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꼼북 시간. 6월의 책은 정관 스님의 『정관스님 나의 음식』이었다. 입에 고이는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하고, 입맛을 다시기도 하며 책을 읽었다. 읽고 나서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꼼지기님이 외국에 살면서 생각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다들 분명 음식 이야기를 끄집어 냈는데, 마음과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진 얼굴과 그리움, 그리고 추억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음식은 단지 끼니를 해결하고 배를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는 것임이 분명했다. 한 그릇 음식에 맛과 함께 그리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보고싶은 사람, 잊지 못할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걸 보면.
『엄마 박완서의 부엌』에서,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했던 호원숙 작가의 깨달음처럼 나도 지독한 그리움을 음식으로 달랠 때가 종종 있다. 콩나물 쇠고기 뭇국. 엄마 생각이 날 때 가끔 해먹는다. 무를 나박나박 썰지 않고 빗금 치듯 삐져서 썰고, 고기는 참기름에 달달 볶아 고춧가루로 빨갛게 맛 낸 국. 그리고 꼭 ''이 국은 말이지, 엄마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나의 기억 속 이야기도 같이 고명으로 얹어서 내면, 나만의 그리움이 남편,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덜 외롭고 풍성해지는 듯하달까.
지난 추석 때였다. 추석이라고 북적대는 인터넷에서 맛있는 냄새까지 솔솔 풍기는 것 같아 덩달아 나도 장을 보러 갔다. 쌀쌀해진 날씨에 몸뿐만 아니라, 외따로 떨어져 쓸쓸한 마음 속 깊이까지 데워줄 곰탕이 생각났다. 고소한 기름 냄새 하나로 조용한 집을, 순식간에 잔칫집으로 만들어 주는 전도 부쳤다. 예전엔 내가 잘 안 해먹던 게 곰탕이랑 전들이었는데, 이게 나이 드는 건가 싶었다. 올해 설날엔 며칠 전부터 소금 뿌려 꾸덕꾸덕 말린 생선을 굽고, 탕국 비슷한 걸 끓이고,나물, 잡채, 갈비찜, 불고기도 만들었다. 기억 속 명절을 더듬더듬 흉내내며 한상 차려냈다. 마침 파리 와 있던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먹으니 명절 분위기가 제법 나서 신이 났다.
프랑스 사람인 남편도 추억의 음식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양고기를 먹고 남았을 때 꼭 입에 올리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처럼 나와 아이들에게 읊어졌다.
''어머니는 이 고기들과 다른 고기들 남은 것도 같이 갈아서 동그란 완자로 만드셨어. 그리고 토마토 소스를 곁들여 주셨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하지만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완자를 만들 만큼 남은 고기들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고기를 갈고 뭉치고 소스를 만드는 게 제법 귀찮기도 한 작업이어서였는지, 시어머니께서 요리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2년 전,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 마침 양고기를 먹었고, 또 마침 고기도 많이 남아 그 전설의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음식을 직접 먹었을 때, 음... 솔직히 나는 뭐 그리 특별한 맛이 아니었다. 그냥 동그랑땡이었는데, 남편은 참 행복해했다. 남편에게 어렸을 때의 맛과 똑같은지, 아님, 살짝 다른지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추억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느끼는 맛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건 남편 표정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젠 남편 혼자 추억을 더듬지 않고, 나와 아이들도 같이 맞장구쳐줄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의 추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또 하나의 음식은 ‘카레’다. 사실 내가 그리 즐겨 하는 요리는 아니다. ‘카레’하면 먼저 큰 올케언니가 떠오른다. 갓 시집온 큰 올케 언니가 해줘서 처음 맛본 카레는 이상한 맛이었다. 낯설고 이상한 그 맛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동그란 상에 엄마, 아빠하고 둘러앉아 카레 먹던 장면, 그 방과 부엌이 생생하다. 큰 올케언니와 그리 친하다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카레가 불러일으킨 기억 속을 더듬어 가다 보니 초등학교 때, 대학생 때, 결혼할 때…때마다 언니한테 내가 빚진 사랑 꾸러미들이 보여 언니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진 카레맛에는 우리 언니가 있다. 나랑 열여섯 살 차이가 나는 둘째 언니. 고등학교 교복 입고 태어난 나를 보러 병원에 왔었다던 언니. 내가 엄마처럼, 아니 엄마보다 더 의지하던 언니.
병원에서 마취과장으로 일하는 언니는 한동안 병원 앞 사택인 작은 아파트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형부와 아이 둘과 함께 지냈었다. 젊었고, 아이 키우랴, 병원일 하랴 늘 바쁘게 지내던 언니라 요리에는 별로 신경을 못 썼다. 그래서인지 언니네 가면 준비하기 쉽고 밥과 고기와 야채가 고루 담긴 일품요리인 카레를 심심찮게 먹었더랬다. 언니 카레를 떠올리면, 어슴푸레 저녁 무렵, 카레 사러 갔던 아파트 옆 작은 슈퍼가 아른거리고, 젊은 시절의 고운 언니, 어렸던 나를 언니 아들, 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살뜰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던 언니가 생각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이 없어진 내게, 언니는 한국에 갈 때마다 여전히 따스한 친정이 되어주고 있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엔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을 꼭 먹여 보내려 마음 쓰는 언니. 음식이 지닌 질기고도 뜨끈한 힘을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게다.
지금은 거의 장금이 수준으로 맛과 영양을 담은 다양한 요리들을 척척해내는 언니. 하지만 '카레'하면 언니가, '언니 음식'하면 카레가 떠오르는 건, 눈치주는 사람 없어도 혼자 알아서 눈칫밥 먹던 내가 느낀 언니 사랑의 따스함 때문일 테다. 볼품없던 나를 나보다 더 믿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던 그 마음이 고마움으로 깊이 새겨져서일 것이다.
맛뿐만 아니라, 그 시간과 그때의 분위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마음들까지 낱낱이 담겨 있는 음식. 언젠가 내 음식도 아이들에게 추억으로 떠올려지고, 그리움으로 찾는 맛이 되려나? 자기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가 말이야, 이 음식을 이렇게 저렇게...''라며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려나? 그러려면 상대적으로 덜 챙기는 한국 명절도 자주 챙기고, 때 되면 먹는 음식을 몇 가지 정해서 정성껏 해줘야겠다. 나의 뻔한 메뉴들, 돌려막기 하는 게 지겨웠는데 다시 마음 가다듬어야겠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내 사랑이 나의 맛에 잘 배어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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