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연민의 시작

시즌 1 : 나의 시작들 - 마지막화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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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나의 시작들

 

 

Ep 8. 연민의 시작

 

결혼식 날 아침, 외숙모에게 카톡이 왔다. 결혼을 기점으로 맞게 될 삶의 변화에 대해, 그리고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었다. 바쁜 마음으로 일어난 나는 잠시 멈춰서서 문자를 읽었다.

 

우리 두현이. 애기였는데 어느새 멋진 장부가 되어서 결혼을 하네. 뿌듯하고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축하해! 우리 두현이는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라서 사랑스러운 가정을 이끌거라고 믿는다.

두현아. 외숙모가 결혼을 해서 40년을 살아보니 둘이서 산다는게, 또 다른 가족들의 일원이 된다는 게 고맙고 든든하기도하지만 버거울 때도 있더라. 애기들이 생기고 행복하면서도 책임도 커지고… 근데 둘이라서 잘 견뎌내지기도 하더라고.

항상 지원이를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쉽게도 지나가.

아직 미생인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외숙모가 어찌해라 말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 귀한 두현아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끼며 살아라. 쉽지는 않을 테지만 그나마 그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방법인 것 같더라고. 두현이, 지원이 두 분 다 서로 서로 아끼고 사랑해서 확실한 서로의 편이 되어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응원할게. 이따가 봐.

 

“항상 지원이를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더 쉽게도 지나가”

오래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집을 나섰지만 이 말은 맘 속 어딘가에서 종일 맴돌았다.

난생 처음 메이크업을 할 때, 결혼식장으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사람들을 만나 넘치는 축하를 받을 때, 신랑 입장을 위해 문 뒤에서 기다릴 때, 버진로드 끝에 서서 지원의 입장을 기다릴 때, 지원 친구들의 축사를 들을 때, 부모님께 절을 할 때, 문득문득 지금 내 옆에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생각하라는 말이 스쳤다.

결혼식을 마치고 벅찬 마음을 안고 집에 와서도 그 문자가 다시 생각나 휴대폰을 켰다. 이제 아내가 된 지원을 안쓰러워하고 아깝게 보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보통 배려하고 사랑하고 변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가.

결혼 후 펼쳐진 삶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와 지원뿐 아니라 양가의 가족들까지 포함된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 게 결혼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혼은 마을과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부딪혀 한 데 섞이는 정도의 일일 거였다. 분쟁의 여지가 다분하고 몇 겹은 더 피곤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연애 내내 거의 싸운 적 없던 지원과 내가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얼마간 말을 안 섞기도 했다. 뜬구름 잡는 얘기라도 늘 이상적이고 낙관 가득한 소리를 해왔던 우리가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작게는 집안 물건을 정리하는 일부터 크게는 가치관의 차이까지 충돌했다.

겪어본 적 없던 갈등을 마주하고, 그걸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에 몇 번 놓여지면서는 미운 마음이 자라나기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한 이해를 포기할 때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생긴 빈틈이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살면서 남을 미워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가족은 얘기가 달랐다. 더 이상 남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둘 수도 없고,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상대에게 이해 안 되는 모습이 있더라도, 미운 마음이 들더라도 받아들이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건 30년 이상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스스로 부딪혀보고 생각하고 또다시 부딪혀보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매번 달랐지만 비슷한 결이 있었다. 나를 좀 덜어내고 아내를 생각할 때. 지원이 왜 그렇게 생각 혹은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 할 때 해결과 화해의 실마리가 보였다.

그럴수록 맘 속 깊은 곳에서는 연민이 자라났다. 연민이란 동정과는 달랐다. 연민은 상대를 낮춰 보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짊어진 무게를 내 쪽으로 조금 옮겨 들어보려는 마음에 가까웠다. 타인의 마음속에 보다 깊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방식이나 환경, 겪은 일들을 알 알려고 애써야 했고, 알아야 했다. 내가 반평생 말을 더듬어왔기 때문에 내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기 어려워하고, 그게 어려울 때 방어적인 태도가 되는 것 같은 것들을. 어릴 적 자주 혼났던 기억 때문에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게 두려워 종종 회피하는 것 같은 것들을.

연민을 가지는 순간 미움은 빠르게도 누그러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회복했다.

연민으로 아내를 볼 때면 내 마음이 아파오곤 했다. 마치 아내와의 거리가 전혀 없는 것처럼, 지원의 마음이 완전히 내 마음으로 여겨져, 그걸 뒤늦게 알아챘다는 미안함과 애틋함, 안타까움이 섞여 슬펐다. 상대의 무게가 그렇게까지 내 무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연민을 가지면서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쓰러워하고 아까워하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됐다. 결혼하고 40년을 살아온 외숙모의 그 조언은 ‘배려하고 사랑하라’라는 쉽고 따뜻하기만 한 말과는 달랐다. 함께 살아가는 건 사실은 꽤 힘든 일이라는 말이었고, 상대의 괴로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단순히 아껴주고 배려하라는 말보다, 연민의 방향이 훨씬 사랑과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연민에는 늘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들어가니까. 판단을 멈추고 알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말이다. 

외숙모의 그 한마디 덕분인지, 나는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젠가 가족 모임에서 지원의 고모가 “결혼 생활은 어때?”라고 물었을 때 지원이 대답했다.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틀림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원뿐 아니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타인에게도 이 연민을 품고 싶다. 세상은 버겁고 험해서, 이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분명 사랑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즌 1 연재가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꾸준히 봐주셔서 힘내서 쓸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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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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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게 너무 즐거워서, 시즌이 끝났지만 계속 쓰려고 합니다. 어떤 방식이 될지는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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