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까지 포함하여 열흘간의 남편 휴가, 그리고 목적지가 이탈리아인,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 이 아이디어가 내게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왜 이런 아이디어가 신랑 속으로 들어온 것인 것 잘 모르겠다. 휴가를 갈 수 있는 그것도 좀 긴 휴가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유럽 그것도 이탈리아를 행선지로 잡은 것이다. 왜 이탈리아인지 역시 잘 모르겠다. 유럽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서유럽보다는 남유럽을, 와인 애호가들이 적극 추천하는 스페인보다는 이탈리아를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남편도 와인에 문외한이다.
이탈리아라고? 정말 갈 수 있는 걸까? 야근에 시달리는 남편과 밤낮이 바뀌어 얼굴을 볼 수 없는 대학생 딸과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하루하루 일정이 차 있는 내가 함께 그 멀리 그 오래 여행을 간다는 것이 너무 생뚱맞게 느껴졌다. 게다가 남편 회사 일이 뭐가 아슬아슬하여서 '이러면 못 가는 데'를 몇 번을 연발하는 터라 정말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비행기 티켓을 출발 한 달 전에 모아 온 마일리지로 예약을 하고서야 '아, 가긴 가나 보다' 하고 마음을 정하고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취소 가능한 티켓이기는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남편 회사 일은 일주일 전까지 정리가 안돼서, '못 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여러 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갈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고 식탁 위 달력에 일정을 표시해 놓고, 본격적으로 딸은 숙소를 알아보고 나는 고장 난 여행 가방 AS를 맡기기도 하고 상비약과 비상식량(멸치볶음, 김, 컵라면, 햇반)을 준비했다.
여행을 위해 나의 일정을 조정했다. 마침 봉사하실 수 있다는 원어민 선생님이 내가 하던 수업을 대신해주기로 하셨고 줌(Zoom)으로 하는 기도모임은 다른 집사님이 그 주에 섬겨주시기로 했다. 그 외 자잘한 모임들과 일정들을 조정했다.
출발 전 주에 정기적으로 하는 유방 검사가 있었는데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나오자, 뭔가 하나님께서 재가를 해 주신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전 주 설교 본문이 사도행전이었는데 이탈리아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아달랴라는 이름으로 바울의 여정에 나온다.)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알고 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여행 출발 전주에 친정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리셨다는 소식이 들려서 친정을 오가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직접 뵙지도 못하고 방문 앞에서 다녀오겠다고 인사드린 기억도 난다. 로마에서 베니스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는데 당일 로마까지 가는 비행 편이 연착된다는 문자를 받고 온 가족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집을 나서기 전 여행 가방 옆에 모두 무릎을 꿇고 무사히 환승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통제 밖 일들이 이것저것 일어나고, 훌쩍 떠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모든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출발할 수 있었고 잘 다녀왔다. 무사히 비행기 편도 연결되었고 친정어머니도 잘 회복하셨다. 모든 모임과 일정도 나를 빼고 잘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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