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나의 시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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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 연민의 시작
결혼식 날 아침, 외숙모에게 카톡이 왔다. 결혼을 기점으로 맞게 될 삶의 변화에 대해, 그리고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었다. 바쁜 마음으로 일어난 나는 잠시 멈춰서서 문자를 읽었다.
“항상 지원이를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더 쉽게도 지나가”
오래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집을 나섰지만 이 말은 맘 속 어딘가에서 종일 맴돌았다.
난생 처음 메이크업을 할 때, 결혼식장으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사람들을 만나 넘치는 축하를 받을 때, 신랑 입장을 위해 문 뒤에서 기다릴 때, 버진로드 끝에 서서 지원의 입장을 기다릴 때, 지원 친구들의 축사를 들을 때, 부모님께 절을 할 때, 문득문득 지금 내 옆에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생각하라는 말이 스쳤다.
결혼식을 마치고 벅찬 마음을 안고 집에 와서도 그 문자가 다시 생각나 휴대폰을 켰다. 이제 아내가 된 지원을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보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보통 배려하고 사랑하고 변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가.
결혼 후 펼쳐진 삶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와 지원뿐 아니라 양가의 가족들까지 포함된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 게 결혼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혼은 마을과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부딪혀 한 데 섞이는 정도의 일일 거였다. 분쟁의 여지가 다분하고 몇 겹은 더 피곤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연애 내내 거의 싸운 적 없던 지원과 내가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얼마간 말을 안 섞기도 했다. 뜬구름 잡는 얘기라도 늘 이상적이고 낙관 가득한 소리를 해왔던 우리가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작게는 집안 물건을 정리하는 일부터 크게는 가치관의 차이까지 충돌했다.
겪어본 적 없던 갈등을 마주하고, 그걸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에 몇 번 놓여지면서는 미운 마음이 자라나기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한 이해를 포기할 때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생긴 빈틈이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살면서 남을 미워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가족은 얘기가 달랐다. 더 이상 남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둘 수도 없고,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상대에게 이해 안 되는 모습이 있더라도, 미운 마음이 들더라도 받아들이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건 30년 이상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스스로 부딪혀보고 생각하고 또다시 부딪혀보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매번 달랐지만 비슷한 결이 있었다. 나를 좀 덜어내고 아내를 생각할 때. 지원이 왜 그렇게 생각 혹은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 할 때 해결과 화해의 실마리가 보였다.
그럴수록 맘 속 깊은 곳에서는 연민이 자라났다. 연민이란 동정과는 달랐다. 연민은 상대를 낮춰 보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짊어진 무게를 내 쪽으로 조금 옮겨 들어보려는 마음에 가까웠다. 타인의 마음속에 보다 깊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방식이나 환경, 겪은 일들을 알 알려고 애써야 했고, 알아야 했다. 내가 반평생 말을 더듬어왔기 때문에 내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기 어려워하고, 그게 어려울 때 방어적인 태도가 되는 것 같은 것들을. 어릴 적 자주 혼났던 기억 때문에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게 두려워 종종 회피하는 것 같은 것들을.
연민을 가지는 순간 미움은 빠르게도 누그러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회복했다.
연민으로 아내를 볼 때면 내 마음이 아파오곤 했다. 마치 아내와의 거리가 전혀 없는 것처럼, 지원의 마음이 완전히 내 마음으로 여겨져, 그걸 뒤늦게 알아챘다는 미안함과 애틋함, 안타까움이 섞여 슬펐다. 상대의 무게가 그렇게까지 내 무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연민을 가지면서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쓰러워하고 아까워하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됐다. 결혼하고 40년을 살아온 외숙모의 그 조언은 ‘배려하고 사랑하라’라는 쉽고 따뜻하기만 한 말과는 달랐다. 함께 살아가는 건 사실은 꽤 힘든 일이라는 말이었고, 상대의 괴로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단순히 아껴주고 배려하라는 말보다, 연민의 방향이 훨씬 사랑과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연민에는 늘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들어가니까. 판단을 멈추고 알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말이다.
외숙모의 그 한마디 덕분인지, 나는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젠가 가족 모임에서 지원의 고모가 “결혼 생활은 어때?”라고 물었을 때 지원이 대답했다.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틀림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원뿐 아니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타인에게도 이 연민을 품고 싶다. 세상은 버겁고 험해서, 이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분명 사랑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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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연재가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꾸준히 봐주셔서 힘내서 쓸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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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려고 합니다

글 쓰는게 너무 즐거워서, 시즌이 끝났지만 계속 쓰려고 합니다. 어떤 방식이 될지는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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