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ep 01. 쓰는 사람_쓰는 사람

2025.04.23 | 조회 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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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쓰는 사람 1

 

이름. 사람들이 사람을 이르는 것이라 하여 '이름'이라고 한단다.

부모님이나 부모님의 부모님, 가족, 친지가 사랑과 정성을 담아, 혹은 생판 모르지만 삶의 이치를 꿰뚫고 있을 것 같은, 용하다는 명리학자나 사주철학자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받아와 짓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 안에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인생이 부디 평안하기를, 무탈함을 넘어 좋은 일만 가득해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동개’. 어릴 우리는 '''' 지나치게 세게 발음해서 웃기 바빴던 나의 스승님 존함. 그렇게라도 되기를 기원한 마음이 담겨있다는 이제는 안다.

요즘은 신분증에 쓰인 본명 외에 가족 사이에서, 세례명이나 활동명으로, 본캐와 부캐로 나누어, 그리고 여러 사이트 상의 아이디로서, 사람에게 많은 이름들이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이름은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이나 철학자분도 아닌, 3남 5녀의 늦둥이 막내라, 스무 넘게 차이나는 제일 언니가 지어주었다세례명과 함께.

‘’존경할 (敬 ), 마음 (心)’’. 예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믿음이 담긴 이름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심아~’라고 부르고, 프랑스 시댁에선 큰언니가 알려준 발음대로, 세례명마가렛으로 불린다. 사이트 사이트를 넘나들면서는 한순간에 엄마곰으로, 그걸로 약하다 싶을 슈퍼마망곰이 되었다가, 추억의 심파시가 되는가 하면 작은 꽃이나 보물이 되기도 한다.

내가 정한 나의 여러 이름들에는, 평생을 두고 바라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보다는 지금 나의 모습이 담겨있다. 관계속의 살고 있는 곳의 , 아님, 당장 떠오른 것이나 기발한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슈퍼마망곰에 자만 덧붙여 슈퍼마망곰케이 쉽게 정하고, 쉽게 잊어버려 다시 쉬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꼼북클럽 내 '쓰기모임(이상한 요일들)'에서 이름, 그러니까 아이디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나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익숙한 몇몇 이름들을 돌려막기 하듯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민을 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누군가에게로 가서 꽃은 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태어난 아이 이름 지어주듯,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했다.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여겼고, 글쓰기도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십이 넘어서야, ‘다정한 우주 만나고서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의 글에 자극받아 가랑이를 찢어서라도 따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쓴다는 , 가랑이를 찢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냥 나로서 충분하다는 . 보폭으로 걸음 걸음 따박따박 걸어나가며, 떠오르는 물음표에 나의 언어로 꼬박꼬박 느낌표를 달아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쓰면서 나를 알아가고, 생각과 감정을 알아가는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쓰는 재미가, '북극성'으로 이끌었고 읽는 재미에 대한 갈증도 불러 일으켰다. 지금처럼 드문드문, 대충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했다. 그렇게 꼼북클럽에 가 닿았다.

글쓰기 모임 덕에 마침내 ‘나의 정했더랬다. 나도 읽고 쓰는 . 그런 삶을 살고 싶고, 읽고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이 꿈이 참 마음에 들었다.

''김작가''

꿈은 크게 가지자며 '작가' 생각했다허나 모름지기 '작가'  함은 꿈만으로는 있는 이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 아니 공식적으로 인쇄된 편은 최소한 있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이름인 같았다. 함부로 갖다 쓰기엔 너무 주제넘는 이름이라,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지웠다.

대신 생각해낸 ''쓰는 사람''. 작가의 다른 . 하지만 작가처럼 쓰는 사람임을 증명해 줄 무언가가 없어도 가능한 이름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쓰는 사람은 매일, 규칙적으로 혹은 자주,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쓰나 쓰나 누가 검사하진 않겠지만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존재가 한없이 작고 작게 느껴지던 어느 날엔, 글쓰기 수업 시간에 들었던 멋진 단어, '우주먼지' 바꿔 달라고 했다. 우린 별의 일부분, 별의 가루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는 ''별가루''? 했다가 예쁜 의미에 비해 소리가 별로라 포기했다. 여전히우주먼지 며칠을 보내다가 다시 ''쓰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비록 실상은 아닐지라도, 자주, 규칙적으로, 매일 쓰고자하고, 쓰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쓰는 사람''이라 불리다 보면 정말 쓰는 사람이 지도 모른다는 자기 최면도 담았다.

마음에 들었다 말았다, 괜찮았다 말았다, 쉼 없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보다는아직 오지 않아 가능성 있는 '', 이상형이라 한없이 굳건한 '' 선택하는 것이 왠지 희망차게 느껴졌다. 익숙해서 뻔하고 지루한 현재의 나보다는, 괜스레 있어 보이고 낭만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쓰는 사람'' 되었다.

 

쓰는 사람 2

 

‘’엄마, 인턴십 구해야 되는데 아직 구했어. 어떡해 ? ㅠㅠ 여름까지 구하면 큰일이야, 힝힝.’’

오만상을 찌푸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쉬는 대학교 2학년인 큰딸. 오래전에 시간을 지나온, 인생 살아 선배로, 그까짓일에 한숨씩이나 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걱정 . 구하긴 구해. 될 거야.’’

문득 며칠 , 처진 목소리로 남편에게 묻던 내가 겹쳐졌다.

‘’당신도 힘들어 ? 사는 ?’’

남편 눈에도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호강에 겨워 요강에 싸며 그것마저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같았을까.

씩씩한 캔디처럼 견디던 나는, 요즘 사는 힘에 부쳤다. 아니, 수시로 허덕거리는데, 글로 남기지 않았으니 물증이 없어서 모르는 건지도. 예사로 보내고 맞이하고 당연히 맞는 하루하루처럼, 자꾸 잊고 잊어서 헉헉거림이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만 힘든가 하고 남편에게 물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상은 그리 힘겨운 일상이 아니다. 고작 일주일에 이틀, 학원엘 나가서 4시간 반씩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짧게는 시간 , 길어봤자 시간의 수업을 하는 게 다니까. 점심과 저녁밥하는 것밖엔 없으니까. 일주일에 오전에 봉사활동을 하고 일주일에 장을 보며, 일주일에 1, 2 오르내리며 청소하는 전부니까. 일주일에 피아노를 배우고일주일에 북클럽글쓰기 모임 주로 버는 일보단 쓰며 즐기는 취미생활만 하면서 이리 숨이 턱까지 차는지 이유를 수가 없었다.

집안일이면 집안일, 회사일이면 회사일, 그리고 봉사활동까지 하며 아이들을 챙기고, 문화생활까지 거뜬히 해내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던데. 걸음 여유 있게 성큼성큼 잘만 걸어가던데. 나이 들수록 점점 다정해지는 남편도 그랬다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일을 하느라 피곤할텐데주말에도 수시로 자잘한 집안 공사를 한다. 아이들 학교 서류들을 챙길 뿐만 아니라, 토요일 오전 나의 온라인 수업이 늦게 끝날 점심 준비도 하고, 간간이 청소도 한다. 여행을 가기 전에, 일정을 짜고 예약을 하는 것도 사람이다. 손도 얼마나 야문지. 자주 해서 그렇지, 남편이 먹고 청소를 하면 반짝반짝 광이 나고 침구 정리는 호텔 침구 저리가라로 각이 반듯반듯 살아난다. 나는 나의 청소나 정리와는 눈에 띄게 달랐다. 다림질은 어떻고? 내가 해도 결국 남편이 다시 하길래 삐쳐서 놓은지 어언 .

내가 태어나길 작은 그릇, ()능력자로 태어나서 그런걸까? 버거워도 자꾸 하다 보면 손에 익듯 마음에도 익을 수 있을까? 아님 나이가 들면 괜찮아지려나?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엄마가 떠올랐다. 3남 5 키우며 얼른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던 엄마. 8남매 키워놓으면 고단함이 덜하려나 하셨을테다. 여유로워질 거라 여겼을 테다. 하지만 할머니가 되어서도 엄마가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살진 못하셨다. 그러고 보면 생의 고단함은 어느 때만 머무는 것도, 겪었다고 단련되는 것도 아닌가 보다. 어려서는 어려서, 나이를 먹으면 먹어서, 일을 하면 해서, 하면 해서, 매 순간순간이 처음인 듯, 절망이나 좌절이나 무기력이나 이런 힘 빠지는 감정에 우린 어리둥절만 하는 같다.

2주가량, 숨차는 이유를 찾으며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버스 잡아타겠다고 진짜 숨차게 뛰었던 날이기도 했다. 숨참이 생각을 휘저어서일까. 언제 일을 그만두면 좋을지만 궁리하던 내가, 일 덕분에 세상으로 나오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얻는구나.’ ‘요즘 운동이라곤 숨쉬기밖에 안 하는 나를 뛰고, 걷게 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같은 생각이 틈으로 들어왔다.

남편도 숨 가쁠 것이다. 왜 안 그러겠나. 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일을 하는데. 그리고 나도, 버는 일도, 요리도, 집안일도, 아이들 교육도 하나 딱히 잘 하는 없는 나도, 매번 종종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딸도, 애들 키우고 원하던 할머니가 되었던 엄마도, 누구나 숨은 차는 거였다.

딛고 있는 이 아래 현실과, 머릿속 저 높은 바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려고 기를 쓰고, 안간힘을 쓰느라. 잘하지 못하거나 잘하지 못해도 잘하려고, 잘해보려고 애를 쓰느라. 도대체가 있는 일이 없을 때는 기도를 해서라도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모아 보느라.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아지려고 애를 쓰고 쓰느라 그렇게 숨을 헐떡인 거였다. 각자의 폐활량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살아가는 , 원래 숨차는 일인 것이었다. 잘하든, 못하든, 젊었든 나이가 들었든 상관없이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을 해내느라 마음을 쓰고 힘을 쓰느라 숨이 가쁜 것이었다.

이렇게 헉헉거리는 , 살아 있어서, 세상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나오는 따순 열기인지도 모르겠다. 숨차서 잠시 멈춘 김에, 둘러보니 감사함이 가득이다. 감사함으로 천천히 숨을 고른다.불행 다행이나그나마 다행’이나, 이만하길 다행’같은 여러 ‘다행’의 마음으로 깊이 숨을 들이 마신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앞으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마음을 쓰고, 애를 쓰느라 숨이 찰 것이라는 걸. 그래서 가끔 혹은 자주 멈추어 가라앉아 있거나 두리번거리겠지. 나만 그런가하고.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다시 걸었다, 뛰었다, 말았다 할 것이라는 걸. 이제부턴 정성을 다해 마음을 쓰고, 힘을 쓰는, 그렇게 기꺼이 내 삶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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