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무주이야기 3_목담

2024.03.21 | 조회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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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무주에서의 후배의 삶에 크게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새로운 식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길냥이들이었다. 무려 여섯 마리나 된다. 2년 전에 길고양이 두 마리가 집 마당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임신을 하자 후배 집으로 찾아왔더란다. 원래 고양이는 새끼를 낳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곳을 찾아간다는데, 후배의 집이 그런 곳이었나 보다. 임신을 한 고양이를 보자 후배는 안으로 들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잉태한 이들은 돌봄을 받아야 한다. 길냥이는 새끼들을 낳았고, 어미는 후배의 집에서 안전하게 새끼들을 돌보았다.

1년 후 새끼 고양이들은 다 자랐고, 그중 한 마리가 임신을 했다. 그리고 어미 고양이도 비슷한 시기에 다시 임신을 했다. 모녀가 동시에 임신을 한 것이다. 모녀는 각각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여섯 마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배네 집에는 지난해 가을부터 여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겨울을 나게 되었다.

냥이들은 어린 티를 벗고 성장하는 시점에 있었다. 내가 보았을 땐 4~5개월 정도 자란 때였다. 흰 고양이 네 마리에 고등어 고양이 두 마리다. 거기에 엄마 고양이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살고, 가끔씩 할머니 고양이가 와서 밥을 얻어먹으며, 새끼들이 잘 크고 있는지 살펴보고 간다고 한다. 할머니 고양이는 완전히 길냥이어서 후배에게조차 곁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임신했을 때 돌봐주었던 후배에게 감사의 표현이라도 하듯 가끔씩 찾아와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까칠한 고양이들은 생전 처음 본 낯선 인간을 경계하며 쉽사리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나는 동물들과의 친화력이 좋은 편이었지만, 강아지와는 워낙 성향이 다른 이들이라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손을 갖다 대어 접촉하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냥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고양이 장난감으로 1시간 넘게 놀아주었다. 그게 먹혔는지, 아님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들 중 절반은 나의 손에 코를 살짝 갖다 대 주었다. 하양 고양이들 중 두 마리는 ‘오드아이’였다. 눈동자 색깔이 한쪽은 하늘빛이었으며, 다른 쪽은 오렌지빛이었다. 오드아이 고양이들끼리도 서로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조금씩 다른, 매력 넘치는 빛깔이었다. 도시에서도 귀하다는 오드아이 고양이가 이런 촌에 처음부터 길냥이였을 리는 없다. 시작은 누군가 버린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팠다.

처음엔 모두 똑같아 보이던 고양이들이었는데, 조금씩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난감으로 놀 때 그들의 적극성이나 태도에서도 차이가 났고, 머리의 검은 줄무늬가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줄무늬 모양에 따라 한줄이, 두줄이, 반줄이, 고등이 등으로 불렀다. 이들은 서로서로 사이가 좋았으며,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심심한 줄 몰랐다.

후배는 정작 자기를 위한 음식은 다 자신의 노동으로 공수하면서 냥이를 위한 사료를 사기 위해 돈을 썼다. 자신이 사는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었으며, 6개의 잠자리와 6개의 화장실을 만들어주었다. 매일 배설물도 치워주었다. 성가실 법한데도 불평은 하지 않았다.

위풍이 센 시골집에 비닐 몇 겹으로 방풍을 해도 고양이가 드나드는 길을 터놓아서 냥이들이 그리로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고양이들은 독립적이어서 후배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후배 역시 길냥이들을 통제하거나 길들이지 않았다. 이들이 커서 자유롭게 자기 영역을 확보할 나이가 되면 가끔씩 오가는 거처가 되기를 바랄 뿐, 집냥이처럼 안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후배와 냥이들은 서로 평등했다. 적당히 배려하고 적당히 친절했다. 일부러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이름을 지어준 고양이가 죽을 때가 되어서 앞마당에 와서 죽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서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적당히 위로와 기쁨이 되어주는 삶이 좋아 보였다.

나와 함께 놀아준 냥이들은 모두 네 마리였다. 여섯 마리 중 두 마리는 놀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또는 나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고등이였고, 세 마리는 하얀 냥이들이었다. 그중에 두줄이는 가장 적극적이고, 욕심도 많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비슷비슷했는데, 두줄이만큼 계속 파워풀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곁으로 장난감이 올 때에는 두줄이 못지않게 날렵하고, 용맹했다. 그중 한 마리는 가끔씩 기침 비슷한 것을 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호흡기가 좋지 않았다 한다.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머무는 며칠 동안 유독 내 근처에서 맴도는 냥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왔는지 알지 못하게 살짝 와서 내 의자 옆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헤어져야 할 무렵에 알게 되었다. 그 냥이가 내가 놀아준 네 마리 중 한 마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상관없다. 다만 몇 달 후에 내가 왔을 때 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듯이 그들도 나를 그 정도만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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