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한 봄밤의 꿈’_목담

2024.05.16 | 조회 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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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서울에 살면서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이것이 운이 좋은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지방에 고향을 둔 사람처럼 내가 태어난 동네나 마을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다. 알다시피 서울이라는 곳은 그러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내가 어릴 적 숨 쉬었던 공간, 학교나 시장, 오랜 시간 동안 버텨준 가게나 건물 등이 남아 있어서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행정구역 안에서 살았지만 이사는 많이 다녔다. 아버지가 집 짓는 일을 했기 때문인데, 당시만 해도 건설업계 하청업자들은 일을 한 대가를 현물로 받았던 일이 많았고, 그런 관행 때문에 아버지는 공사를 하게 되면 완공 후 집 한 채를 얻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사 대금으로 새 집을 받으면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야만 전에 살던 집을 판 돈으로 함께 일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줄 수가 있었다. 임금과 기타 비용 등을 다 제하고 남는 수익이 아버지의 돈벌이가 되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이사는 엄마의 몫이었다. 지금은 이삿짐센터가 있어 비용을 들여서 하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이삿짐을 싸고 풀고 하는 일은 아주 고된 노동이었다. 평균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야 했기 때문에 엄마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장 기술자로서 이런 집 장사를 통해 꾸준히 일을 하셨고, 덕분에 우리는 이사 갈 때마다 조금씩 큰 집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지은 집에 이사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는 새로운 집을 지을 때마다 가끔씩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우리가 이사 갈 집이라고 보여주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 여러 채에 살았던 셈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잘 찍어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얼마 전 저녁에 지역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행사장에서 나의 집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밤공기가 좋은 탓에 걸어가겠다는 엄두를 냈다.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가 걸으면서 그 동네가 내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라는 것을 알았다.

분명 길을 가다 보면 내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를 지날 터였다. 시간은 저녁 9시가 넘었고, 집까지 걸어가려면 꽤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발길을 돌려 내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로 향했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학교 가는 길에 있었던 ‘토끼 문방구’, 그리고 10원에 10개 하던 떡볶이 집이었다. 그리고 학교 담장 길. 나는 기억에 이끌려 낯설지만 정겨운 그 길을 걸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토끼 문방구가 있었던 자리 그 어디쯤에 오자, 신기하게도 문방구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나를 불렀던 이름이 기억났다. 내 성이 한 씨였던 것을 알고 있던 문방구 아저씨는 나를 보면 늘 ‘한양!’이라고 불렀었다.

나는 이제 나의 집을 찾으려고 기억을 더듬었다. 내 기억에 문방구를 지나서 오른 쪽 골목으로 가면 둥그렇게 공터가 있었다. 거기서 동네 아이들과 ‘다방구’ 놀이며 고무줄놀이며 ‘오징어 게임’ 등을 하고 놀았다. 한창 정신없이 놀다 보면 엄마가 어김없이 ‘밥 먹어라!’ 하고 불러댔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골목을 돌아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채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나 반갑게도 둥그런 공터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주변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많이 변해 있었지만, 둥그런 공터는 내가 어릴 적 놀던 그곳이 틀림없었다.

‘와! 내가 살던 동네가 맞구나!’ 나는 너무 반가웠고 신기했다. ‘한 봄밤의 꿈’처럼 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게 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 여기 어디가 우리 집일 텐데... 나는 밤이 늦었는데도, 공터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골목길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는 어렴풋하게 우리 집이 있었던 자리를 알 것 같았다. 당시 골목길 한 쪽으로 똑같은 주택이 나란히 세 채가 있었는데, 그중에 첫 번째 집이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과 옆집이 있던 자리에는 빌라가 들어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집은 신기하게도 아직도 단독주택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집 앞으로 가서 섰다. 마치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듯 했다.

나는 그 집을 보자마자 옛날 추억 속의 집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집에 살았던 내 동생의 친구 이름이 생각났다. ‘상훈’이였다. ‘상훈이네’ 집 대문은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갖고 있었다.

‘우리 집도 이런 모양이었겠구나!’

그때의 나의 생각들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살아보게 된 단독주택. 그때 나는 마당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문도 작고 마당도 크지 않았다. 잠시 동안 아련한 기억들이 맺혔다. 많이 젊었던 그 시절의 엄마와 아빠의 모습. 몸집이 작고 말랐던 나의 남동생, 그리고 태권도를 배우고 있던, 말괄량이 소녀였던 나의 모습까지 소환됐다. 그 시간들이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함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다시 오지 못할 것에 대한 그리움. 아, 옛날이여!

밤 10시를 넘긴 2024년 4월 어느 봄밤, 타임머신을 타고 40여전 전으로 되돌아간 나는 오랫동안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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