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최인아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책방을 연 소회에 대해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들 정신없는 오후 시간에 혼자 카페에 나가서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죠. 이렇게 평일 오후에도 푸른 하늘이 있었구나, 그동안 나는 하늘 안 보고 뭐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 ‘아!’ 하는 탄식을 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도 그랬다.
최인아 대표를 처음 만났던 건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의 북토크를 최인아 책방에서 하게 되면서였다. 그 이전에도 최인아 책방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때즘이었을 것이다. 선릉역 인근에 아주 아늑하고 매력적인 책방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았고,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삶이 정신없이 바빠지고, 거주지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서울로 옮겨지면서 마음 한 구석에 커튼이 드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최인아 책방으로부터 북토크 요청을 받았다.
북토크는 최인아 대표가 직접 진행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돌이켜 보면, 여러 책방에서 북토크를 했지만 이렇게 책방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행을 하고, 사람들과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좌중의 사랑을 이끌어내어 나한테 공기로 ‘토스’하는 듯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직접 북토크 대상이 되는 책을 진심으로 읽고, ‘진짜 질문’을 내게 전해주는데, 내게는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대개는 작가한테 그냥 진행을 맡기거나, 출판사에서 진행자를 섭외하는 식이지, 책방 대표가 그렇게 꼼꼼하게 진심으로 시간에 임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한 번 감동을 한 뒤로, 몇 번인가 더 최인아 책방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북토크나 강연,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어느덧 그곳은 내게 어느 시절 지구에서 가장 익숙한 책방 같은 것이 되었다. 그밖에도 부지런히 직장도 다니고 육아도 하며 살아가는 날들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이면, 그 날 들었던 최인아 대표의 말이 종종 생각났다. 회사 바깥에 테라스와 하늘이 있었다는 말. 그 말이 불러 일으키는 하늘의 색깔과 테라스가 있는 세계를 상상했다.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쩐지 그런 상상에 위안을 받았다.
불쑥 최인아 대표에게 “혹시 인터뷰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던 것도 어쩌면 그 상상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상상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던 저녁, 내게 슬그머니 떠올랐던 이미지, 그 이미지를 자아내던 그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있던 책방, 그 모든 것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좋아요, 작가님이 하실 인터뷰가 어떨지 궁금하네요.”
쌓은 만큼 비어갔던 어느 마음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최인아 대표한테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왜 책방을 열게 되었냐고 말이다.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최초 여자 부사장까지 올랐던,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커리어우먼이었던 삶을 버리고, 왜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차리게 되었냐고 말이다. 최인아 대표는 이건 아주 긴 이야기일 것 같다면서, 찬찬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변화라는 건 밖에서 볼 때는 항상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제 안에도 평생 동안 책방을 향한 점들이 조금씩 찍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광고회사를 다니는 동안의 여러 방황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한 회사에서 29년을 일하면서 부사장까지 오르고, 사장 승진도 앞두고 있던 자리까지 갔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 올곧은 열정을 떠올릴 법하다. 다들 이직이니 퇴사니 고민하지만, 저 사람 만큼은 일찍부터 정확하게 자기 길을 알고 치열하게도 잘 살아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최인아 대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광고를 두고 방황한 세월이 길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광고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내 생각을 쓰거나 말하는 일을 할 것 같은 예감, 이를테면, 작가나 기자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러나 그게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죠. 그래서였는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한 동안은 주경야독으로, 밤에 언론고시 공부를 해서 기자 시험을 치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나 막상 일을 해나가다보니, 그는 그 나름의 재미를 알아가기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컨셉을 만들어내고, 능력을 인정받고, 자신이 광고를 한 제품이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올 때면, 그도 성취감과 기쁨을 느꼈다. 일에는 그 나름의 작동 방식이랄 게 있다. 애쓰고 성취하고 잘되면서 얻는 자연스러운 기쁨, 마치 선사시대 때부터 내려져왔을, 땅에 심은 씨앗이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때 얻는 그런 기쁨이 인간의 깊은 마음에는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도 일에서 바로 그런 기쁨을 얻었고, 일하는 존재로 한 시절을 애쓰며 살아냈다.
“하지만, 회사에 있던 29년의 절반 정도는 마음에 사표를 품고 살았어요. 항상 의문은 내가 하는 일의 ‘의미’였어요. 나는 의미를 찾는 인간인데, 이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일에 있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고민을 놓을 수 없었어요. 이를테면, 작가가 책을 쓴다면, 저마다 의미랄 게 있잖아요. 사회 비판이든, 좋은 삶에 대한 전파든 말이죠. 그런데 작가가 책을 쓰는 게 오로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 그러니까 많이 파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의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의 목적은 어떻게 보면, 오로지 많이 파는 것이었거든요.”
물론, 세상에 의미가 없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최인아 대표 또한 광고, 즉 브랜딩이나 마케팅 등이 가지는 여러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그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 혹은 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세상 모든 일은 가치 있겠지만, 사람마다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저마다에게는 ‘더’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다. 최인아 대표에게 그것은 광고가 아닌 다른 것에 있었던 것 같았다.
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마음
최인아 대표는 책방을 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은 뭐랄까, 나로서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개 책방을 하면서 얻는 기쁨을 물으면, 오랜 책에 대한 사랑,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즐거움, 고요하게 보내는 오후 시간에 대해 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최인아 대표는 '타인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 책방을 들어올 때의 사람들 얼굴과 나갈 때의 얼굴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책방에 들어와 몇 시간쯤 머물다 나가는 사람이나, 북토크에 참여한 후에 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달라졌던 거죠. 때론 한결 더 평온해 보이기도 하고, 찡그렸던 얼굴이 펴지기도 하고, 기쁨에 발갛게 상기되어 있기도 했어요. 그 때서야, 책방을 하는 진짜 의미를 알게 됐죠."
최인아 대표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동업자 역시 그래서 책방을 여는 일은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았던 건 아니다. 그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느 순간 마치 신의 목소리를 듣듯이, 책방의 '의미'라는 걸 알게 된 듯했다.
"저희 책방에서는 책 만들기 클래스를 열어요. 처음 와서 처음 와서 글을 쓰고 정리하고, 책을 만들고 나면, 책방에 진열을 해드리고, 출간 기념회도 열어드리죠. 그런데 놀랐던 게, 출간 기념회를 열면 말이죠, 가족들과 친구들이 오는데 다들 그렇게 우세요.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게 무엇인지, 그렇게 우시더라고요. 그때도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삶의 의미든, 일의 의미든 그것은 미리 주어져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의 의미는 그것을 만나기 전까지는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없다. 나는 최인아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워 방황했지만, 나중에는 그 나름의 의미는 조금씩 찾았다고 했다. 이를테면, 공동체나 기업체에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의 가치라든지, 나중에 임원이 되었을 때 후배들을 응원하고 도우면서 전에 없던 의미를 느꼈다고 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에게 쓰이면서 기쁨을 느낀 경험이 책방으로 이어졌고, 책방에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더 의미에 다가갔다.
"예전에는 내가 잘하고, 내가 칭찬받고, 내가 인정받는 데서 삶의 이유를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철이 들어서인지, 이제는 내가 한 어떤 일로 인해 사람들이 바뀌는 얼굴 표정을 보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라는 걸 느껴요. 제가 책방 하기를 잘했다는 걸 확신하는 순간이에요."
쓰임받고자 애쓰는 마음
의미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해보기 전에는 거기 의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없다. 가보기 전에는 모르는 여행지의 우연한 풍경이나 인연처럼, 삶이나 일의 의미도 그렇게 찾아오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책방이 상호명은 '최인아 책방'이지만 법인명은 '더 보이스'에요. 보이스(voice)에서 파생되어 나온 단어에 보케이션(vocation)이 있잖아요. 직업이라는 뜻인데, 신이 얘야, 너는 이렇게 쓰이거라, 라고 부르는 게 직업이라는 거죠. 저는 그 생각을 하면서 법인명을 지었어요. 내가 온전히 쓰이고 싶다는 마음에서요."
최인아 대표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자기가 못하는 일에는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자 애쓰며 살아왔다고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게 그와 관련된 재능이 조금은 주어졌다는 뜻이고, 결국 그로 인해 쓰임받고자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많은 청춘들이 인생의 기로 앞에서 '좋아하는 것'을 해야하나요, '잘하는 것'을 해야하나요 라고 묻는다. 최인아 대표는 이에 대해 하나의 대답을 내놓은 듯 느껴졌다.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좋아했어요." 나는 그게 단순히 취향의 문제라기 보다는,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의무감과 소명의식을 느끼고 이어가는 일 자체를 좋아하고자 애쓰는 것, 그것은 태도의 영역이다.
"책방을 하면서 힘든 순간들도 많았어요. 때로는 퇴직 이후에 평안하게 살 수도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사업체를 차려서 이런 고생일 짊어지나, 하는 생각들을 하기도 했죠. 특히 초창기엔 밤 늦게, 또 새벽까지 일할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그렇게 얼굴이 달라지는 걸 보는 순간이면, 역시 책방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결국 다 그렇게 '애쓰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싶다. 애쓰다 보면, 의미를 만난다. 의미를 만나고자 계속 자신의 쓰임을 따라가면, 언젠가 의미로 충만해지는 때가 온다. 최인아의 마음 중심에는, 쓰임받고자 애쓰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지금에 그를 이르게 했고, 또 계속하여 그를 이끌고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이어가는 여정
최인아 대표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두었다고 했다. “때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하면서 평생 애쓰다 가다.” 그는 ‘애씀’을 유독 강조했다. 자신의 평생은 애썼던 삶이었고,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 같았다. 그 애씀이란,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만은 아니고 하늘에 날개를 두고 내려온 천사가 지상에서 자신의 쓰임을 찾듯, 그렇게 자기의 자리를 찾고,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아가고, 나아가 그로 인해 타인들의 얼굴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배워가면서 결국 삶의 의미를 얻는 그런 여정을 함축하는 단어처럼 들린다.
최근 최인아 대표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쩌면 그의 삶에 참으로 어울리는 책 제목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저 세상에 맞추기만 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 애쓰고,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나의 쓰임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알아가고자 애쓰다 보면, 세상에 나를 원하는 ‘지점’이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의 ‘세상’이란 꼭 ‘세상 전체’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때론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 오는 손님 한 명이 세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나의 아이디어에 탄복하는 거래처 사람이 세상일 수도 있다. 때론 어느 날 나의 책 한 권을 집어든 그 누군가의 마음이 곧 세상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 자리마다 존재하고 살아있는 것이다. 그 지점마다 삶의 의미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최인아 대표에게 들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파란 하늘이 있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라는 자리. 사실, 그 자리는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며 지나치지만 언제나 거기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장막을 걷어내듯 그 자리를 만나게 되는 날이 누구에게나 올지도 모른다. 단, 애쓰는 마음을 유지한다면 말이다. 삶의 의미, 나의 자리, 내 삶의 쓰임을 알고자 애쓰는 사람에게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의 자리를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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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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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k
최인아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에 가게 되면 책방에서 나올 때 제 표정이 궁금해질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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