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행복해_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_선샤인

2024.05.17 | 조회 1.1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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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퇴근하면 침대가 나를 끌어당긴다.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흘러서 잘 시간이다. 퇴근 후 침대는 시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그렇게 블랙홀에 빠져들어 다음날 아침이 되는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까스로 블랙홀을 탈출해서 빛을 향해 떠나는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무엇인가를 그리자고 거창하게 마음을 먹기보다는 내 몸을 거실로 옮기자고 생각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누워 있는 무거운 나를 겨우 거실로 끄집어낸다. 일분짜리 쇼츠를 끄고, 대신 한 시간 동안 좋아하는 음악들이 나오는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아이패드를 켠다. 오늘은 이걸 그려봐야겠다고 간단히 생각한다. 애플 펜슬을 움켜쥐고 그리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새 몰입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세상에 온전히 그림을 그리는 나만 존재한다. 그러다가, 다른 곳에도 신경이 쓰일 때쯤, 귓가에 마지막 곡이 들린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침내 침대 블랙홀을 빠져 나와서 이모티콘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침대 블랙홀을 빠져 나와서 이모티콘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몰입의 순간이 행복했다. ‘그림 그리는 나’만 존재하는 시간이 좋았다.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몰입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눈곱만큼의 작은 성장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시간은 어떻게 성장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돌이켜보니, 비전공자인 내가 이모티콘 작가가 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은 대개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그릴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는, 그리기 자체에 몰입한 시간이다. 세 번째는,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시간을 반복했던 것 같다. ‘이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데, 더 잘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벽에 부딪쳐서, 계속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그려내지 못하고, 지난하게 그리기 자체만 반복하는 시간도 많았다.

 

한 세트의 이모티콘을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다시 그렸는지 모른다. 예를 들면, ‘축하해’ 장면에서 캐릭터가 들고 있는 꽃다발을 2주 동안 들여다보며 고쳤다. 색깔도 바꾸고, 꽃다발의 모양도 여러 번 바꿨다. 작은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이모티콘 캐릭터가 들고 있는 그 조그마한 꽃다발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리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꽃다발만 다시 그린 주말도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고 사소한 일이며 시간낭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작은 디테일을 잘 살리는 것도 소중한 일이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꽃다발을 다시 그리다가, 어느 순간, '이게 바로 이 캐릭터에 어울리는 예쁜 꽃다발이다!' 생각이 들면,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찾던 것을 비로소 찾았기 때문인지, 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반복적인 일상에 젖어버린 회사원이 ‘새로운 발견’을 해서인지, 지극히 정성 들여 무엇인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되찾아서인지, 눈물이 흐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그거 같은데' 라는 평을 들을 만큼,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여러 번 고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노력이 지극해질 때쯤, 드디어 승인을 받고 3개의 이모티콘을 출시할 수 있었다.


출시된 이모티콘들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모티콘으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으로 출시한 '뽀심이'는 내 여동생이 모델이다. 우리는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여느 자매처럼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내 동생은 이마가 좁고 볼이 통통하며 눈이 동그랗고 귀가 크다. 원래의 동생 캐릭터에 귀여움을 나름대로 극대화 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해서 뽀심이가 탄생했다. 동생은 막내의 입장에서 많이 쓰고 싶은 말들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동생의 도움을 받아 귀여운 이모티콘이 탄생했다.

사랑하는 내 동생을 모델로 그린 뽀심이 이모티콘
사랑하는 내 동생을 모델로 그린 뽀심이 이모티콘
사랑스럽고 귀여운 남자아이 뽀동이 이모티콘
사랑스럽고 귀여운 남자아이 뽀동이 이모티콘

 그 다음에 만들어낸 '뽀여사'는 우리 엄마를 모델로 그렸다. 여러 헤어스타일과 다양한 얼굴을 그렸고, 엄마가 선택한 캐릭터로 이모티콘을 그렸다. 뽀여사를 그리며, 항상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가족을 보살펴왔던 엄마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고모부, 엄마, 아빠, 나, 동생, 사촌 동생들까지 가지 많고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집에서, 모두가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엄마의 끝없는 희생과 사랑 덕분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마음을 이모티콘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엄마의 얼굴을 닮은, 엄마가 자주 입는 줄무늬 옷을 입은 이모티콘을 그렸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들을 24개의 귀여운 움직임으로 만들었다. 우리 엄마를 모델로 작업한 뽀여사가 이모티콘 스토어에 출시되자 동생과 말했다. “완전 우리 엄마랑 똑같이 생겼네!” 엄마가 매일 뽀여사 이모티콘을 내게 보내실 때, 엄마와 나와 가족들이 여전히 함께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정말 감사한 순간이다. 친구들 어머님들이 이모티콘을 잘 쓰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내가 모르는 분들도 뽀여사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감사하고, 뭉클하다.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더 열심히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그린 뽀여사 이모티콘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그린 뽀여사 이모티콘

하지만, 3개의 이모티콘을 출시했다도 해도 나는 여전히 무명 작가에 가깝다. 누적된 카카오 이모티콘 수는 60만개에 다다른다고 한다.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같다. 나는 그 중 3개의 별을 만든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복한 이유는 그 별들이 간직한 소중한 이야기를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이모티콘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서, 대화 속에서 반짝이겠다는 생각은 또 다시 내게 돌아와 작은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 코너명: 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마음을 꺼냈습니다. 다시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가,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 직장인이 3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그리고 출시한 도전기를 씁니다.

 

* 글쓴이: 선샤인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행복해하는 직장인입니다. 이제는 글을 함께 써보려고 합니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글을 씁니다. 글이 글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나만의 동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런치 - https://brunch.co.kr/@sun3hine-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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