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된 마음

박소정의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마음_밀착된 마음_정지우

2024.03.26 | 조회 1.6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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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용기로 찾아낸 행복

 

“5년만 더 일찍 창업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자주 후회해요. 그만큼 지금이 제 삶에서 가장 좋아요.”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들은 이야기였다. 창업 5년차, 녹색광선 출판사 박소정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17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주로 인사 분야 업무를 다루었다. 그러다가 약 8년 전, 퇴사를 하고 2년 반 동안 출판사 창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홀로 시작하여 이어가고 있는 출판사는 그에게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그는 지금이 삶에서 가장 행복한시절이라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제가 행복하지 않을 때는 회사를 다닐 때였어요. 무엇보다 ‘행복’을 느끼기 힘들었던 건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반면, 지금은 시간이며 일정이든 뭐든 제가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계획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게 제게는 행복의 요인인 것 같아요.”

평일 오후, 나는 다소 한적한 동네의 브런치 카페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 앞에 있는 건 묘하게 행복이 전염되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근래에는 나도 독립하여 1인 사무소를 일궈가고 있는 입장인 지라,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공감이 되었다. 내 안에 남아있던 불안이나 걱정이 사라지면서, 나에게도 이것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창업하기 전에는 너무 오랫동안 용기를 못 냈죠. 거의 20년을 회사에서 일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두려움이 컸었나 싶어요. 무언가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있었는데, 그냥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나의 유능함도 믿을 수 없었고요. 1, 2년 창업에 도전해본다고 커리어가 치명적으로 망가지는 것도 아닌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낸 사람 앞에 있으면, 그 용기를 수혈받는 느낌이 든다. 용기란 애초부터 용기 있게 태어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용기란, 누구나 마음 가득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 내 앞에는 용기를 내고, 한 번 뿐인 삶에서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박소정 대표는 20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창업했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박소정 대표는 20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창업했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마음

 

박소정 대표가 혼자 운영하는 녹색광선 출판사는 최근 출판계에서 떠오르는 루키로 알려져 있다. 매년 단군 이래 가장 어렵다는 출판업계이고, 최근에는 자기계발서나 ai 관련 도서 등 트렌드에 따르지 않으면 신간도 아예 팔리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그럼에도 녹색광선은 ‘오로지’ 고전 문학만을 출판하는데도, 출간하는 책이 대부분 5쇄 이상을 찍었고, <감정의 혼란>, <패배의 신호>등 1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도 다수 존재한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은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내에 오랫동안 머물며 현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녹색광선은 프랑스 영화감독인 에릭 로메르의 영화 제목이에요. 남들하고 잘 못 섞이는 델핀이라는 여주인공이 나오는데, 그녀는 언젠가 자기와 취향이 딱 맞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믿고 있죠.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면, 녹색광선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낭만적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녀는 영화 내내 트러블을 겪다가, 마지막에 소설을 읽는 남자를 보게 돼요. 그리고 그에게 같이 바다에 가서 녹색광선을 보자고 제안하죠. 둘은 바다로 가고, 수평선에서 녹색광선을 보게 돼요.”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박소정 대표는 20대 시절,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고 했다. 출판사를 만들고자 했을 때,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는 좋은 책은 녹색 광선처럼 흔치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흔치 않은 좋은 책을 사람들이 발견하며, 녹색광선을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이란 그 자체로 자기만의 취향을 찾고, 만들고, 지켜나가는 여정이 아닌가 생각했다.

창업을 준비하며 누드크로키를 배우러 다녔어요. 내 안에도 나만의 창작성, 나만의 취향이 있는데 그것들이 너무 굳어간다고 느껴서 풀어주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집 인테리어에 완전 진심이기도 했죠. 이사를 총 세 번 했는데, 인테리어를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시장 가서 자재를 하나하나 다 찾으면서 발품을 엄청 팔고 직접 꾸몄어요. 당시엔 전셋집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 걸 다들 이해할 수 없어 했죠.”

박소정 대표는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데 늘 진심이었다.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며 때로는 자기의 그러한 ‘창조’ 욕구를 억누르는 듯 느끼기도 했지만, 그럴 때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집’을 꾸미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며 살았다. 이제는 비로소 자기의 출판사를 일궈나가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의 취향으로, 자기 세계를 물들이고 있었다.

저는 제 기준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가장 큰 재미를 느껴요. 사무실, , 출판사 이름, 책 하나하나의 디자인 등 발 닿는 모든 것들을 나의 세계로 만드는 게 좋아요.”

삶이란 대개 타인들의 세계를 건너다니는 일이다. 타인들이 만든 것을 소비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우리는 ‘나의 삶’이지만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산다. 그러나 박소정 대표는 한 번 뿐인 삶을 자기의 세계로 물들여가고자 단단히 마음 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은 꼭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자기만의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 사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삶은,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녹색광선의 책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녹색광선의 책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서사형 인간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는 법

출판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아는 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요즘 출판 시장 어렵다, 1인 출판사가 고전이라니 말도 안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렇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했고, 저에게는 책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믿었어요. 세월을 이겨낸 가치가 보장된 고전에서 녹색광선을 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박소정 대표는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고전 문학을 택했다. 그것은 다분히 그의 취향에 따른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그는 자기만의 감각으로 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초기 녹색광선 책의 표지는 박소정 대표가 대부분 직접 그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저는 책이 일종의 사치재라고 생각해요. 돈 보다 책을 읽는 데는 귀중한 시간을 내어야하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사치인 시대니까요. 그래서 그에 걸맞는 장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좋은 디자인을 통해 좋은 물성을 가져야 하고요, 내용도 충분히 오래 두고 볼 만큼 가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고전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그 가치에 의심의 여지가 없죠. 역자님과도 굉장히 많은 토론을 거쳐 최적의 번역본을 만들려고 해요.”

녹색광선의 책은 유독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책이 예쁘다는 이야기가 많다. 아이유, 박정민, 공효진 등 연예인들이 녹색광선의 책을 읽는 모습이 SNS나 방송에 나와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내가 느낀 것은, 그가 책의 한 글자 한 글자 내용에서부터, 책의 질감, 표지 디자인, 역자 선택, 나아가 매번 출간되는 책들 간의 관계와 일관성, 사무실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출판사 성공을 위한 법칙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낄 때 박소정 대표는 대규모 출판사를 만들기 위한 대성공의 길을 의식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저 자기가 믿는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독자들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에 감응하고 있었다. 그는 그냥 출판사 대표라기 보다는,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또 하나의 창작자, 기획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박소정 대표가 지닌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저는 서사적 인간이에요. 제 삶에, 제가 하는 일에 서사를 부여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저는 집도, 사무실도, 출판도 모두 저의 세계로 만드는 게 좋아요.”

서사형 인간은 자기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드는 일에서 행복을 얻는다. 그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씀으로써 행복을 발명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녹색광선을 발명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박소정 대표의 사무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박소정 대표의 사무실 (사진:박소정대표 제공)

마치면서

박소정 대표는 책 출간하는 과정 전체를 페이스북 등 SNS에 공개하기도 한다.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그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는 SNS를 통해 다음 책 출간 기획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도 하고, SNS 친구가 소개해준 작품을 검토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책 출간 전 작가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올리면서, 주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흥미를 이끈다. 실제로 책이 출간되면, 그 과정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호응하여 초기 판매를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그는 자기의 세계를 만들면서도, 그 세계를 타인들에게 진솔하게 소개하며 더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기의 세계를 만들지만, 자기 안에 갇힌 폐쇄적인 세계를 만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여정에 타인들을 초대하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때로 우리는 타인들의 평가를 의식하며, 완성된 것들만을 타인들에게 내보이고 싶을 수도 있다. 때론 진솔하게 삶의 여정을 공개하는 것이 어딘지 두렵거나 부끄러워서 내 안에 꽁꽁 숨긴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세계에 초대하는 타인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더 솔직하고 행복한 여정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진솔한 여정의 산 증인으로 박소정 대표가 있다. 그의 삶을 만나면서, 내가 살아나가야 할 삶의 한 힌트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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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착된 마음'의 정지우입니다. 최근 육아 에세이 <그럼에도 육아>를 출간하였다는 소식 전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아이와 함께하는 작고 사소한 날들이 나를 살린다”

어느 젊은 인문학 작가가 말하는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지성과 감성을 토대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독보적 장르를 구축한 정지우 작가가 신간 에세이 《그럼에도 육아》를 선보인다. 저자의 매일경제 칼럼 ‘그럼에도 육아’는 특히 수많은 맘카페를 뜨겁게 달구며 SNS에서 공감 육아 칼럼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화제의 칼럼을 다듬어 수록한 것은 물론, 저자가 아이와 함께하는 수년간 써온 개인적 기록들을 더해 엮었다.《그럼에도 육아》는 아이 낳기를 사실상 권하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나아가 그렇게 나를 덜어냄으로써 나를 채우고 살릴 수 있었던 나날들에 대한 육아 에세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게 된 비가역적인 순간”(25쪽)을 맞닥뜨린 이후 삶의 변화와 현실 육아의 고충, 그리고 아이와 함께 뛰놀고 대화하고 교감하는 일상 속에서 배운 인생 철학과 가치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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