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드의 탐구생활] Vol.5, 2025년 겨울호.

2026.06.07 |

겨울호를 열며

묵은 겨울호를 적어봅니다. 마음 같아선 바로 월간호로 복귀하고 싶지만, 살아보니 생각보다 한 달은 짧고 그 안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더군요. 용두사미한 저의 인간미를 조금이나마 감춰보고자 계절호로 성격을 바꿔봅니다. 이우드가 저번달에 뭐했는지 세 달을 기다릴 수가 없다! 하시는 분들은 메일주세요 :D 친절히 펜팔로 스트리밍 해드리겠읍니다ㅎㅎ


9월

이우드의 9월 다시 듣기

Bolero 부터 시작해서 여러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어보려 했습니다. 피아노 곡은 서정적인 곡을 좋아하고요, 관현악 곡은 악기마다의 소리 특성을 잘 살리거나 화음이 잘 펼쳐지는(아래 음역대는 내려가고 윗 음역대는 올라가는) 구간이 많은, 직관적인 곡을 좋아합니다.

'산만한 시선'이란 신예 포크듀오를 재밌게 들었습니다. 평화로운 주제와 곡 구성, 따뜻한 정서가 듣기 좋습니다. 이번 신보는 동네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느긋한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 같네요.

마지막 클래식 Le Badinage 은 퇴고하면서 넣었습니다. 아래에서 소개할 영화 <어쩔수가 없다> 의 삽입곡입니다. 

 

이우드의 9월 다시 보기

  • <Fargo> (1996) - 코엔 형제를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본 작품입니다. 꽉차게 화면 배치하는 거나, 특유의 미장셴이 인상적이긴 했는데요,, 역시 살인물은 좀 무서워요.
  • <듄: 파트 2> (2025) -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이 많이 나와 재밌었습니다. 차기 액션 시리즈로서 자리매김 할 것 같아요. 푹푹 찌는 사막의 색감과 구시대적인 배경 속에 첨단 과학이 들어있는 모습이 20세기 말 공상과학 영화같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메시아 이야기는 변주의 단물이 끊이지 않는가 봅니다.
  •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2024) - 제게 월레스는 불쾌한 골짜기를 일으킵니다. 그래도 어릴적 <패트와 매트> 찰흙 스탑모션을 정말 좋아했어서 이 시리즈도 좋아합니다. 괴짜 과학자의 골드버그 장치는 늘 보기 재밌습니다. 아, 이 편에서 나오는 펭귄은 참 귀엽더군요. Garden Gnome 은 인사이드아웃2의 불안이 같기도 하고.. 안쓰러은 마음이 컸습니다.
  • <포레스트 검프> (1994) - 한 번 봤던 영화지만 중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또 봤습니다. 뭐랄까, 미국 역사의 산증인이긴 한데 저는 알더라도 딱히 재밌거나 그렇진 않았는데요, 그래도 검프의 순진함이 꽤나 매력적이었습니다. 톰 행크스의 마스크는 역시 서투르거나 모양빠지는 캐릭터에 잘 어울립니다.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 역시 전 멜로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연출이나 영상미가 꽤나 아름다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사진 찍는 사람이라서 한석규씨에게 재밌게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대사를 줄이고 정적을 음악삼아 영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특히 static shot들에서 조명과 연기로 말없이 전달하는 감정은 그 순간을 곱씹는 기억처럼 아름다웠습니다.
  • <그린북> (2018) - 맨날 <노트북> 이랑 헷갈려서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입니다. 근데 보기 전까지 이런 내용인지 전혀 몰랐어요. 영화의 소개글을 읽지 않고 보는 걸 좋아해서 그랬긴 합니다만, 그래도 잔잔한 로드트립의 재미와 두 상극의 성격 소유자의 케미가 좋았습니다. 아, 셜리 박사의 외로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친절한 금자씨> (2005) - 이런 극적으로 잔혹한 범죄물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분명 흑백으로 본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네요.. 남을 해하는 것 자체보다 악감정의 서사에 공감하는 재미로 범죄물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워낙에 복수란 감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꽤나 불편하게 움찔대며 보았습니다.
  • <타인의 삶> (2006) - 영화로 독일어 회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적절한 영화를 제미나이에게 추천받아 본 영화입니다. 근데 이걸 돌려보다 보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요.. 독일은 특징적인 역사적 배경이 많아서 그런지 밝은 분위기의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네요.. 하나 보고 선입견을 가지긴 이르지만 독일 영화의 감성이 이런거구나, 하고 단편적으로 느꼈던 영화입니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5) - 지브리가 전쟁의 상흔을 많이 담아왔구나, 하고 되짚어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일본 정서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 재앙에 대한 만연한 공포, 다신론적 토테미즘과 전후 사회상이 일본 사람들에겐 만성적 통증처럼 남아있나 봅니다.
  • <식스센스> (1999) - 한 인터뷰에서 박경림이 했던 '센스있는 대처'로 이미 결론부터 스포당하고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식스센스 급으로 소름돋진 않았는데요, 그저 다이하드 행님과 포레스트 검프의 연기 배틀 정도로 가볍게 봤습니다.
  • <대부> (1972) - 이 영화도 워낙에 고전명작이라고 익히 들어서 숙제처럼 본 영화입니다. 근데 전 느와르는 별로 안좋아합니다. 생명 경시와 야성적인 남성성에 대한 탐미, 사회권력에 대한 자의식 과잉 등 여러 이유로 마피아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조직폭력배나 카르텔, 마약류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감상도 반전은 없었구요, 그냥 그 장르들의 바이블 같은 시초 격으로서 추앙받나 봅니다. 어떻게든 혈연승계와 사회적 지위 책임을 갈등시키는 게 억지로 영화에 입체성을 주려고 한 것 같은 인상이 들었습니다.
  • <굿윌헌팅> (1997) - 인텔리 코미디언의 대명사, 로빈 윌리엄스의 면모와 차분함을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잘난체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타락한 천재'에 대한 묘사에 특히 잘 이입하는 편입니다. 스스로 그렇다 생각하고 이야기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나봅니다. 덕분에 조금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 <어쩔수가 없다> (2025) - 주제는 사회 관통적이면서 꽤나 해학적인 영화더군요? 박찬욱의 미장셴 연출 속 특이 유머코드는 또 흥미롭네요. 이병헌의 '혼자 진지하고 갑자기 욱하는 쫄보' 연기는 참 일품입니다. 박찬욱의 요상한 야리꾸시함만 뺏더라면.. 주제와 하등 쓸모없는 게 굳이 뇌리에 남는게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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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이우드의 10월 다시 듣기

김광진의 디스코그래피는 파도파도 주옥같은 노래들이 속속들이 있습니다. 장르도 편안한 어쿠스틱부터 확장밴드 사운드까지. 이런 노래들을 만들어 놓고 전문투자자가 본업인 김광진은 얼마나 똑똑한 걸까요? 

백예린은 또 어떻습니까. 메탈릭 락사운드로 빠지는 것 같아 아쉬워하던 차, 이렇게 세련된 Hi-Fi R&B 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권해효 배우의 춤사위로도 주목받은 타이틀 <MIRROR>. 간결한 베이스 루프사운드 위에 힙합트랙 같은 사운드 믹싱, 그 사이에 슬쩍 넣은 디테일 사운드, 그리고 트럼펫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와 그에 따라맞춰 열화된 보컬은 <English Man in New York> 의 드럼 솔로같은 특이한 조합을 만들어냅니다. 사운드 구성이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입니다. 예린백의 우울감성으로 노래한 발라드 <Put it back on>, 90년대 팝디바의 백트랙 같은 <in the middle>. 이찬혁도 그렇고 백예린 또한 8090 팝 사운드로 회귀하여 재창조해내는 모습은 마치 정통사운드를 찾아 카마르타지 사원으로 들어가는 닥터스트레인지의 수행 같습니다.

허면 또 '원의 독백'이 유규선과 손잡고 아름다운 연애프로를 만들었더군요. 원의 독백 특유의 거침없는 앵글이 여느 연애프로보다 훨씬 시네마틱하길래 찾아보았더니 역시 원의 독백이었습니다. 그의 사운드트랙은 또 인디스럽고 감도가 기막히죠. 덕분에 <minamikaze> 를 발견했습니다. 

1415는 제겐 one-hit wonder 같은 아티스트입니다. 딱 이 노래 <선을 그어주던가> 말고는 취향인 음악을 찾기 어려워요. 이것도 약간 DEAN 의 instagram 같은 사운드이긴 한데.. 약간 뭐랄까.. 티키틱 같은 인싸픽 사운드 같기도 하고.. 주목받기 위해서 특이해진 인디 특유의 사운드 같기도 하고.. 여하튼 곡 분위기들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각각이 완성도가 있어도 아티스트의 색이라 할 게 오히려 없는 느낌입니다.

Ravel 의 어미 거위 음악은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하게 스토리텔링이 흥미로워서 추가했습니다. 고고학은 이름이 특이해 예전부터 들어봐야겠다 싶던 밴드사운드인데요, 도입이 시원한 락사운드를 잘 사용했길래 얹어봤습니다. 

이우드의 10월 다시 보기

  • 뷰티풀 마인드(2001) - 천재의 기구한 삶을 역사적으로 잘 담기도 해서 두고두고 꺼내보는 영화. 제니퍼 코넬리의 푸른 눈에 단정한 옷차림.. 내쉬같은 괴짜도 반할만 합니다요.
  • 1승 (2021) - 랠리의 카메라 무빙은 하이큐 못지 않긴 했는데요.. 보지 마십쇼 그냥.
  • 헤레틱 (2024) - '만약 종교 율법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면' 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영화 같았습니다. 현 종교들을 보드게임에 비유하면서 비판점을 이해시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문제의식을 러닝타임 내에 불식시켜버리는 것도 통쾌했구요.
  • 체인소맨 (2025) - 극장판을 보기 전에 애니메이션도 정주행했습니다. 뭐랄까.. 이런 잔혹한 장면들에 재미를 느끼게 성장한다면 참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장면들로 피칠갑 해놓곤 사랑 같은 진중한 것을 첨가해서 팬들로 하여금 '그게 계속 보다 보면 진짜 잘 만들어진 애니라니깐?'라고 긍정하게 하는 설계, 스톡홀름 증후군 같아 보여 무섭습니다.

11월

이우드의 11월 다시 듣기

저는 한 장르의 한 획을 긋고 그 분야를 뛰어넘어 대중 역사에 한 갈피로 남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트로트계에 <둥지> 같은 게 그런 곡 아닐까요. 비슷하게 <In Da Club> 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사운드입니다.

음악에선 반복되는 코드진행이 필수적인 양 사용될 때가 많은데, 저는 그런 진행들이 진부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진행, 예측되는 멜로디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냉탕열탕 왔다갔다 하듯 재즈에 빠졌다 오곤 합니다. 근데 TETE의 <Romantico> 는 간단한 듯 새로운 느낌이라서 그 경계를 잘 탔다고 생각했습니다.

간간히 Jazz House 라는 장르를 챙겨듣습니다. 정통재즈처럼 너무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고, 적당히 몸을 맡길 비트도 반복됩니다. 듣다보면 홍진경 빠리지앵 춤 같은 걸 추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berlioz 는 앨범커버가 감각적이라서 눈에 든 아티스트긴 합니다만, <peace> 를 통해 Jazz house의 우아한 흥겨움을 느껴보세요.

Neo Soul 과 R&B 전반도 좋아합니다. 제가 팝송을 찾아 듣는 주요 경로입니다. 뻔하지 않은 그루브를 좋아합니다. <Summer Sun> 같이 베이스로 어깨를 가지고 노는 슬로우 R&B 에는 몸이 간질거립니다.

<First Impression>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 <바다가 들린다> 의 주제곡 같은 곡입니다.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들이면 종종 이 노래가 배경음처럼 들리곤 합니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process 하느라 멈춰버린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하지만 통통튀고 청량하기도 한 신디 소리가 매력입니다.

SUMIN 의 날카로운 보컬은 별로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트랙 사운드 하나는 단연 감각적입니다. 특히, 협업 작업을 좋아하는 아티스트 같습니다. 협업 아티스트마다 어떻게 SUMIN 의 감각이 다르게 발현되는지 들어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이우드의 11월 다시 보기

  • 괴물(2023) - 히로카즈 특유의 온기는 가끔씩 찾아보게 만듭니다. 일본의 팽배한 무기력 사이에서 안온히 피어있는 화롯불 같습니다. 땅거미가 진 후 반딧불이가 하나둘 불을 밝히는 느낌이랄까요. 이 영화는 특히 관객의 마음 속 '괴물'이 계속 변화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 시각의 자의성 또한 꼬집는 재밌는 영화입니다.
  •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 정유미 배우의 데뷔작이라고 하던데, 가슴뛰어 오히려 얼어버린 표현을 정말 잘해내서 놀랐습니다. 단편 영화는 이런 재미로 보는구나, 하고 느낀 작품이었습니다.
  • 미스터 노바디 (2009) - 단골 커피집 사장님이 추천해서 본 영화인데요, 과학적으로도 심오하고 워낙 정신없는 영화라 두번 보고도 좀처럼 감상을 적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덧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걸까요?
  • 삼체(2024) - 대작이라고 사람들이 호들갑 떨 때는 반골 기질에 보지 않았는데요, 주호민이 스포설명회를 하길래 챙겨봤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시작하지도 않더군요? 장대한 배경설명만 줄기차게 늘어놓는 게 <듄> 1편 같다고 느꼈습니다.
  • 허니랜드(2019) - 저는 양봉 관련 컨텐츠를 즐겨 봅니다. 동물들이 보이는 지능적 행동들을 흥미로워하기 때문인데요, 그런 면에서 본 이 영화는 나약한 인간의 이기심이 의외로 주제라 그런대로 재밌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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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이우드의 12월 다시 듣기

이우드의 12월 다시 보기

1. 캐치미 이프 유 캔 (2002) 

연출이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은 방을 표현하기 위해 닫힌 문간으로 돈이 나부껴나온다거나, 수표를 휘날리며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친다거나 하는 연출들이 이해하기에 친절해서 좋았습니다. 스필버그 작품인지 모르고 봣는데, 왜 위대한 감독으로 불리는지 이제야 실감했습니다. 후반에는 Abagnale 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정착하고 싶은,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삶을 원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사회적 개인의 고민을 청소년의 성장드라마의 틀로 잘 녹여내었다 생각합니다.

2. 해피엔드(2024)

'너를 보호하려면 내 말을 따라야 해' 와 같은 안전을 위해 통제를 정당화하는 말은 청자가 납득하기에 굉장히 빛깔이 좋다. 이 영화는 미국행 비행기에서 보았는데, 보는 동안 터뷸런스를 만나 "안전을 위해 화장실 사용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란 방송은 타이밍이 정말 웃겼다.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먼저 나온다는 것은 흥미롭게 볼 지점이다. 잘 적응한 자들은 그로부터 얻는 특혜에 가린 문제의식들에 의식적으로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기가 특혜받는 것을 무너뜨리고 정의를 되찾는 것은 옳은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가, 는 어려운 문제다. 얼마나 강력히 올바름을 추구할 것이며 그것이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지는 알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생각외로 시대적 믿음(이데올로기)의 영역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들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것만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보단 마음에 드는 세상에 사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이런 주제를 교육의 장에 녹여내고 그 문제의식을 '불량학생' 주인공의 시점으로 제시한 건 재미있었다. 나는 교육 또한 사회화된 자가 그렇지 않은 자에게  힘의 불균등 하에서 사회화를 강요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이상향이 전자계산기'라는 노래는 참으로 해학적이다.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 교사의 모습과, 현세력에 편승하는 세력, 규칙을 무기처럼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은 주체적 개인들이 각자 지향하는 사회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영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일본의 정적 연출과 반복적으로 배치된 장치들이 이해를 도왔다. 일본 사회에 만연한 우울과 안전제일주의를 침묵의 분위기로 잘 담았다. 대화 밖의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각색하는 장면들은 가볍게 보면 재밌으면서도, 우리가 타인의 생각에 대해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지, 또 때로는 얼마나 넘겨짚는지, 그 한계를 시사한다.

3. 세계의 주인 (2024)

세계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더디게 전개되어 답답하긴 했는데, 또 주제가 주제려니만큼 언급하는 걸 꺼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뒤늦게서야 배려심 없이 호기심을 이기적으로 들이밀었다고 반성했다. 

감독이 역광과 부드러운 빛을 섞어 쓰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유난히 주인공에겐 얼굴에 빛을 많이 넣어주었다고 느꼈다. 일부러 씩씩하게 보이려는 주인공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 것일까?

성폭력의 위험에 비교적 벗어나 있는 남주인공이 가장 성폭력에 대해 과민하게 걱정하는 것도 참 아이러니했다. 고통을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연민에 젖어 얼마나 제멋대로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또, 성폭력범에 대한 묵살적 태도와 삼촌의 끊임없는 참회의 편지가 우리 사회의 팍팍함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편견과 낙인이 얼마나 만연히 정당화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듯 했다.

왜 주인이는 여자아이를 괴롭혔는가? 왜 고통을 인정하도록 강요했을까? 구태여 말하지 않은 것들, 말하고 싶었지만 말 못한 것들,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들, 않을 것들이 비산되어 있는 영화였다. 비슷한 배경인지는 몰라도, 서수빈 배우의 발견은 <죄많은 소녀>에서 전여빈 배우를 발견한 것과 비슷한 인상이 들었다.

4. 아바타: 불과 재 (2025)

2편을 볼 때도 느꼈지만, 이전 작들을 오마주하는 장면과 전개는 그것 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충분히 있다. 2편은 세계관 확장을 꾀했다면 3편은 1편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시 강조한 느낌이었다. 폭력의 무서움, 자연에 대한 경이, 이방인을 포용하는 자세 등 주제의 많은 부분이 자연주의적으로 돌아온 것 같아 좋았다. 

키리가 에이와의 화신처럼 성장하는 게 뒤돌아보면 예수를 자연히 떠올리게 한다. 동정 임신도, 신과의 소통도, 기적도, 사랑도.. 차히크로서 종교적 지도자가 되가는 것이 좋았다. 그 시작이 자연을 사랑한 과학자였던 것도.

연출 혁신 면으로도 갑오징어와 날치악어의 연출 만으로도 충분히 시리즈의 성격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나는 날거나 헤엄치는 3차원 자유를 표현한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런면에서 카메론 감독은 물의 물성을 잘 표현하는 감독이라 좋아한다.  

5. 여행과 나날 (2025)

"말의 틀에 갇혀있다. 여행이란 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어투의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말로 표현되기 힘든 것을 느끼며 그것을 말로 표현함에 계속 불충분함을 느끼는 것은 여행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경험'이란 단어로 얼버무려진 새로운 생각들을 겪는데,  그것이 우리를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본디 여행이란 건 에피소드를 체험하는 것과 비슷해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도 않고 그렇다고 삶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건 생각만큼 나에게 소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를 크게 바꿔놓지도 않는다. 오히려, 여행이란 행동양식을 통해 우리는 내면을 걷는 다각도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야기와 같이 흐르는 자신의 해석은 여행과 독서, 문화생활이 공통적으로 갖는 모습이다. 

영화가 과묵하게 풍경만을 많이 담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 같았고, 그래서 나 또한 일본의 겨울을 여행한 것 같았다. 

6. 사운드 오브 폴링 (2025)

죽음을 대하는 산 자들의 행위들. 산 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목격하고, 두려워하고, 경험하고, 선택하는지, 혹은 애써 선택하지 않는지 그 끝없는 감정을 펼쳐 보여준다. 누구는 애써 죽으려하고, 죽은 자를 따라하고, 뛰어내린다. 하지만 누구는 죽지 않기 위해 다리를 포기하고, 임신을 포기하고, 웃음을 포기한다. 

삶의 애환들이 어떻게 죽음을 출구로 보게 만드는지, 해결책으로 보게 만드는지 깊은 침묵 속의 상상과 행동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그 동시에 타인으로서 죽음의 표지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병치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자의 몫은 아니다. 

"엄마는 언제 웃어야 할 지를 잊은 듯 했다. 누군가 갑자기 죽을 때에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입을 틀어막고 얼굴은 붉어졌다." 삶의 행복에서 웃음을 찾지 않고 삶의 종료에서 웃음을 찾는 건 무슨 감정일까.

어린아이가 죽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경험에 대해 끝까지 무지한 인간에게 죽음의 목격은 어떤 경험으로 다가오는가. 

죽은 자의 시선을 왜곡렌즈와 함께 부양하듯 연출해낸 것은 흥미로웠다. 그렇게 떠있을 수 있는 모습을 죽음으로 형상화한 마지막 장면도. 한편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은 청각기관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Sound of Falling 은 죽기 직전 마지막 감각경험, 죽는 기분일 것이다.

7. 그 외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들은 영화적 '색채'가 분명해 그 나름의 팬층이 있을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왠지 모르게 마카롱..이 떠오릅니다. 우리 고블린 햄..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 유튜브에서 바이럴 타길래 비행기에서 챙겨 봤던 영화입니다. 패션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그 속의 열정을 제멋대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저도 영화보며 반성했습니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 눈이 즐거워서 자주 돌려보는 영화입니다. 롱보드 신을 참 좋아하구요, 그보다 표범 신을 더 좋아합니다. 사진에 대한 가치관의 한 축을 만들어준 아끼는 장면입니다.
  • 터미널 (2004) - 크라코지아!
  • 조커: 폴리 아 되 (2024) - 음... 색감은 좋은데.. 뮤지컬 장르는.. 좀..
  •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 내가 뭘 본거지? 하지만 개운하다.

원래는 '다시 읽기' 섹션도 넣으려고 했는데요, 책은 독후감을 잘 남겨놓질 않아서.. 독서하며 기록을 조금씩 남기는 습관을 들인 후에 도입해보겠습니다. '다시 보기' 섹션도 지금은 나열식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다음부터는 (12월호처럼) 본 것들 중 추천하는 것만 추려 더 긴 감상을 가져오겠습니다. 

글을 계속 쓰는 것은 큰 관성을 띠는 행위입니다. 한번 잃으면 다시 습관 들이기에 장벽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조금씩 쓰더라도 글은 쌓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족할 양을 조절하기만 하면 의외로 쉽게 붙기도 합니다. 오를 봉우리를 쳐다보기 보다는 다음 발 디딜 곳만 바라보고 써가는 작가가 됩시다.  

금방 26년 봄호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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