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드의 4월 다시듣기
https://open.spotify.com/playlist/5R1HhMeri1R1pMwzEdCZIG?si=95ee3047eec14ad4
# 이우드의 4월 다시보기
oil on canvas, 49.5 x 58.4 cm.
image cited from christies.com
# 이우드의 4월 뒷보름 돌아보기
- 랩실에서 본연구 외적으로 웹사이트 관련한 일들에 부름받고 있습니다. 랩실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야 할지, 쌓이는 일에 투덜되야 할지 마음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 중간고사를 치렀습니다. 전공 3개와 부전공 1개를 봤는데요, 매번 느끼는 것이 공부 안한 것 치고 과분한 성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시험 직전주에도 반납일이 며칠 안남은 책들을 읽느라 바빴거든요.
- 시험 끝나자마자 4월 동문 독서모임을 갔다왔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었는데요, 책보단 영화가 더 박진감 넘치는 것 같습니다.
- 독서모임 끝나고 하룻밤 귀향했다가 바로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앞으로 바쁜 나날이 계획되어 있어 지금 아니면 이번 학기에 집을 못 갔다올 것 같아서요. 시험 끝나고 얼굴 보기로 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의 변명을 이렇게 전해봅니다..
- 색연필 세트와 캘린더부록을 장만했습니다. 이제 구글 캘린더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심심할 때 어디서든 그림도 그릴 수 있습니다.
- 시험기간이랍시고 게으르게 살았습니다. 일례로 조교일지를 제출하지 않아 이번달 조교수당은 이월되어 받게 됐습니다. 절치부심하고 월간 지출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고대하던 막스플랑크 독일 인턴십 1차에 붙었습니다! 13일에 면접 보고 최종 합격은 5월 뒷보름호로 전할 수 있겠네요. 응원해주세요!
# 글쓰기 플랫폼 운영에 대하여
나는 글을 정말 여러 군데에 남기고 있다. 명실상부 블로그 노마드로서 이번에 이메일이라는 새로운 글의 폼을 개척한 의미는 첫째로 글을 주기적으로 쓰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소셜네트워크의 탈출구로써의 의미가 더 크다.
나의 소식을 간간히 전하는 용도로 사용하던 SNS 가 여러 면에서 내 삶을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가장 크게 든 지점이 9/11 밈들과 이탈리안 브레인랏들이었다. 소식을 전하고 접하기 위해 SNS 를 사용했지만, 그를 위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질 나쁜 정보를 입력받고 있다고 느꼈다.
언제 올라올 지 모르는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려 매번 들어가지 말고 특별한 소식이 있을 때 나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들자, 라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 펜팔이었다. 전하고 싶은 소식만 전하고,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전달받고 나도 전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많이 디톡스 된 기분이다. 자연스레 밀리의 서재에 더 자주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한페이지 읽다가 내려 놓더라도 인스타그램보다는 도움될 것 같다. 금연하려고 니코틴패치 하는 기분이긴 하다.
아마 당분간은 티스토리와 뉴스레터를 애용할 것 같다. 나에게 맞는 페이스인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는 나에게 마지막 남은 소셜네트워크인 만큼 나의 글 소식과 사람들의 글 소식을 주고 받는 용도로만 사용할 것 같다.
플랫폼을 고를 적에 워낙 까다롭고 독자 보다 작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지라 나의 연재 플랫폼들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본의아닌 공통점이다. 그래서 혹자는 네이버블로그 같은 주류 플랫폼에도 연재를 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하는데, 고민해보았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이버 블로그에는 지금처럼 새로운 글의 도입부와 티스토리 글링크를 붙일 것 같다.
플랫폼 노마드로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정보 이주이다. 같은 글이 여러군데에 복제 게재되어있으면 데이터를 수정하고 보전하는 게 복잡해지기 때문에,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를 잘 운영하여 필요한 곳에서 데이터를 인용해 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분히 웹개발자적인 주관이 녹아든 지점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티스토리 기반 데이터베이스도 한계를 많이 느껴, 곧 다른 플랫폼으로 또 이주하거나 아예 직접 새로 지을 궁리를 하고 있다. 조금 더 지켜보고 늦지 않은 시일에 감행할 예정이다.
여담으로, 최근 다이소 문구코너에서 발견한 불렛저널을 추천하고 싶다. 내지가 두께가 있어 잉크펜으로 써도 비침이 없고, 내지 촉감도 펜이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 여러모로 사용감이 좋다. 심지어 가격도 3천원밖에 안해서 나는 월급날에 8권 사서 쟁여두었다.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더 사고 싶은 것을 참고 있다. 저널 많이 써서 자주 교체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일부러 그럴싸해 보이는 메모를 붙였다.
# 커피 브루잉*과 음악 페어링.
오랫동안 커피와 음악을 붙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커피와 음악 둘 다 감각경험의 예술이고, 특히 드립커피는 음악처럼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커피활동 중 특히 브루잉 과정에 음악을 접목시켜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현재 커피계가 브루잉 레시피를 바라보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래의 바리스타들은 커피 브루잉 레시피를 커피의 무게와 부어야 하는 물 무게, 그리고 물 붓는 타이밍 등으로 표현을 해왔는데, 이런 방식은 뭔가 커피의 바이브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커피는 디지털 세계에 의존하여 설명되기 어려운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경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 과정 또한 충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브루잉 레시피를 기록하는 표준은 체스에 기보의 형식이 있는 것과 달리 아직 정해져있지 않다. 나는 커피 브루잉이 시간예술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악보와 같은 형태의 표준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커피는 같은 레시피로 내려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게 또 묘미이기 때문에, 레시피 또한 바리스타가 그때 그때 조절할 빈 공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유도를 담을 방법은 재즈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다. 재즈는 연주자의 즉흥연주가 백미인 음악 장르인데, 이런 곡들도 같은 무대에 선 연주자들 간에 최소한의 곡 흐름은 약속이 되어 있어야 매끄러운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널리 연주되는 재즈 스탠다드 곡들은 곡의 화성구조와 메인 멜로디만 적혀 있는 리드시트 라는 악보로 공유된다. 연주자들은 이것 위에 자신만의 해석을 즉흥적으로 가미해 연주함으로써 곡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된다. 리드시트가 연주자의 즉흥연주를 위한 파트를 비워놓는 덕분에 재즈곡은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마다 정말 다른 느낌의 곡으로 재탄생 된다.
그래서 재즈 리드시트 스타일의 레시피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바리스타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진입장벽을 낮추고 타이밍 표현도 직관적으로 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곡의 가사를 잘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곡을 음악적으로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누구든 곡을 여러번 들으면 가사를 알아듣고 따라부를 수 있는 게 가사가 주는 힘이다. 가사가 가지는 이런 힘을 기용해 브루잉 과정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브루잉 레시피는 곡의 가사가 써있고 몇몇 부분에 형광펜으로 강조되어 있다. 음악을 틀고 가사를 따라가면서, 강조된 가사 타이밍에 박자에 맞춰 물을 부으면 되는 식이다. 물을 붓는 박자는 1마디에 한바퀴씩 두르면 되도록 곡의 템포를 선정했다. 커피인들은 한번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 커피를 내리는 행위. 특히 커피 드리퍼와 종이 필터를 사용해 중력의 힘으로 내리는 필터커피의 추출방식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 예민함에 대하여
예민한 사람은 지각 역치가 낮은 사람이다. 작은 신호와 현상도 감지하고 같은 신호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다. 한편, 까탈스러운 사람은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다. 같은 것을 느껴도 쉬이 성에 차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예민함의 반대는 무감함이고, 까탈스러움의 반대는 무던함이다.
종종 예민한 사람만 상처받고 사는 세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상처받은 행동이 상대방은 큰 뜻 없이 한 것일 때 괜한 심술이 난다. 저들이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공격한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저들은 되려 그런 나를 보고 혼자만 왜 과민 반응하냐고 한다. 무감한 사람은 자신이 선을 밟고 있는지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또한 자신이 예민해져야 할 동기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상처 주고받음을 예방하기 위해선 예민한 사람이 이해심과 맷집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던한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삶에 대한 나의 기대치와 세상의 평균 기대치의 차이를 이해하고 타협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주의해아 할 것은 예민함을 내려놓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던해지려는 것은 예민함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예민한 사람이 무던해지는 게 무감한 사람이 예민해지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또한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세심한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세심한 사람은 행동이 섬세한 사람이다. 자기표현을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이다. 자신과 같은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받는지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자신을 가다듬는 사람들이다.
상대방의 세심함을 감지하는 것 또한 그에 버금가게 예민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무감한 사람은 자신이 세심한 배려를 받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하며 살아가고, 내가 무감하게 지나치는 세심함이 없도록 더욱 예민해지려고 노력한다.
# 전라 기행에 대하여
이번 학기에는 전라도 기행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전라도 곳곳의 지역들을 가보며 그 지역에서 사는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또 다시 전라도에 이렇게 오래 있을 일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은 이후로, 여기에 남아있을 때 최대한 돌아다녀봐야겠다 는 결심이 들었다.
마냥 방랑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테마를 두고 여행하고 있다. '내가 이 도시에 살면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사람이 살아갈 때 도시로부터 받는 영향은 무엇이 있으며 그 중 나는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다. 두발로 걸으며 내면의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간으로서 도시는 구성원에게 어떤 것을 주는가? 사람이 살아갈 때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 나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공원이었다. 나에게 공원은 정말 다양한 가치를 가진다. 식물들이 많이 있는 정원이고, 사색할 수 있는 산책로이며, 피크닉을 할 수 있는 앞마당이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이다. 자연으로부터의 힐링을 할 수 있는 도시 속의 자연낙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도시에 산다면 공원이 가까이 있는 곳에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4월에는 국가정원이 있는 순천에 다녀왔다.
나에게 필요한 공간 두번째는 도서관이다. 완독해내는 책은 적지만 늘 책을 지니고 살려고 한다. 책장 사이를 누비며 책등에 써진 제목들을 차례로 읽으면 생각의 무빙워크를 탄 듯 재밌는 상상들이 흐른다. 그 많은 지식을 알지 못해도 지식이 주는 생각의 가지를 타볼 수 있다. 단순히 책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 원할때마다 내가 빼서 읽어볼 수 있는 지식의 외골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 살더라도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것까진 아니지만 좋아하는) 공간 세번째는 수공간이다. 특히, 내가 들어가서 뛰놀 수 있는 수공간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헤엄치며 물 속을 유영할 때면 나는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3차원적 자유를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깊이도 깊고 청명해 시야가 잘 확보되는 수공간을 원한다. 이를테면 호수 같은 공간. 한국에는 규모가 큰 내륙 reservoir 가 많이 없기도 하고, 있더라도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들어가 뛰노는 문화는 많이 없어져서 물이 뿌옇고 위험하다. 그래서 호수 대신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서 노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바다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바다수영을 하면 디스코팡팡 타는 듯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기 때문에 무섭고, 수영장은 얕아서 성에 안찬다. 난 그보다 깊고 적요한 호수가 좋다.
이 외에도 내가 필요한 도시의 면모들을 찾아가며 여행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삶의 터전의 도시기능적 장치, 자연적 장치 등 여러 방면으로 나 자신을 뜯어가 볼 것이다.
# 사랑과 익숙함의 사이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내 드라이기 디자인이 꽤나 이쁜 것을 새삼 느꼈다. 로즈골드 색도 고급지고, 디자인도 기능중심적이다. 디자인은 줄곧 변하지 않았을텐데 왜 난 몰라보고 있었을까.
분명 드라이기를 장만할 적엔 디자인이 이뻐서 샀을 것이다. 동가홍상이라 말하며, 혹은 값을 더 얹더라도 이쁜 것을 샀을 것이다. 기능 때문에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에 대해선 관대하고 디자인을 우선해 결정했을 것이다.
디자인을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디자인을 신경쓸 정도라면 기능은 당연히 챙겼겠지' 라는 안일한 연계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디자인이 이쁘지 않으면 기능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는 것이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보아야 뒤늦게 알 수 있는 가치들(기능과 내구성 등)을, 써보기 전에도 알 수 있는 정보들(디자인 등)에 엮어 유추하려는 발악의 일종이다.
구매 후 사용하기 시작하면 디자인은 서서히 잊혀간다. 항상 곁에 두고 있으면 미적 디자인은 익숙함 속으로 사라지는 법이다. 살 때 이뻐서 이끌리고, 사용할 때 고마움이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며, 고장날 때가 되면 욕하고 버린다. 참, 무슨 성노리개도 아니고.
우리네 삶도 그렇다.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 아는 것들을 통해 넘겨짚으려 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러고서는 대부분 종국에 다다라서야 잘못 넘겨짚은 것임을 깨닫고 산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결국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있는 것 선에서의 최선의 판단을 하고,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드라이기를 살 적에는 그렇게 끔찍하게 따졌던 아름다움을 왜 사용하면서는 칭찬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드라이기의 미모에 이끌려 내 집으로 들였지만 같이 살아가면서는 그 미모에 익숙해져 아름다움을 말해주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우리네의 결혼에 비추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결혼은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약속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서로를 기능적으로 보게 한다. 다시말해, 쓸모가 없으면 헤어지려 하게 만드는 결혼의 정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이렇게 보는 것을 지양하고 싶다. 대신, 서로를 곁에 두고 살자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서로가 가장 도움되서도 아니요, 가장 아름다운 존재여서도 아니요, 오직 서로에게 행복이 되어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려 한다.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 내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해야 한다.
백발이 된 아내의 머리를 이쁘다고 말해주고 빗어주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배우자를 찾기보다, 상대방이 누구든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알아봐주는 따뜻한 눈을 가지고 싶다.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나의 철학적 관심사
나의 철학 관심사는 시대와 분야를 넘나든다. 어떤 때는 16세기에 조명받던 인식론이 의문들 때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현대 언어철학에 속할 질문들이 든다. 철학의 주제들은 어느 시대나 적용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좋다.
# 설계에 대하여
인간의 많은 것들은 설계를 거쳐 형성된 것들이다. 예컨대 물병은 물이 없는 곳에서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한 기능적 사물이다. 시계는 시간이란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설계한 사물이다. 하물며 책상이 흔들릴 때 책상 다리에 무언가 괴는 행위또한 일종의 문제 해결 설계이다.
설계의 행위는 여러모로 고등적 지능행위이다. 첫째, 설계는 목적지향적인 사고방식이다. 무언가를 설계한다는 것은 먼저 무언가에 불만족을 느끼고 해결욕구를 느꼈다는 것이다. 순응적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문제점을 콕집어 인지할 수 있어야 설계를 결심할 수 있다.
둘째로, 무언가를 설계한다는 것은 세상의 원리를 잘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행동 내지는 장치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 알아야 원하는 결과에 맞게 설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빠른 설계를 위해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발명하려면 기존에 있었던 문제와 사용된 해결 방법론들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분야를 넘나들어 방법론들을 갖고 있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어도 금방 기존의 것들을 응용해 설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설계는 역인과적 사고에 능숙해야 한다. 누구든 물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알지만, 발전기를 고안할 때 낙수에너지를 사용할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목적에 걸맞는 기존 지식을 역인출하는 것은 고도의 연계지능을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능력을 창의성이라 이름붙여 높이 사는 것이다.
# 안목에 대하여
안목이란 같은 것을 보고도 더 많은 것을 해석해내고 더 풍부하게 읽어내는 능력이다. 미술 작품을 볼 때 작가의 세밀한 의도를 읽어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안목이 좋다는 건 세상을 감지하는 해상력이 좋다는 것이다. 민감함과 예민함의 능력이다. 안목은 좋은 것들을 찬탄할 수 있게도 해주지만 반대로 질 나쁜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느끼게 해준다. 세상을 더욱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세상을 더욱 비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양날의 능력이다.
그래서 때론 안목이 차별과 무시를 낳기도 한다. 스타벅스 커피를 무시하는 나는 스타벅스를 피하여 더 좋은 커피들을 즐기려 하지만, 이 태도는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현학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또, 안목이란 건 되돌아올 수 없는 강 같은 것이다. 내가 안목이 없다는 것은 알아차리기 힘들고, 안목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안목을 내려놓을 수 없다. 안목이 있는 사람만이 안목이 부족했던 자신의 시기를 깨달을 수 있고, 안목이 부족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견문이 없는 분야를 찾았을 때 우리는 안목을 가지려 노력해야 하는가? 나쁜 면만 보자면 안목은 되돌아 올 수 없고, 차별을 내적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목이 주는 인식의 새로운 지평은 경험해보지 않는 한 모르기 때문에, 안목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안목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동시에 차별을 멀리하기 위해선 '안목이 벼슬이 아님'을 스스로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내가 안목을 가졌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니며, 내가 가진 안목이 좋은 안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터놓고 말해 스타벅스가 사실은 더 좋은 커피이고 내가 식견이 부족해 몰라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겸손하는 수밖에 없다.
# 이우드의 다음보름 미리보기
- 5/9 페퍼톤스의 공연실황 영화가 CGV 에서 개봉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영화표 보내드릴테니 많은 관람 바랍니다.
- 랩실에서 논문 작성을 돕기로 해서, 다음 보름은 무지 바쁠 것 같습니다..
- 5월 전라 기행으로 보성군을 벌써 (4월 뒷보름호를 마무리 짓기도 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황금연휴에 차축제를 성대하게 한다길래 미리 갔다왔습니다.
- <스토너>, <오만과 편견>, <28>을 빌려놨습니다. 바쁜 틈에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좋은 책들 있으면 추천 많이해주세요.
- 봄날이 가시기 전에 셔츠를 두어벌 더 들이고 싶습니다.
- 이 뉴스레터의 구조를 매만질 계획입니다. 지난 달동안 제가 어떤 분야에서 얼만큼의 글을 쓰는지 스스로 관찰한 결과를 반영해 구조를 조금 세워보려고 합니다. (요 '다음보름 미리보기' 파트도 그 결과물의 일환입니다)
- 바쁜 날이 지나면 사람들도 보고 미술관도 가러 5월 내로 서울에 올라갈 생각입니다. 관심 있는 사람은 같이 보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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