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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 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혁신이 단 1년 만에 이뤄졌다.”
AI의 기술 혁신은 급격하다.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한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밝힌 'AI가 모든 직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는 전문가는 없다. 다만 인류의 밝은 미래와 혁신을 위해서 다소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생산성을 높였던 과거의 혁신과는 달리,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하는 AI 혁신. 그 결과가 인간의 삶에 가져올 파급력은 아직 알 수 없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 AI는 어떤 방식으로 디자이너를 대체하게 될까?
AI의 본질은 인간 노동력의 완전한 대체이다. 이는 구조적인 변화이며 기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는 AI의 혁신 앞에 어리석은 전망이 되었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능력은 차고 넘친다. 당장 막대한 비용과 한정된 투자금 때문에 수익성에 따른 연구가 우선 진행되었을 뿐이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11조 원에 달했던 AI 산업의 글로벌 민간 투자금은 2025년 200조 원을 넘기며 모든 관련 산업에서 극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금이 몰릴수록 글로벌 빅테크의 수익성을 극대화할 서비스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된다.
여기에는 일반인도 디자인 전문가 이상의 퀄리티 높은 작업물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 또한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어도비의 '젠스튜디오'는 브랜드 타깃과 스타일, 광고 채널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를 5분 만에 제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 혁신에 따라 디자이너의 기존 업무 역시 상당 부분 대체 가능하다. 20명으로 운영되던 브랜드 디자인팀은 10명으로, 5명으로 줄어들고 종국에는 소수의 핵심 담당자가 브랜드 디자인 전체를 담당하게 된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하는 미래는 현재 진행 중이다.
과연 창의성이 디자이너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AI의 창의성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압도한다. 이는 AI가 가구 산업에 불러온 혁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구 디자인은 의식주를 비롯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고대 이집트를 기점으로 보아도 6,0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가구는 기능과 형태에서 이미 지금의 디자인으로 진화를 마친 듯 했다. 그런 가구 디자인에 창의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AI 기술이다. 정교한 디자인과 특유의 미감으로 유명한 글로벌 가구 브랜드 KARTELL이 AI를 활용해 만든 가구 디자인은 꽤 인상적이다. KARTELL은 인공지능을 통해 가구 개발 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고,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의지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인간과 AI의 창의성 대결이 무의미함을 시사한다. 빅데이터 기반으로 인간의 고정관념과 산업 간의 경계를 초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공지능의 특장점이 창의성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사실 개인의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개인이 일생 동안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개연성 높은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AI는 유별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최고 수준의 에이전시나 글로벌 기업에서 전개한 브랜딩 프로젝트 사례를 학습한 AI 모델의 브랜드 디자인 서비스를 떠올려보자. 브랜드 디자인의 완성도와 설득력에 있어 일반적인 브랜드 디자인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디자이너의 양극화는 심화된다. 양극화는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인력과 대체할 수 없는 인력으로 나뉜다. 지금 당장은 AI와 디자이너의 공생이 가능하겠지만 향후 5년 내로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AI 서비스의 영향으로 디자인 전문가들이 형성한 디자인 시장 대부분이 AI 서비스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몇 천 억, 몇 조의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하는 목적은 AI를 통해 인류의 삶을 개선하려는 선한 의도가 아니라 기존 시장의 부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개인 셈이다. AI에 대체되거나, 리드하거나. 물론 이는 산업 전반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디자인 퀄리티와 맥락의 완결성이 높은 브랜딩 프로젝트 10만 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논리 구조를 학습한 AI 모델을 생각해 보자. 같은 시간 동안 AI보다 탁월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있을까? 디자인의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AI를 활용해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디자이너의 비전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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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의 시대 시리즈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1) : 브랜딩에서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2) : 좋은 브랜딩은 무엇이 다를까? (1)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2) : 좋은 브랜딩은 무엇이 다를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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