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자유의 시간

그는 왜 '연쇄 사인마'가 되었을까_사유와 자유의 시간_강동훈

김영하 작가의 게릴라 사인회를 마치고

2024.05.09 | 조회 1K |
1
|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익숙한 적막이다. 서점의 하루는 80%의 적막과 10%의 택배 정리와 10%의 손님 방문으로 채워진다. 80%의 적막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해 잔잔한 음악을 틀거나, 스트레칭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괜한 혼잣말을 반복하지만, 오늘따라 익숙했던 적막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LED 전구의 백색소음도, 제빙기의 얼음 떨어지는 소리도,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크레타가 문을 연 뒤로 가장 분주했던 하루가 끝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게릴라 사인회가 크레타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여행의 이유의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으로 전국의 동네서점을 돌면서 사인회를 진행했는데, 부산은 크레타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오후 1시에 시작이었지만 게릴라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아침 8시에 공지를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90명의 참가자가 다녀갔다. 크레타가 오픈한 뒤로 크레타가 가장 많은 대중에게 소개된 날이며, 가장 많은 책을 팔았으며, 가장 반짝였던 하루였다.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오전 10시부터 소식을 듣자마자 크레타를 찾은 이를 시작으로, 대구, 창원, 울산 같은 시외에서 오거나, 잠시 시간 연차를 쓰고 부랴부랴 나온 이도 있었으며, 부산여행 중 소식을 듣고 여행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온 사람도 있었다. 강연이 아닌 사인회라는 흔치 않은 기회 때문인지, 사인회가 시작 30분 전부터 건물 계단과 복도, 심지어 골목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어쩌면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보다 더 긴장되고 설레는 기분으로 이곳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손때 묻은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는 이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는 시간 맞춰 서점에 도착했다. 참가자는 큰 박수와 환호로 맞이했고, 그는 웃으며 그들과 인사했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줄 때문인지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서점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잠시 내부를 둘러본 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텝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하며 사인회를 위해 마련해둔 자리로 향했다. 때마침 아기띠를 두르고 갓난아이와 함께 사인회를 찾은 이가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기 위해 나가려는 순간, 그는 그녀를 불러 세운 뒤 가장 먼저 사인을 해주었다.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그는 왜 '동네서점 연쇄 사인마'가 되었을까

사인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작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모든 독자와 눈을 맞추고 스몰 토크를 나누며 찰나의 순간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오고 갔지만, 다행히도 얼굴 한 명 붉히는 이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낯선 골목에서 헤매지 않도록 길 안내를 위한 스텝들이 곳곳에 있었고, 오늘을 기념할만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으며,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잠시 일어나셨던 것이 전부인 작가님의 애씀이 모두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그가 굳이 ‘동네서점 연쇄 사인마’가 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서점과 독자 입장에서는 감사하지만, 홀로 전국을 돌며 중노동과 버금가는 사인을 하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히 상상해보자면 새로 나온 책을 홍보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동네서점이라는 독서문화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자기만의 취향과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서점의 매력을 더 많은 독자에게 알리고 싶음과, 4월 한 달 만큼은 월세 부담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길 바라는 선한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이런 마음을 받기까지 내가 한 노력이라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우연히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고, 나는 그저 ‘고맙습니다.’라는 단어만 키보드로 열심히 눌렀을 뿐이다. 담당자의 머릿속에 <크레타>라는 서점이 떠오를 수 있게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애정을 듬뿍 쏟은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엔, 과해도 너무 과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날짜와 시간을 전달받은 뒤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작가님께서 크레타에 주신 선물을 손님들에게 최대한 그대로 돌려드리자.” 거저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게릴라 사인회의 '숨겨진 미션'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2권 이상 구매 시 10% 할인을 해드렸다. 1인당 최대 2권까지 사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손님 대부분이 2권 이상 구매하시면서 혜택을 받아가셨다.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최대한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으며, 마음의 선물로 즉석 인화 사진을 한 장씩 찍어 무료로 선물했다. 사진이 인화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의 특별한 순간을 조금 더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은 손님들은 고마움을 전하며 서점을 떠났다. 나의 이익을 조금 줄이자 손님들의 만족감이 높아졌다.

이렇게 한 이유는 명확했다. 오늘 크레타를 찾은 사람은 김영하 작가의 팬이지 크레타의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인회의 숨겨진 미션이 김영하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크레타를 찾아주신 분 중 몇 명을 크레타의 고객으로 전환하는가?’라고 생각했다.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잃는 것처럼, 오늘의 성공적인 하루에 취해서는, 특별할 것 없는 앞으로의 일상을 건강하게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에게 줄 수 있는 크레타만의 특별함을 고민했고, 그 방법으로 즉석 인화 사진을 선택했다.

사실, 필름 값이 이렇게 많이 올랐을지 몰랐다. 자연스레 수익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하루를 기록하면서 무엇도 사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이라는 아날로그 감성과도 어울리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포기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올라오는 참가자분들의 후기에서, 깜짝 선물로 받은 즉석 사진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분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크레타에서 뵐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김영하 작가 게릴라 사인회 (제공 : 크레타)

독서문화의 최전선에는 작가와 동네서점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대구를 시작으로 진주, 부산, 천안까지 총 5곳의 동네서점을 돌며 연쇄 사인마가 되었다. 다양한 동네서점의 SNS 계정의 게시물을 보면 하루에 다섯 권만 팔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흔하다. 이는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날은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90명의 방문객이 174권의 책을 구매했고 25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한 참가자는 오늘 크레타에 유니콘이 찾아왔어.”라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크레타가 하루 최고 매출을 찍은 날이 되었던 것처럼, 다른 서점도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고 사지 않는 시대에 서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독서라는 문화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중 가장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작가와 책방지기이지 않을까. 경계에 서 있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작은 동네서점의 부름이라면 흔쾌히 응한다 생각한다. 지금처럼 책으로 연결되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다 보면, 읽던 사람들의 즐거움을 더하고, 읽지 않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믿는다. 다행히도 지난 1년은 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시간이었다.


*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세상의 모든 문화'는 별도의 정해진 구독료 없이 자율 구독료로 운영됩니다. 혹시 오늘 받은 뉴스레터가 유익했다면, 아래 '댓글 보러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내주신 구독료는 뉴스레터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운영하는 데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세상의 모든 문화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호잇

    0
    7 months 전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한국에도 멋진 서점이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ㄴ 답글
© 2024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