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간다. 대학교 1학년 때 사귄 같은 과 친구니까 36년 지기다.
36년 지기 네 명 중 한 명인 친구는 C.C, 그러니까 같은 과 한 해 선배와 커플이었다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친구의 남편은 나의 선배이기도 하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선배는 친구처럼 유쾌하기도 해서 여느 친구 남편들과 달리, 친오빠처럼 스스럼없이 친하다. 영어도 유창해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 남편과도 잘 어울리며 동생 챙기듯 챙겨주고.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아, 우리가 상하이로 이사 갔을 때다. 재택근무를 하는 선배와 친구는 우리 따라와서 2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대학 1학년부터 상하이를 거쳐, 친구네는 한국으로, 우리는 파리로 이사 와서도 수시로 만나 같이 여행하며 추억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사이다.
친구가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고등학교 친구 부부들과 포르투갈 여행을 한다고 했다. 두 시간 반, 세 시간이면 훌쩍 날아갈 수 있는 곳이라 친구와 오빠를 만나러 주말을 맞아 남편과 포르투갈에 다녀오기로 했다. 리스본에 금요일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에 맞춰, 처음엔 리스본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보내준 일정표를 보고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던 남편이, 그다음날 아침 일찍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굳이 리스본으로 갈 필요가 있냐며, 남부 항구 도시 ‘파로’(파루, Faro)를 제안했다. 그리고 목요일 비행값이 더 싸다길래, 목요일 내 저녁 수업은 대강을 부탁했다. 2박3일 일정이 3박 4일로 늘어나 휴가를 덤으로 받은 기분이라니 !
떠날 때, 쌀쌀했던 이른 아침 날씨와 비 예보 때문에 준비해 간 옷이 충분치 않을 것 같아, 사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도착했더니, 어라? 남쪽이라 그랬을까? 햇살이 참 좋았다. 숙소는 파로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휴양 도시 ‘콰르테이라(Quarteira)’, 바다 바로 앞의 호텔이었다. 바다 전망 방은 더 비싸다길래, 알뜰한 우리는 돈을 아끼자며 전망을 포기했었다.
비록 2층이라 낮기는 해도, 수영장도 바다도 다 보이는 전망 덕에—아니, 오히려 더 가까이 보이는 덕에—기분이 둥둥 떠올랐다. 길 하나만 건너면 바닷가. 싱싱한 해산물로 채운 저녁 식사 후, 밤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차려주는 밥은, 그게 무엇이든 꿀맛. 오전에 조식을 배부르게, 그리고 맛있게 먹고 해변가를 따라 산책에 나섰다. 옥색과 짙은 남색, 그리고 황토빛과 사이사이 연두빛이 무지개처럼 층층이, 또 나란히 펼쳐져 아름답게 출렁거렸다. 언젠가 가 보고 싶어 자주 들여다봤던 페루 비니쿤카의 사진 속 무지개산을 닮은 바다였다. 바람에 따라 하얗게 부딪히는 파도의 포말은 또 얼마나 예쁜지. 대서양이라 파도가 제법 거셌지만, 평온함이 마음 깊숙이 밀려들었다.
긴 해변을 따라 걷다 붉은 황토빛 절벽 아래에 이르렀다. 단단하고 가파른 절벽 앞에 커다란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손으로 쓰다듬던 나는 깜짝 놀랐다. 딱딱한 돌덩이가 아니라 흙이었다. 손가락으로 힘줘 비비면 포스스 부서지는 흙.
‘’어. 이 흙 뭉치들이 시간이 지나면 단단한 돌덩이가 되는 건가 ?’’
과학 1도 모르는 나는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어느 물질이 시간 속에서 물과 바람과 햇빛을 만나는 횟수와 양에 따라 원 성질이 완전히 변화되기도 하는 건지 말이다.
‘거참 신기하네’를 중얼거리며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 바닷물에 휩쓸려 나온 하얀 불가사리도 만나고, 조개껍질도 주웠다. 햇살 아래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는 가슴을 활짝 열어 바다를 담았다.
너른 마음으로 파로(Faro) 구도시 구경을 나갔다. 햇살이 좋아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착해서 주차 자리를 못 찾아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 곧 떠날 것 같은 차가 보여 그 뒤에 섰다. 나가자마자 그 자리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때였다. 키 작은 남자가 저쪽에 자리 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오길 기다리던 차가 바로 떠나지를 않아, 따라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 와중에 자리가 났다. 어렵지 않은 후진을 굳이 봐주는 그 사람이 좀 부담스러웠다. 당신이 찾아준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은 자리니까, 댓가를 지불할 필요 없음을 분명히 하려는 듯 눈길을 피하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아름다운 골목들을 지나며 사진 찍느라 부산을 떨다 보니, 구도시 가운데에 자리 잡은 대성당에 이르렀다. 대성당은 뼈무덤 소경당, 박물관, 종탑과 한 세트로 묶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헌금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성당 안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금빛으로 번쩍번쩍 눈이 부시던 장식과 조각을 휘리릭 훑으며 나는 괜시리 불편해졌다.
‘’과연 예수님은 이런 걸 바라셨을까 ?’’
하긴, 이건 우리들의 넘치는 마음이리라. 차고 넘치는 간절한 바람들, 차오르는 환한 감사들이 만들어 낸 증표 같은. 그러다 황금빛 조각 제일 아래, 무거운 짐을 지느라 허리가 구부정한, 나무로 된 천사 같고 사람 같은 조각에 눈길이 갔다. 순간, 주차장의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동전 몇 푼이 뭐라고. 빈약하기 짝이 없고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내 마음이 적나라하게 보여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뼈가 가득 찬 소경당에서 앙상한 내 마음을 내어 드리고, 종탑 전망까지 다 둘러보고 구도시를 나왔다. 뭉그적거리는 남편 두고 혼자 택시 배도 타보고,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 지역’ 기념품 가게에선 둘이 머리 맞대고 친구 줄 선물도 고르고, ‘맥주가 왜 이리 싸냐’며 올리브 안주에 맥주 한 잔 마신 후, 시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차장을 둘러봤지만, 아저씨는 안 보였다. ‘모든 건 때가 있다’는 말은 맞았다. 사랑을, 혹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때를 놓치면, 그 자리에 어김없이 죄책감이나 후회가 자리 잡는 것이었다.
차를 탔다. 만회할 수 있는 기회까지 놓쳐 더욱 진해진 자책과 반성을 오가느라 가졌던 침묵은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멋진 조각, 환상적인 날씨 덕에 금세 감탄으로 바뀌어 갔다. 혼잣말 하듯 불쑥 물었다.
‘’자기야, 지구나, 혹은 세상 물리나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하느님, 혹은 창조주를 믿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
인류를 비롯해 돌멩이 하나의 기원이나 바람의 근원을 찾고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말씀으로 존재한 태초, 그 어떠한 논리나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한 존재에 이르지 않을까 싶었다.
뒤이어 아침의 그 절벽이 떠올랐다. 재질이 달라도 너무 달라, 흙이 돌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거꾸로, 원래 돌이었는데 파도를 맞고, 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으며 조금씩 흙으로 되는 것. 그건 좀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흙 속에서 돌의 감촉은 결코 느껴지지 않아서, 이 추측도 완전히 납득되진 않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어쩌면 원래 흙이 여전히 흙인데, 파도와 바닷 바람에 밀려 갔다 왔다하며 쌓이고 깎이다 보니, 절벽의 모습과 바위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한 무엇이 전혀 성질이 다른 무엇으로 바뀔 수는 없어도, 본 성질을 여전히 지닌 채 시간의 물결 속에서 다른 무엇과 모양이 비슷해지거나, 깜짝 놀랄 정도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그렇다면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시 결심하고... 또 후회할 짓을 하더라도 그때마다 온기있는 결심을 하고 또 하다보면, 나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 짠 !하고 전혀 다른 누군가로는 될 순 없어도, 차갑고 이기적인 내가 조금씩 조금씩 따스하고 다정한 나로는 되어갈 수 있으리라. 오늘, 다시금 희망을 되새겨 본다.
드디어 내일이면 친구를 만난다. 거의 8개월만이다. 바닷바람 쐬어 말개진 얼굴에,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 띠고 반가움을 전해야지. 햇살 가득 받은 마음엔 말랑말랑 사랑을 담아 꼬옥 껴안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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