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된 마음

김봉현의 그냥 하는 마음_밀착된 마음_정지우

2024.02.21 | 조회 1.5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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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니까 했습니다. 20년 동안.”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와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내 귀에 꽂히듯 들어온 말이었다. 그는 지난 20여년 간 힙합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최근 출간한 <힙합과 한국>을 비롯하여 대부분 힙합에 관한 책이지만, <김봉현의 글쓰기 랩>, <오늘도 나에게 리스펙트> 등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집도 있다.

김봉현 작가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내가 쓴 <분노사회>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다면서, 내게 자신의 책에 실을 대담을 요청해왔다. 나는 그에 응하면서, 그와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김봉현 작가와 나의 대담이 실린 <힙합과 한국>이 출간되었다. 나 또한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에서 그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글과 말’의 인연이 이어지는 동안, 내게는 삶의 여러 변화가 있었다. 사는 곳도 여러 번 바뀌었고, 로스쿨에 입학하여 수험생활을 거치기도 했으며, 여러 직장을 거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동안 그는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계속 글을 쓰며 일관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는 마치 그가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오랜 은행나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득 그 마음의 힘이 너무도 궁금했다. 불안과 방황, 여러 고민들을 거쳐가며 삶의 다소 복잡한 궤적을 그려왔던 나에 비해, 그는 흔들림 없이 자기의 오랜 길을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길과 마음에 대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흔쾌히 그에 응해주었다.

 

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 작가는 매일 작업실에 출근한다
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 작가는 매일 작업실에 출근한다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는 마음

 

이상하게 저한테는 10대 때 기억이 별로 없어요. 어느 날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20살 이전에는 제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모범생으로 살았던 거죠. 부모님,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몰랐죠.”

그러다 그는 20살이 되었을 때부터, 자유롭게 음악에 빠져 들었다. 특히, 윤종신의 [우], LL Cool J의 [Mr. Smith]가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는 삶의 일방통행로로 들어섰다.

대학생이 되어서부터는 그냥 나의 시간을 살았어요. 10대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타인들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면, 20대 때부터는 전혀 다른 삶이 되었던 거죠. ‘세상의 시간같은 건 더 이상 제게 들어오지 않았어요. 대학 동기들이 지망했던 대기업에도 원서 한 번 넣은 적이 없었죠.”

그의 20대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나도 그와 비슷한 청춘을 보냈다. 나는 음악 대신 문학과 철학에 빠졌다. 그는 스무살 때부터 음악 웹진에 글을 보내어 음악 평론을 쓰는 필진이 되었다고 했다. 대학생 때 이미 멜론, 벅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대학생 때부터 책을 쓰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나는 그와 닮은 듯 느껴졌다. 그러나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달랐다.

그렇게 살면서 딱히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엄청 단단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불안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터널시야라고 해할까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알았고, 그것을 했을 뿐이었어요. 15년 동안 그저 계속 그렇게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나는 20대 내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지만 내게는 늘 불안이 달라붙어 있었다. 오히려 나는 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더 악착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김봉현 작가는 불안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는 그저 자기의 세계를 밀어 붙였다.

글쓰기 모임을 여러차례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불안에 대해 많이 썼고, 저도 그 덕분에 사람들의 불안을 많이 알게 되었죠. 그런데 그 불안의 원인이라는 것이 다 똑같아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게 어떤 능력 부족이라기 보다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할 시간이 다들 시간과 에너지를 못 쓰며 살고 있었던 거죠.”

그는 그러면서 행복과 안정의 키는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살 이후의 삶이 상당 부분 혼자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계속 알아왔고, 안정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에 때론 막연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나 혼자서 가만히, 깊이 생각을 이어나가고, 그 생각을 글로 써내다보면, 어느덧 불안은 사라진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알수록, 불안은 우리를 집어삼킬 수 없다. 막연한 불안은 샤워하는 동안 거울에 낀 김과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그 김을 닦아내는 수건이다. 그러고 나면, 거울 앞에 선 자기 자신이 보인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알았다. 그래서 그의 거울에는 김이 서리지 않았다.

 

김봉현 작가의 작업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김봉현 작가의 작업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경쟁하지 않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것

 

2000년대 초반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와 일종의 데뷔 동기 같은 뮤지션들이 더 콰이엇, 팔로알토 같은 래퍼들이죠. 당시에는 힙합이 지금처럼 인기도 없었고, 랩을 해서 먹고 살겠냐고 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한 10, 20년 정도 하나에 매진하고 있다 보니까, 래퍼들도 성공했고, 저도 나름대로 자리잡고 살고 있게 된 거죠.”

꾸준함이 화두인 시대다. 그 이유는 그만큼 꾸준함을 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는 사람도 드물어졌고, 한 사람과 오래 연애하는 사람도, 자기만의 일을 장인정신으로 오래 해내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반대로, 블로그에 글을 몇 번 써봤다가 닫은 사람, 유튜브를 몇 달 해봤다가 접은 사람, 소개팅 어플로 수많은 일회성 만남을 해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나도 여러 삶의 궤적들을 거쳐오면서도 글쓰는 일 만큼은 꾸준히해왔지만, 꾸준함에 있어서 김봉현 작가 앞에 명함을 내밀긴 어렵다고 느꼈다. 그의 꾸준함은 그야말로 외길의 꾸준함, 오랜 장인정신의 발현, 일방통행로에서 다른 샛길로는 간 적 없는, 정말이지 드문경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도, 글쓰는 것보다는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책 한 권 안 내면서 맨날 술만 마시고 말만 하는 사람들한테 배울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그냥 제 앞에 놓인 길이 있었는데, 음악에 대해 계속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내가 해야할 일을 하면, 언젠가 내게 맞는 ‘리스펙’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사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마치 나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꼭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대 때 나 또한 모여서 술 마시면서 세상에 대해 온통 잘 아는 것처럼 떠드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나의 글과 책을 쓰고 진짜 지식과 실력을 쌓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누군가와의 경쟁의식 보다는 그냥 저는 그렇게 나의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자신한테 떳떳한 게 가장 중요했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거나 게으르거나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이 직업 전선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고 싶진 않았어요. 그저 나 자신인 사람이고 싶었어요.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그냥 대체 불가능한 나의 세계를 쌓고 싶었어요.”

그는 현재 힙합 저널리스트로서 우리 나라에서 확실히 대체불가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누구도 힙합에 대한 책을 20권 가까이 써내진 못했다. 에스콰이어 등 주요 매체에 칼럼을 꾸준히 기고해오고 있기도 하고, 주요 아이돌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음악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국대중음악상, 한국힙합어워드의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유튜브 채널 REP TV랩게임토크콘텐츠를 담당하며 더콰이엇, 스윙스, 다이나믹 듀오 등 주요 래퍼들을 인터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는 지금도 뭔가를 좋아해서 하는 게 너무 맞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가끔씩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낯설 때가 있어요. 누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저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는 사람.”

 

김봉현 작가의 작업실에는 LP판 수천장이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봉현 작가의 작업실에는 LP판 수천장이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확장해가는 삶

 

김봉현 작가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은 확실히 ‘일방통행로’가 맞아 보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너무 많이 고민하고, 끊임없는 방향 전환으로 고민할 동안, 그는 자기만의 길을 달렸다. 그런데 그 일방통행로가 영원한 1차로는 아닌 듯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길은 2차로로, 3차로로 점점 확장되고 있는 듯했다.

최근 일본 뮤지션과 우리 나라 뮤지션들 사이에서 일종의 에이전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더콰이엇 등 래퍼들과 나고야의 일본 힙합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일본 뮤지션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중간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싱어송라이터인 토미오카 아이의 한국 활동을 이어주기도 했죠.”

최근 토미오카 아이(冨岡 愛)는 자신의 새 싱글 グッバイバイ(Good bye-bye)’로 무척 화제가 되고 있는 뮤지션이다. 각종 플랫폼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버스킹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힙합 저널리스트인 김봉현 작가가 그의 한국 활동을 도와주는 에이전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시작은 다 말하자면 무작정이었어요. 일본 래퍼들과 연을 맺게 된 것도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면서였고, 토미오카 아이에게도 무작정 sns 메시지를 보내면서 인연이 생겼죠. 그렇게 일본 뮤지션들의 한국 음악 페스티벌 콜라보를 주선하기도 하고, 보그 코리아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그는 원래부터 일본 문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작업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깜짝 놀라서 탄성을 내질렀다. 연남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LP, , CD, 게임기 등으로 가득 차있었다. 마치 문화 박물관을 방불케했다. 상당수가 일본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최근 저는 넷플연가에서 일본 드라마 모임을 열고 있기도 해요. 일본 문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일본 뮤지션들과 일도 하고 있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고 싶어서 무작정 하게 된 것이었어요. ‘힙합 일이라는 큰 틀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일이 확장된다고 느끼기도 하죠.”

나는 그에게 일본어를 그렇게 잘하냐고 했더니, 그는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통번역기 어플을 쓰기도 하고, 통역가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기도 하며, 일본어를 그저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마음을 따르는 사람 같았다. 흔히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려면, 당연히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을 따르다 보면, 생각보다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은 마음이 하는 것이지, 완벽주의가 해내는 것이 아니다.

저는 뭔가를 업으로 삼으려고 할 때, 여전히 그 업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작업실에 이렇게 온갖 것들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제가 지금도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현재의 마음입니다. 저는 10년 뒤에도, 그저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었으면 해요.”

 

일본 문화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김봉현의 작업실
일본 문화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김봉현의 작업실

 

그럼에도 열려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나는 만약 다중우주론이 사실이라면, 다른 우주에서 나는 김봉현 작가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지금의 삶이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미래의 자신이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쪽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저도 20년간 이렇게 살아왔지만, 어쩌면 바로 내일부터 다른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이 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죠. 저는 지금의 삶이 좋다고 믿으며 살고 있지만, 나의 무의식에서는 내 삶을 완전히 바꿔줄 어떤 운명의 존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좋았다. 꾸준함과 일관성이 곧 폐쇄성이나 닫힘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가능성에 계속 열려 있는 것이 진짜 꾸준함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의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거기에는 무수한 갈림길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냥 직선의 길이 좋아서 그리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갈림길에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오는 길가에 선 어느 여행자가 그에게 손짓하고, 그는 그 길로 꺾어들어가는 걸 어느 날 좋아하기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열려 있음이야말로, 우리를 진짜 강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실을 나서면서, 나는 언제까지나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며,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의 현재는 항상 그의 마음에 의해 승인받고 있을 것이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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