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주말이다. 아무래도 꼼짝하기가 싫어 보일러 틀어놓고 복슬복슬한 털 실내화 신고 탱고 음악이나 듣고 있다. 박자감 있고 신나는 탱고 음악이 줄줄 나오니 춤추러 가고 싶다. 추운 날에는 붐비는 밀롱가에 가서 사람들하고 커피도 마시고, 춤도 추면 딱 좋은데 말이다. 지난번 나랑 밀롱가에 가본 뒤 탱고 동호회에 가입한 편집자 K님은 어떻게 탱고 생활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편집자 K님은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고 팔로워 수도 많아서 그가 쓴 글에 댓글들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탱고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구나 생각했다.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면서 종종 어디에서 탱고를 배워야 하는지 묻는 분들도 꽤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배웠더라.
내가 탱고를 처음 시작했던 건 7년 전쯤 동남아에서였다. 한참 방콕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일도 힘들고 멘탈적으로도 힘들던 시기였다. 나름 체력 관리도 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기껏 해외까지 나와서 바쁘게 일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왕 태국에 온 거 무예타이를 배워볼까, 태국어를 배워볼까, 춤을 배워볼까 하다가 결국 태국어는 간단하게 언어 교환 정도로만 하고, 무예타이는 시작도 전에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댄스 아카데미를 찾았다.
거기서 우연히 탱고를 시작하게 된 건데(자세한 이야기는 ‘탱고에 바나나’ 프롤로그에 있다.) 그때부터 낯선 밀롱가 소파에 착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나도 언젠가는 멋있게 춤을 추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탱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춤 신청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밀롱가에서도 내내 쭈뼛거리며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아주 가끔 선생님이 와서 춰 주거나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에 두근거렸다.
탱고를 배운 지 2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한국에서 방콕에 놀러 온 언니 한 명을 따라서 키좀바 일일 레슨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키좀바는 아프리카의 전통 춤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탱고와 살사까지 골고루 섞인 춤이라고 알고 있다. 일렬로 서서 수업을 듣는데, 키좀바는 골반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며 다 같이 엉덩이를 섹시하게 흔들었다. 탱고에서는 본 적 없는 움직임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어색하게 엉덩이를 꿀렁거렸는데 옆에 수염이 덥수룩한 유럽계 외모의 외국인도 뭔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꿀렁거리고 있었다. 그 장소에 섹시하지 않은 엉덩이는 별로 없었는데 나와 그 사람은 유독 ‘섹시’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섹시와 내 엉덩이 사이의 괴리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수업은 끝이 났고, 바로 키좀바를 출 수 있는 파티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쌌지만, 나는 초조하게 모히또 한 잔을 쥐고 앉아 있었다.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까 옆에서 엉덩이를 꿀렁거리던 수염 외국인이 나타났다. 산티아고라고 했다. 아르헨티나의 옆 나라 우루과이에서 왔다고 했다.
산티아고도 나도 키좀바는 처음이었지만 같이 춤을 췄다. 열심히 배운 대로 키좀바를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잘 안됐다. 그런데 갑자기 산티아고가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쩐지 나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
“너 탱고 추는구나?”
산티아고가 엄청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산티아고는 키좀바를 추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어물쩍 탱고를 추었던 거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 2개월 배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산티아고가 진중한 표정과 힘 있는 목소리로 “너는 탱고 스타가 될 거야!”라고 했다. 산티아고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배우고 있는 댄스 아카데미에 선생님으로 왔다. 나는 가끔 잃어버린 탱고 자존감을 찾고 싶을 때면 그 옛날 산티아고가 건넨 격려를 곱씹는다.
탱고를 배우기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여전히 튜토리얼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티아고의 말대로라면 나는 벌써 탱고 스타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의 나는 연습도 안 하고, 수업도 안 듣고, 늘핀하게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쯤 밀롱가에 가는 나무늘보 같은 땅게라가 되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하면서 편안해 하다가, 누가 “어우, 저 사람 요즘 연습 안 하나봐. 춤이 오징어야”라고 쑥덕거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든다. 아무래도 산티아고가 준 기(氣)는 다른 사람한테 넘겨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이제 막 탱고를 시작한 편집자 K님한테라든지 새롭게 탱고를 배우는 사람들한테든지 말이다.
지속되는 한파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이다. 곧 있으면 산타와 루돌프가 하늘을 넘노는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다. 혹시 혼자 연말을 외롭게 보내는 사람들이라든지 신선한 자극을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새해에는 탱고가 좋겠다. 연말에는 탱고 행사가 많아서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많다.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이불 덮고 귤 까먹는 것도 행복이지만, 2023년에는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또 다른 행복의 세계로 발 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낯선 세계로의 발걸음이 나를 제3의 인생을 선물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_전국 탱고 동호회 및 아카데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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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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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떼뇨- 부산 진구 부전동 240-5번지 4층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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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에르또- 땅고 부산 부산진구 서면로68번길 41 2층
카페 데 땅고 - 부산 부산진구 서면로68번길 41 2층
탱고 피플 부산(부산탱고카페 이데알)-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241-41, 3층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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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떼데땅고-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95-3 공성상가 3층 하바나
진주
탱고 피플- 진주 진주시 평거동 202-5번지 3층
제주
올레탱고- 제주시 연신로 68
* 매달 18일 '탱고에 바나나'
* 글쓴이 - 보배
탱고 베이비에서 탱린이로 변신 중. 10년 정도 추면 튜토리얼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국어를 가르치는 데에 보냅니다.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Brunch: https://brunch.co.kr/@s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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