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책방을 열었다. 나만의 글쓰기 작업실 및 사람들과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책방이다. 책방 이름은 ‘랄랄라하우스’. 김영하 소설가의 에세이 『랄랄라하우스』라는 제목을 그대로 딴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곳에서 사람들과의 만남과 다양한 소통이 이뤄진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이곳 랄랄라하우스에는 커다란 나만의 의자가 있다. 가구점에서 꽤나 비싸게 주고 산 1인용 쇼파다. 크고 안락하고 푹신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사소한 걱정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다. 의자를 살 때 고민했다. ‘겨우 한 사람 앉을 용도일 뿐인데 너무 비싸지 않은가?’ 라는 생각. 심지어 가구점에는 재고가 없었기 때문에 1달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생전 처음 가져 본 나만의 의자다. 집에 있는 식탁 의자나 아이의 공부방 의자 등은 내 것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의자였기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생겼으니 꼭 사고 싶은 의자를 들여놓고 싶었다. 그 누구의 의자도 아닌 나만의 의자를.
여기 자신만의 의자를 가지고 있는 ‘곰씨’라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 『곰씨의 의자』 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곰씨는 자신의 의자에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시집도 읽는다. 온전히 홀로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어느 날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 토끼, 자유로운 춤을 추는 토끼가 나타났다. 곰씨와 친구가 된 두 토끼는 눈이 맞아 결혼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러다가 토끼 부부는 아이들을 낳았다. 자꾸 자꾸 낳았다. 곰씨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영역은 토끼 아이들에게 내어 주어야 했다. 곰씨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졌다. ‘빼앗긴 내 자리를 지키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의자를 잃어버린 곰씨는 어떻게 했을까.
곰씨의 마음이 백번 공감되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만 또 홀로 있고 싶어한다. 흥겨운 파티도 좋지만 나홀로 차를 마시는 시간도 좋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보금자리를 꾸리고, 아이가 생기고, 정신없이 양가 가족의 중대사를 챙기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은 자연히 줄어든다. 결혼 후 제일 먼저 사라진 건 나의 책상과 의자였다. 아이의 물건으로 집안은 채워졌다. 고요히 나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집안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곰씨와 같은 인물이 타로카드에도 등장한다. 타로카드 번호로는 8번 힘 카드라고 한다. 연약해 보이는 한 여성이 사자를 어루만지고 다루고 있는 그림이다. 정신적인 리더십, 부드러운 집념의 소유자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으며 그림 속 사자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을 정도로 현명하다.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난관이나 위험 등을 잘 이겨내는 인내심의 캐릭터다. 조용하게 일대 일의 소통을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도 잘 해낸다. 참을성있게 혼자서 잘 감내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타로카드 8번 유형의 경우 MBTI성격유형에서 내향인에 가깝다.
『곰씨의 의자』를 읽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내향형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후 사람들과 관계맺거나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쓴다. 반대로 외향형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 내향형과 반대로 혼자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된다.
지금 나의 성격은 외향형에 좀더 가깝다. 혼자 일하기보다는 함께 일할 때 즐거움이 배가된다. 모임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연결짓는다. 관계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맺는다. 보통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향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향형인 사람들도 정적인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수 있다. 외향형과 내향형이 쓰게 되는 글의 스타일이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무 살,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게 된 사건이 하나 있다. 1996년도 10여 명의 멤버들과 러시아 선교여행을 떠났다. 함께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현지에서 공연할 연극도 연습했다. 실제로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나의 역할은 기록자였다. 여행을 하면서 매일 매일의 일정을 상세하게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만난 사람들의 이름, 하는 일, 특징 등을 적어 놓았다. 먹은 음식, 묵었던 숙소의 특징, 거리의 모습, 사람들이 입는 옷, 눈 내린 풍경, 모임에서 했던 일 등을 정리했다. 그 때 2주간의 기록은 이후 작은 소책자로 만들어졌다. 손글씨로 적어 복사를 한 다음 출력물을 만들어 책을 만들어보니 정말 뿌듯했다. 생전 처음 발견한 나의 재능이었다.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꿈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도 들었다.
“소라가 글씨도 예쁘고, 정리도 참 잘했지” 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내면의 의식 흐름이나 감정 등을 쓰는 글은 서툴다. 하지만 외부를 관찰하는 글을 좋아한다. 보이는 것, 느낀 것, 있었던 일, 경험한 것 등을 쓰는 것이 좋다. 비유적이고 어려운 글은 나도 쓸 수 없었다. 특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재미가 있었다. 만났던 사람들, 함께 일했던 사람들, 학교나 아르바이트 하면서 어울렸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면 신이 났다. 35살 무렵부터 시작한 시민기자 활동이 잘 맞았던 이유였나 보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의 삶을 쓰는 것이 재미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내향형인 사람들의 재능만은 아니다. 활동적인 외향형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글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주제의 글을 섭렵할 수 있다. 성격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지표 중 외향과 내향은 일부일 뿐이다. 스스로 외향형인지, 내향형인지 이해하고 나면 어떤 글이 더욱 잘 써지는지 알 수 있다. 글을 쓰는 공간, 환경 등도 사람마다 다르다.
딱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외향형과 내향형의 글쓰기스타일의 차이를 정리해 보면,
1) 외향형
- 사실 그대로 정리하거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글을 좋아한다.
- 묘사나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현상에 집중한다.
- 카페나 도서관, 공원, 역의 대합실, 기차역 등의 환경에서도 글쓰기를 좋아한다.
- 곳곳에 책을 두고, 보이는 대로 읽는 것을 좋아한다
- 혼자 읽거나 쓰는 것보다 함께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 말하거나 쓰고 난 후 생각한다
- 생각을 담아두기보다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글쓰기를 즐긴다
- 깊이보다는 넓이를 추구한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즐긴다.
- 외향형 사람들은 잡지책 읽기를 즐긴다
-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좋아한다.
2) 내향형
- 감정이나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을 좋아한다.
- 조용히 집중하는 환경을 좋아하고, 글을 쓸 때는 혼자서 몰두하는 것을 즐긴다.
- 하나의 책을 깊이있게 읽거나 한 작가를 따라가는 등의 책읽기를 좋아한다.
- 사색하면서 깊은 질문을 갖고, 책읽는 것을 좋아한다.
- 탐구하거나 깊이있는 스타일의 글에 끌린다.
- 원리를 깨우치게 하는 이론을 좋아한다.
-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글보다 스스로를 충족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 생각이 모두 정리된 이후에 글이나 말로 표현한다.
‘곰씨의 의자’는 곰씨에게만 필요하지 않다.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 자신만의 의자는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 말이다. 이 책에서 곰씨는 내향형 같다. 혼자 몰두하는 시간을 통해 내적 충만함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게 에너지를 쓴다. 토끼 가족 때문에 모조리 자신의 의자를 빼앗긴 곰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향형인 곰씨는 더더군다나 토끼 가족에게 무언가 요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커다란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그동안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본문 중)
속마음을 하나하나 천천히 말을 한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곰씨를 존중했다. 곰씨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조용조용 살금살금 걸었다. 함께 또 홀로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책방 ‘랄랄라하우스’에 사람들이 오면 함께 차를 마시고, 밥도 먹고, 책토론도 하고, 수업도 한다. 하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나만의 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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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내향인과 외향인의 글쓰기 차이 재미있네요. 학교에 있는데 우리 학생들과 공유하며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애옥
랄랄라하우스
너무 감사드립니다!! 내향,외향 말고도 MBTI의 지표들에 따라 글쓰는 법, 책읽는 법, 학습법이 좀 다른 것 같더라고여. 저는 감각형이라 눈에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글이 좋은데...직관형이 쓰는 언어는 좀 다르기도 해요. 어느 정도 쓰다 보면 직관과 감각이 넘나들긴 하지요... 그림책 읽을 때 주인공, 작가의 모습 보면서 MBTI유형으로 이해해보는 것도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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