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학생 기초 조사표’를 가져왔다. 늘 그렇듯이 학생 인적사항과 가족사항, 그리고 교우관계와 건강상태 등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설문지였다. 학급 담임 선생님이 학생 지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서식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내민 종이마다 양식이 달랐다. 그냥 ‘학생 기초 조사표’라는 제목부터 ‘선생님께 알려 드리는 자녀 이야기(학부모님 작성용 설문지)’라는 제목, ‘반갑습니다. 저는요?’라는 제목까지 질문도 분량도 같은 종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반갑습니다. 저는요?’라는 제목이 적힌 질문지는 학생이 스스로 작성하도록 만든 양식이었다. 그런데 동굴 같은 목소리를 내게 된 이후로 말도 별로 하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다가와 이걸 살갑게 내밀고 가는 게 아닌가. 아이가 웃는 얼굴을 보고 반갑고 기쁘던 마음이 곧 실망으로 식어버렸다. ‘다 큰 녀석이 이것도 못 적겠다는 거냐’ 힐난하는 소리가 무릎반사하는 다리처럼 튀어 오르려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고치고 질문지를 받아들었다. 저녁밥 차리기 전에 아이들 가정통신문을 모두 읽고 회신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하리라 마음먹은 참이었다. 그래도 중학생이나 되는 녀석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이모에게 내맡기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싶어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건 네가 전부 적어 오라고 하는 것 같은데?”
“도저히 못 적겠어요. 이모가 좀 적어주세요.”
영 비워놓은 종이는 아니었다. ‘이 자료는 담임 선생님 외 누구도 보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작성해 주세요.’라는 문장 아래로 학년, 반, 번호, 이름에 생년월일, 집 전화번호, 특기, 흥미, 가장 친한 친구 이름, 장래희망까지 스스로 답변을 다 채워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저희 집을 소개합니다.’라는 문장 아래 커다랗게 그려놓은 표부터 빈칸이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 나이, 휴대폰 번호, 동거여부, 나와의 친밀도를 각각 묻고, 그 아래 칸에서는 형제자매의 이름과 나이, 학교, 휴대폰 번호, 나와의 친밀도까지 답하기를 요청하는 표였다.
아이가 쓰다 말고 나에게 이 종이를 가져왔을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나 역시 우리집 아이 누구의 설문지를 쓰든 이름, 생년월일, 주소를 쓸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렇지만 ‘가족사항’란이 나올 때마다 볼펜 쥔 손을 놓고 조금씩 머뭇거리게 되었다. 가족구성원들의 관계를 묻는 칸에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단어 대신 우리가 사용하는 직함을 쓰고 그 옆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채워 넣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을 졸이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만 본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반 친구가 곁눈질하다가 특이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 어떡하지? 친권을 가지고 있는 친모의 이름과 연락처는 적지 않아도 될까? 형제처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지만 형제란에 다른 아이들의 기록을 하지 않고 두는 편이 낫겠지? 이렇게 답변한 설문지를 챙겨가는 아이의 표정은 평소와 똑같은데, 마음도 그런 걸까?
오늘은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얹은 듯이 키가 자란 이 아이가 아버지의 이름과 나이, 핸드폰 번호, 동거여부, 자신과의 친밀도를 묻는 새 담임 선생님의 질문지를 받고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칸을 비운 채 나를 찾아온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감정 표현이 별로 없어도 숙제만큼은 성실히 해가는 녀석이었다. 답을 적었다 말았다 한 그 종이를 싱긋 웃으며 건네고 가버린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 우리 관계는 일반적인 가족의 규격에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통념이 지배하는 단답식 질문지로는 도저히 우리를 설명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는 아이를 낳아준 친엄마가 따로 있고, 나에게는 내가 낳은 딸들이 따로 있다. 나는 이 아이의 보호자로서 어른의 역할을 도맡지만 아이에게 법적으로 친권을 갖는 관계는 아니다. 때로 서로를 견딜 수 없게 미워할 만큼 가까운 사이지만 화를 억눌러 말조심을 할 수 있을 만큼 먼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가 하루에 타월을 몇 장 사용하고 속옷을 얼마나 자주 갈아입고 요새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핸드폰을 얼마나 오래 보는지 책은 좀 읽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보살피지만, 아이가 너무나 미울 때는 사표를 내고 훨훨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월급만 아쉽지 않다면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아이가 기가 차고,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앓을 아이가 생생해서 속을 끓인다.
“이모, 심심해, 심심해.”
아이들 학생 기초 조사표에 온갖 가정통신문까지 다발로 들고 씨름을 하는 사이 초등학교 이학년이 된 막내가 심심하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함께 봤던 치즈폭탄밥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건 요리를 하면서 같이 놀자는 소리다. 부엌일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막내가 곁에서 수선을 피우는 사이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치즈폭탄밥피자가 완성되었다. 이게 저만을 위한 메뉴인 걸 아는 막내가 볼까지 발그레하게 만들며 쩝쩝 소리를 내었다. 그러면 앞치마도 미처 벗지 못한 나는 그 이상 바랄 게 없는 얼굴로 곁에 앉아 숟가락을 들게 되었다.
큰아이들은 구미에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나는 그래도 먹으라 성화를 부린다.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자꾸만 밥을 짓고 밥을 먹으라 성화를 부린다. 나도 안다. 어느 날엔 아이가 식당에서 튀긴 치킨 한 마리를 더 먹고 싶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다 먹고 난 종이 포장지와 식탁 위에 흩어진 치킨 가루를 치우고 나면 혀끝에 남은 콜라 단맛만큼이나 텁텁하고 헛헛해지던 마음 또한 잊지 못한다. 배는 부른데 뭔가 부족한 것만 같은 그 이상한 허전함이 싫었다. 내가 곁에 있는데도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까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소박하지만 손맛이 담긴 밥상의 기억이 우리에게 퇴적되기를 기다린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을 담아 부엌칼을 두드리고 찌개를 끓이고 달걀물을 푸는 손길이 일으키는 기억이 아이들의 마음 주머니 속에 손난로처럼 온기를 불러일으키기를 기도한다. 때론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외롭고 힘들 때도 곁을 지키며 질기게 보듬어줄 어떤 존재를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끼는 사람에게는 식당에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그 구수하고 맛깔난 것을 주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족은 피도 규격도 아니라 ‘기억(이야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이것만은 꼭 해주시면 좋겠어요!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을 하나씩 꼬~옥 표현해 보세요!’라는 문장 아래에도 칸이 하얗게 비어있었다.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께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아이를 대신해서 이렇게 문장을 채워 보았다.
‘보이지 않는 가슴’
그룹홈에서 일하는 보육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네 아이와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