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삶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6) 베니스의 사계_월요

2024.03.25 | 조회 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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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오직 사흘의 여행으로 베니스의 사계를 논할 수 있는 이유는 베니스에서 비발디의 사계 공연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미리 계획한 일정이 아니라 가이드의 지나가는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가이드님!) 생각보다 볼 것이 없는 무라노 섬에서 일찍 돌아와 저녁 시간이 남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격이 괜찮았다. (인당 30유로에 딸은 학생 할인으로 25유로)

베니스는 비발디의 고향이자 그가 사제로서 복무한 곳이다. 지금은 호텔로 변한 리알토 광장 근처에 수도원에서 작곡도 하고 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베니스에서는 비발디를 기념하는 크고 작은 공연이 펼쳐지는데 그중 잘 알려진 공연이 성 비달 성당의 공연이다.

베니스 성 비달 성당에서 매일 비발디의 곡으로 연주회가 열린다. 사계와 비발디의 다른 곡들을 교대로 연주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사계를 들을 수 있었다. 비달 성당은 베니스 골목골목을 헤매며 여러 번 지나친 아름다운 아카데미아 다리 근처에 있었다. 지정 좌석이 따로 없고 30분 전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에 혹시 줄이 긴가 싶어 부지런히 갔는데 정말 생각보다는 긴 줄이 있었다. 백인 노부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바로 우리 앞에 줄 서신 할아버지는 눈을 굴리며 여행지에서 연주회에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 말이 되냐고 연신 투덜대시고(우리까지 돌아보시며 동의를 구하고) 잘 차려입으신 할머니는 얼굴을 돌리고 상대를 안 하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연출하셨다. 앉아보니 성당은 반 좀 넘게 찼던 것 같다. 딱히 줄을 설 필요는 없었던 셈인데, 그래도 베니스에 와서 음악회 줄을 섰으니 재미있는 경험이다 싶었다.

접을 수 있는 간이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공연장이 된 성당을 둘러보았다. 낮에도 와 보았던 성당.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연주회 팜플렛 테이블 뒤에 앉아 있던 직원에게 여기가 성당 맞냐고 물었던 곳이다. 십자가도 감실도 없고 이제 미사도 드려지지 않지만 그래도 명칭은 성당이고 그것도 유서 깊고 아름다운 성당이다. 성화들이 여전히 걸려있지만(중앙 제단의 화려한 성화는 카르파쵸의 그림이란다) 교회 벽면을 따라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고 입구에 놓인 테이블에는 펼쳐놓은 연주회 팸플릿과 CD가 놓여있다. 유럽의 교회들이 교회의 기능을 잃고 술집으로까지 변한다는 한탄 섞인 예화는 설교에서 워낙 많이 듣긴 했지만 안타깝다기보다는 이렇게라도 활용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니스의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고 가이드의 설명대로라면 캄포마다 성당이 있었을 테니 인구 대비 성당이 너무 많았을 테니까.

시간이 되자 검은 셔츠에 바지로 다소 캐주얼하게 옷을 맞춰입은 연주자들이 박수 소리와 함께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프시코드와 함께하는 현악단이었다. 곧 산뜻하고 아름다운 봄의 선율로 성당 안이 가득 찼다.

공연은 좋았고 한 시간 여로 짧았고 재미있었다. 방송국 봄 가을 개편 때 배경음악으로 친숙한 음악이라 부담이 없었다. 돌아가며 솔로 연주를 했는데 다들 뛰어난 연주자들이었다. 특별히 첼로 연주자가 어찌나 온몸으로 연주를 하시던지….(보는 재미마저!) 모두가 정말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셨다. 게다가 베니스의 성 비달 성당이라는 장소에서 듣는 사계라니, 그 자체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더 괜찮은 표현이 없을지) 성 비달 성당 자체가 공명이 좋아 어느 연주홀 못지않다고 한다.

연주회를 마치고 막차를 타기 위해 깜깜한 밤의 베니스를 전속력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딴딴딴 따다 딴~ 딴딴딴 따다 딴~ 이제 다시 보지 못할 베니스의 골목들 광장들 수로들이 우리 가족이 흥얼거리는 사계의 음률과 함께 휙휙 지나갔다. 이렇게 우리는 베니스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했다.

음악은 여행 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남편은 차에서 주구장천 사계만 듣는데 어찌나 많이 듣는지 사계 음악이 들리면 눈앞에 떠오르는 광경이 성 비달 성당이 아니라 창밖에 지나가는 동부 간선도로의 풍경일 지경이다.

사실 이렇게 많이 들어도 사계의 12개의 곡들은 봄이 가을 같고 가을이 봄 같고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다. 어쩌면 베니스가 사계절이 그리 덥지 않고 그리 춥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라서가 아닌가 싶다. 음악을 듣고 계절을 떠올리며 구분하려는 나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그저 많이 들어봤다 싶은 곡은 봄과 가을인데 이 둘 중 특별히 더 많이 익숙한 곡이 가을이라는 식으로 구분을 하게 된다.

딴딴딴 따다 딴~ 딴딴딴 따다 딴~(봄)

딴딴딴따 딴딴따 딴딴딴따 딴딴따 딴따라딴딴따~(가을)

-곡을 아시는 분은 머릿속으로 음성 지원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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