어 나오는 모든 곳을 테이프로 막은 후 유서를 쓰고 수면제를 먹고 가스를 켠 뒤 잠들었다.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몽롱한 기분으로 눈을 뜨고 나니 순간 너무나 폭 잘 잔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열고 그저 허탈해 웃었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죽을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그래서 부산을 떠나기로 했다.

31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을 했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물론 술만 취하면 약 생각이 간절해 힘들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약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대견하게도 참았다. 그런데 그 인내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번 먹잇감이 된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마약의 세계. 다시 약을 팔겠다며 A를 유혹하는 공급책의 연락에 또다시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되고 말았다.

혼자 거미줄에서 벗어나고자 허우적 되던 32살에 사랑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에게 마약중독 사실을 알렸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A를 사랑해 주었고 마약중독자인 것을 알고도 A 곁을 지켜주었다. A가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녀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매번 실패하고만 A는 더욱 고통스럽기만 했다. 또다시 약에 취해 잠들었고 다시 눈을 뜬 순간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놀라거나 겁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교도소에서 1달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를 오는 그녀 덕분에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고 나온 후 약을 하는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그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계획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다.

1년 반 정도 건강한 시간들을 보내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33살 겨울 부산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연락이 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눈앞에 약을 꺼내는 순간 A는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그 친구가 잡히면서 다시 A는 구속되고 말았다.

말미에 A는 나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약을 처음 접하고 엄청난 쾌락을 느꼈고 그 기억에 중독되어 자아를 잃었고 소중한 사람들 또한 잃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이 있고 미래를 약속한 그녀가 있었기에 힘을 내고 있다. 스스로 약을 끊겠다는 의지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아직까지 자신의 곁에서 믿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나약한 자신과 싸워보겠다고!!!!

지금은 거미줄에서 빠져나와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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