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_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_선샤인

2024.08.30 | 조회 1.1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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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어린 시절,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아빠가 자주 하신 말씀이 있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라. 들러리로 살지 마라”는 말이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아빠는 삼십 대 후반의 나이였다. 오늘치 학습지를 다 풀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이랑 떡꼬치를 사먹는 게 제일 즐거웠던 당시의 내게 그 말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들어서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아빠 나이와 가까워지니, 아빠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라는 아빠의 말씀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이 아닌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너다운 삶을 살아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은 결국 내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은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불행하게도, 나는 과거의 내가 내 시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를 위한 선택이 뭔지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경제적으로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막연하게 "안정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적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서 버텨내고, 휴학 없이 졸업 후, 장학금와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공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바로 취업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20대에 해치우듯이 끝냈다. “해내야지 뭐 어쩌겠어. 참자” 가 내 삶의 기조였고,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살아온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지쳐 있었다.

나를 회복하기 위해, 푹 쉬기도 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해보고 나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전 연재에 상술했듯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이모티콘을 3개 출시하고, 또 그새 지쳐서 그림을 안 그렸다. 메이크업 및 속눈썹 입문자 과정을 수강하고, 향수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탁구 등 새로운 것들을 해보았다. 심리 검사와 상담을 받으며 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글쓰기를 배우며 내 삶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그리고 싶었던 이모티콘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느끼고, 내 시간의 일부는 이모티콘을 그리는 데 고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시간은 또 관성에 따라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7시간은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전 연재 글에 일주일에 7시간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마음 속으로 독자님들과 약속했다.)

하루에 한 시간은 그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예를 들어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회사와 관련해서 할 일이 있는 날도 있었다. 가끔,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날들은 그냥 쉬었다. 밤 11시쯤 집에 돌아와서, 잠이 드는 1시까지, 2시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그림을 그릴 힘이 없어서,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았다. 매일 그릴 수 없었고, 일주일에 7시간을 못 그리는 날들도 있었다. 나는 좀 더 타협하여, 관대한 규칙을 적용했다. 4주에 28시간 정도로 타협했다. 이번주에 약속이나 일들이 많아서 4시간 밖에 못 그렸다면, 다음 주에 10시간을 그리는 식으로 유연한 기준으로 이모티콘을 그렸다. 그렇게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약 50시간 동안 이모티콘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2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이모티콘 한 세트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작업을 완료한 것 만으로도 기뻤다. 나는 내 시간의 일부를 내 마음대로 썼구나. 나는 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어떤 결과든지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승인이 되면 더 좋겠지만) 오랜만에 이모티콘을 완성하는 데에는 2년 동안 마음만 먹고, 생각나는 대로 가끔 그렸던 측정하지 않았던 시간과 최근의 명확한 50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명확한 시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쏟고 나니 “완료” 자체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이게 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 시간에 내가 선택한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래서 어떠한 후회도 남기지 않는 삶. 나는 바로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이다. 최선의 기준도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삶. 스스로를 궁지에 몰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고 내 상태를 확인하면서 노력의 기준을 정하는 삶. 이모티콘을 그리면서 나는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시간과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고전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어린 왕자에게는 소중하게 돌보던 장미꽃이 있었고, 우연히 만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쓴 그 시간 때문이란다."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너는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꽃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삶은 소중하다
당신의 삶은 소중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내 현재의 삶이 됐고, 그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나는 내 삶에 책임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적응하면서 견뎌낸 과거의 내 삶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많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는 그때의 삶을 살아낸 것 뿐이다. 다만, 내 삶이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쩌다 난 이렇게 된건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무작정 도망치기 보다는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나름대로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최선일 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기 위한, 과거의 삶과의 이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스스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면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나아가면 될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던 암흑같은 마음을 버리고, 그 시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어쩌면 어둠이 있고 밝음이 있듯이,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을 발판으로 삼아 지금이라도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살아가다 보면, 참고 견뎌낼 일이 여전히 반복되겠지만 "내가 행복한 순간, 내가 편안한 순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삶에서 펼쳐질 많은 선택들에 있어 내 행복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추고,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게 내가 찾은 "삶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 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 삶의 여정일 것이다.

 

*코너명: 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마음을 꺼냈습니다. 다시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가,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 직장인이 3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그리고 출시했다가,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다시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글쓴이: 선샤인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행복해하는 직장인입니다. 이제는 글을 함께 써보려고 합니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글을 씁니다. 글이 글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나만의 동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런치 - https://brunch.co.kr/@sun3hine-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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