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에 바나나

책 출판하고 싶은 사람들 여기여기 모여라!_특별기고_보배

<편집 만세> 서평

2023.09.27 | 조회 1.5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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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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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출판하고 싶어서 지난 여름 세 군데에 난생처음으로 투고해 보았다. 세 곳 모두 메일을 보내자마자 열람하였고, 두 곳에서는 일주일이 되지 않아 거절 메일이 왔다. 한 곳에서는 2025년까지 출간 일정이 거의 다 차 있다고 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제가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거절된 원고를 들고 앞으로 2025년까지 투고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내가 보낸 소재가 너무 편집자 취향이 아니었던 걸까싶어서 풀이 죽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주변에서는 항상 글을 잘 읽고 있다, 읽으면서 행복해진다, 따뜻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좋다,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등의 행복한 피드백만 들렸는데, 실제 출판 세계는 도대체 어떤 야수들의 세계이길래 며칠 만에 가차없이 짤리는 걸까. 편집자의 마음을 사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싶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에 어떻게 하면 출판사에게 간택 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편집자들이 쓴 투고 노하우가 담긴 책도 몇 권 뚝딱 읽었지만 소용없었다. 화려한 척하는 허풍쟁이 자기소개도, 파일을 하나에 묶어 열람하기 쉽게 PDF로 보내거나 폰트를 조절해야 한다는 꿀팁도 모두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영국의 100년 가까이 된 펭귄 출판사의 편집장 레베카 리가 출간한 <편집 만세>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제목 <편집 만세>가 어쩐지 거절 당한 나를 놀리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내용을 읽다보니 묘하게 납득도 되고, 위로가 되었다. 편집자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풀이 죽은 내 자신감도 살살 솔질을 해서 치켜세워주는 듯했다.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안네의 일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빨강 머리 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모두 번번이 거절당한 원고의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내 글도 언젠가 해리포터가 될 수 있다! 출판사가 청탁한 적 없는 작가들에게 받은 각종 문의 편지나 원고를 지칭하는 말인 투고 더미에서 나의 글도 언젠가 멋지게 구출 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숱하게 많았다. 번번이 거절당한 원고 중에는 <안네의 일기>, <캐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파리대왕>, <헬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포함되어 있다. 이걸 보면 내용으로 책을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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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베스트셀러 가능성이 높은 책을 AI 알고리즘을 만들어 분석한 작가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저자의 저명성이나 배경 등의 정보를 완벽히 배제하고 오직 책에 사용된 단어만을 분석했는데, AI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저 적절한 단어를 적절한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에 좌우될 뿐이라고 결론을 낸다. 모든 저자들의 글은 흰 종이에 검은 잉크로 쓰였을 뿐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으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수성이나 개성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도 AI의 분석에서 나름 유용한 팁을 찾기도 했다.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인간의 친밀성이나 감정을 일상적인 언어로 적어낸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평상시에 적어두는 가벼운 일상의 기록들이 어쩌면 작가로서의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희망도 생겼다

“알고리즘은 각각의 원고에서 수천 개의 데이터 요소를 가져와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종합 점수를 제공했다. 이 데이터에는 주제(가장 많이 등장하고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친밀성, 즉 캐릭터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줄거리(알고리즘에 따르면 3막 구조의 대칭적 줄거리가 베스트셀러를 보장하는 특징이었다), 문체(특별히 문학적인 언어보다 일상적 언어를 잘 구사하는 작가를 선호한다고 나타났다), 캐릭터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동사들이 포함되었다.” - 77쪽

이것 외에도 책에는 편집자의 원고 발굴 과정이나, 편집자가 원고를 선택할 때 눈 여겨보는 지점들에 대한 살아있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편집이 윤문의 고충이나 팩트를 체크해야 할 때의 골치아픔 같은 것들도 솔직하게 적혀 있어서 책을 읽다보면 편집자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가볍게 쓰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묵직한 일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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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이 어떻게 탄생하는가’, ‘글은 어떻게 더 좋아지는가’, ‘글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의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글이 어떻게 탄생하는가파트를 신나게 읽고 넘어오니 더 유익한 내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은 어떻게 더 좋아지는가였다. 가장 공감하면서 봤던 부분은 교열과 문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고로 글은 정확하고(Correct), 명확하고(Clear), 응집성 있어야 하며(Coherent), 일관되어야(Consistent) 한다는 ‘4C’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건 저자에게도 유용한 메시지였지만, 동시에 좋은 교열자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 책은 기존의 작가들에게도, 예비 작가들에게도, 그리고 편집자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듯싶다.

문자의 예술이자, 글 속에서 보이지 않는 리듬감을 담당하는 문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문법 사항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저자도 모르는 사이에 비문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라 방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참 어렵다. 문법적인 기술은 본능적으로 작동되는 거라 독자들도 읽다가 비문을 만나면 그 한 문장에서 지체되는 순간들이 생기고 만다. 단순히 편집자만 믿고 맡길 일이 아니라, 나만의 아름다운 문장 만들기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특히 나처럼 편집자 없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말이다.

“문법이 없으면 글은 의미가 없고, 뉘앙스를 좀 더 살리려면 문장 부호의 은근한 도움이 필요하다. 문장 부호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접하는 여러 생각 사이에 숨 쉴 틈을 마련한다. (중략) 문법은 전기나 영혼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글 속에 존재할 때 비로소 살아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할 수 있다.” - 132쪽


출처@윌북 제공 
출처@윌북 제공 

이 책을 읽으면서 유쾌하고 명확한 메시지에 위로도 받고, 공감도 하면서 동시에 반성도 많이 했다. 유쾌하다고 쓴 이유는 책을 직접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저자 레베카 리의 센스와 속도감에 감탄하면서 순식간에 읽게 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어느새 투고 거절에 상처 받은 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영국의 출판 세계는 어떤지, 넓은 은하수 같은 편집 세계를 유영하는 나만 남았을 뿐이었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펭귄 출판사 편집장이 말하는 한 권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 궁금하다면, 곧 윌북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편집 만세>를 읽는 것도 좋겠다. 밑줄 그으면서 읽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독서 플래그(밑줄 스티커)를 절반 넘게 쓴 것 같다. 그만큼 유용하고, 해박한, 동시에 아주 유쾌한 책이다

"좋은 책은 다 비슷하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더 실제 같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그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처럼 느껴지며, 나중에는 모두 자기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좋은 일과 나쁜 일, 황홀경, 후회와 슬픔, 사람과 장소, 그리고 날씨까지도. 만약 당신이 이런 감각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면, 당신은 작가다" - 129쪽

 

 

* 서평 도서 소개 - <편집 만세>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2478797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펭귄 출판사 편집장인 리베카 리,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까지 편집자의 손길을 거치는 출판 과정의 면면을 꼼꼼하고도 유쾌하게 소개한다.

100퍼센트 완벽에 가까운 세계에 가닿기 위한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원고는 조금씩 더 좋은 글이 된다. 기획, 교정과 교열, 팩트 체크, 윤문, 색인 작업… 이 마법 같은 일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글을 대신 써주는 유령 작가가 실제로 존재할까? 작가가 원고 집필을 끝낸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책이 될까? 편집자는 오탈자와 비문을 잡아내는 데 하루에 몇 시간을 쓸까? 광활한 편집의 세계에서 매일 벌어지는 다채로운 사건과 활기찬 과정을 20년 경력 베테랑 편집자의 관록 어린 시선으로 소개한다. 색인(찾아보기)이 있는 책 특유의 재미를 누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번역과 교정 전후로 글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에 관한 내용이 가득하다. 또 파피루스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지나 전자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매체에 얽힌 역사적 흐름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 해당 뉴스레터는 윌북의 협찬으로 제작되었으며, 필자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읽고 진정성 있게 추천하는 글입니다. 

 

* 글쓴이 - 보배

탱고 베이비에서 탱린이로 변신 중. 10년 정도 추면 튜토리얼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sele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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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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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nlady의 프로필 이미지

    penlady

    0
    about 1 year 전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29쪽 인용문단 와닿네요! 보배님의 투고 원고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세상이, 아니 출판사 편집자가 알아줄 때까지 오늘도 글을 쓰는 작가이시길 바래요. (나와 결이 맞는 편집자가 꼭 있을 거예요!)

    ㄴ 답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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