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된 마음

김성신의 이기고 싶은 마음_밀착된 마음_정지우

2023.05.17 | 조회 2.1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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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작가로 살아오면서 몇 번인가 김성신 평론가를 마주칠 일들이 있었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책을 소개하던 한 방송에서였는데, 나로서는 거의 첫 TV 출연이기도 해서 무척 긴장했던 터였다. 하지만 긴장이 무색하게도, 그는 진행자로서 당시 나의 책인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를 매우 근사하게 소개해주었고, 내가 이야기할 때도 연신 귀를 기울이며 좋은 말들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무척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우연히 뜻밖의 기회로 그를 만날 일이 생겼다.

그 기회는 내가 변호사가 된 이후 법무부에 일하면서 찾아왔다. 우연히 내가 맡은 일의 T/F팀에 김성신 평론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만난 뒤 어느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올해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20년째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무척 놀라워서, 어떻게 20년이나 한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하고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김성신 평론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특이한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출판평론가라는 직업을 처음 들어볼 것이다. 혹은 사람에 따라서는 약간 수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출판평론가라는 직업이 정말로 존재하나요? 라고 의구심을 품으면서 말이다. 나도 어쩌면 그래서 더 그의 삶이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교사, 디자이너, 의사, IT 개발자 등 들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닌, 마치 사회의 틈새를 뚫고 나온 듯한 어떤 그 직업의 이름을 20년 넘게 이어온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러한 직업 생성의 현실적인 면도 궁금했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직업을 집요하게 지켜온 그 마음도 궁금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전하며, 그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나는 아마도 인터뷰를 수락하는 말 중 가장 멋진 말인 것 같은, 그 겸손에 잠시 탄복했다.

 

김성신 평론가는 '출판 평론가'라는 보기 드문 직업을 20년 넘게 이어왔다.
김성신 평론가는 '출판 평론가'라는 보기 드문 직업을 20년 넘게 이어왔다.

 

이기고 싶은 마음

 

이기고 싶어서 그랬어요.”

김성신 평론가는 출판 평론가로서의 삶을 집요하게 추구한 것을 한 마디로, 이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는 약간의 맥락이 더 필요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혼자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정처 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뉴욕의 한 헌책방에 이르렀다. 그리고 찬찬히 책방을 둘러본 뒤, 책방을 나오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출판계 쪽으로 가야겠다고 말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출판사 취업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마치 야구장에서 어느 날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아마 그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성신 평론가도 하루키처럼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삶도 단 하나의 이유만 있지는 않다. 모르면 몰라도, 하루키의 야구장에서처럼 김성신의 그 헌책방이 그에게 무언가 말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와서 보니, 그곳은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이었다고 한다(나는 그전에만 해도 이 서점이 ‘파리’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청춘의, 어떤 무언의 확신을 가지고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다소 실망한 면이 있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일종의 지식산업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런 면을 느끼기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출판사의 일이라는 게 그저 유명 저자의 눈치나 보면서 교정·교열 보는 정도에 그치는 작은 산업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뭐랄까, 나름 우리도 책도 많이 읽고 출판이라는 문화 산업을 이끄는 사람들인데, 지식인들을 보조하는 2류 같이 느껴졌달까요.”

청년 시절, 우리는 흔히 세상을 바꾸거나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역할을 꿈꾼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막상 도래한 현실 앞에서 실망하곤 한다. 정작 취업을 하고 보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주로 회사 차원에서 시키는 일들만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 밤새며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러다 결국 먹고 사는 일이 다 똑같다며, 의미나 보람 같은 건 포기하고 체념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때 저는 이대로 계속 출판사에 다니면서, 일종의 출판 기능공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출판을 포기할 것인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른 길은 둘 다 아니었어요. 출판이라는 이 중요하고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황을 극복할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게 출판평론가라는 일이었어요.”

그는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당시 주류였던 정치인이나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일종의 2류 취급을 받았던 ‘출판인’의 투쟁기인 셈이다. 그는 출판사를 나온 뒤, 출판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자기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의 투쟁은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출판이라는 비주류 산업이 한 사회에 당당한 문화 산업으로 발 딛게 하고자 애쓰는 여정이기도 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성신 평론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성신 평론가

 

비주류로 살아가는 마음

 

김성신 평론가는 평생 자신이 비주류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출판이라는 산업 자체, 그중에서도 ‘출판평론가’는 일종의 비주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반도체 같은 대규모 산업도 아니고, 교수나 법조인, 정치인처럼 사회의 주류 세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이 비주류로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한 그간의 투쟁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비주류로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주류들이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헐어서 내 것으로 가지고 갈지가 늘 중요했어요. 그를 위해서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공격성이 가능하려면, 그만큼의 명분이 필요하기도 해요. 또한 무엇보다 연대가 필요하죠. 저는 장동석, 홍순철 등 다른 출판평론가들과도 연대를 만들고 이어오기 위해 노력했어요. 서로 방송이나 강의, 기고 등 여러 자리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우리의 자리를 사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요즘에도 출판 비평을 하는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개인의 삶사회적 역할의 일치였다. 보통 개인적 삶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사회적으로 어떤 ‘좋은 역할’이랄 것을 잃는다. 자기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할수록 공동체에는 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치점을 찾아낸 것처럼 보였다. 개인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동시에 출판 산업이라는 비주류 영역이 이 사회에 확대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출판평론가’들의 연대와 육성에까지 이어졌다.

그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책은 획일화된 사회, 주류가 점령한 문화에서 비주류가 어떻게 사회와 문화의 부조리를 뚫고서 그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러한 ‘비주류의 확장’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고, 사회와 문화에 새로움을 공급하면서, 사회와 문화가 낡고 병든 독점적 세계관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준다. 김성신 평론가는 평생의 삶으로 그런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한테 출판평론가란, 출판인이자 지식인인 무엇이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출판인은 좋은 사람이에요.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 무척 매력적인 직업이었죠. 반면, 저에게 지식인이란 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진 어떤 존재를 의미했어요. 저는 ‘출판평론가’가 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김성신 평론가는 출판평론가로서 방송, 지면 등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아왔을 뿐만 아니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의 부회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일은 모두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면서 동시에 비평계, 출판계, 문화산업계 전반의 위상을 높이고 확장시켜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김성신 평론가가 추천한 책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표지
김성신 평론가가 추천한 책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표지

 

죽을 때까지 진화하는 마음

 

저에게는 스스로 관뚜껑에 못 박은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김성신 평론가는 지금도 비주류 행진을 지속 중이다. 그는 지난 20년 넘게 출판평론가로 살아왔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영토를 만들어갈 것이라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앞으로 출판산업이 단순히 책을 만들고 출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합적인 지식인 매지니먼트 형태의 기업으로 진화할 거라 믿는다고 했다. 음반 회사들이 연예인 기획사가 된 것처럼, 출판사들도 저자들을 매니지먼트하는 회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에서 겸임교수직도 겸하고 있는 그는 제자들의 육성에 마음을 쏟고 있다고도 했다.

요즘에는 제가 선생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요.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데서 큰 보람을 느껴요. 사실, 이런 일은 사익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내 편을 계속 만들면서 우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거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역시 비주류에는 명분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출판 산업을 이끌어갈 제자들을 육성하는 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김성신 평론가의 격려와 지지로 박소진, 김정빈 등 20대 젊은 비평가들은 ‘956 비평연대(9N비평연대)를 이끌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이처럼 젊은 비평가들을 육성하면서 출판 비평이라는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대단히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란, 사람들이 그만큼 지성과 멀어지면서 다양한 비판의식들이 사그라들고, 문화의 풍요로움이 일부 꺼져가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명의 출판인으로서 그런 문화 수호확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실, 저는 결혼은 했지만 자식을 가지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은 듯한 그런 묘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더 자식뻘 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제가 가진 것들을 끊임없이 나눠주는 데 더 열심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평론가 부부로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젊은 시절, 국문학 연구자로서 재능을 가진 아내가 그 일을 계속하길 바랐다고 한다(김성신 평론가의 아내는 국문학 연구자인 강경희 문학평론가이다). 그밖에 여러 이유에서 자식은 가지지 않기로 했지만, 그에게는 묘한 부채감이 남았다. 그의 제자 기르기는 그런 마음의 부채를 갚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삶의 개인성사회성이 만난다고 느꼈다. 개인적 삶의 이유가 개인적인 삶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명분 있는활동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르면 몰라도, 이런 삶은 그가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반성의식이 곧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일치하는 존재를 만든 것이다.

요즘 김성신 평론가는 젊은 비평가 육성에 열심이다
요즘 김성신 평론가는 젊은 비평가 육성에 열심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성신 평론가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늦은 밤이었다. 그는 평생 아내와 서로 동지이자, 서로의 후원자, 지지자로서 살아왔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출판평론가로 살아온 여정도 끊임없이 동료들과 서로 지지하며 함께 비주류 영토를 확장해왔던 과정이라 말했다. 최근에는 제자들을 육성하며 또 다른 연대를 이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투쟁이라고 한 것, 싸워서 이기고자 했다는 것은 곧 자기의 사람들을,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의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그런 붙잡음이 얼마나 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시대, 서로가 붙잡기 보다는 손절하기 바쁜 시대에 그가 살아가는 여정이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된다고 느꼈다. 우리가 투쟁을 해야 한다면 바로 그런 투쟁을 해야 한다고, 우리가 이겨야 한다면 바로 그런 승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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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평론가와 젊은 비평가의 이야기

[프리칼럼] 956 비평 연대 이야기 ☞ https://checkilout.com/?p=12515

[출판 숏평] 짧고 강한, 서평연대 ☞ https://naver.me/FNl8eQQk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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