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는 수시로 구직사이트를 뒤지고 집을 보러 다닌다. 고작해야 대학교 다니는 내 딸보다 몇 살 더 많은 사람 같았다. 이력서에 적은 직장이 네 개나 되지만 여섯 달도 안 되어 그만 둔 직장이 두 개다. 나머지 두 군데도 얼마나 다녔는지 모른다. 일자리가 무척 간절한 것 같은데 입사한 직장들이 죄다 몇 달만에 경영악화로 퇴사 권고를 했고 엄마는 수술을 해서 병간호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섯 번째 경리직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더존 프로그램을 쓸 줄 모른다. 세무사 사무소에 자료 넘기는 단순한 일만 할 줄 안다.
살던 동네는 재개발되었다.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찾아왔다. 돌아가신 아빠가 평생 모은 재산 5천만 원은 여섯 평 남짓한 반지하방 전세금으로도 위태롭다. 병약한 엄마와 같이 살 전셋집을 서울에서 구해야 한다. 집 같지도 않은 집들을 보러 다닌다. 방안에 서 있으면 옆집에서 감자 조리는 냄새가 바로 곁인 듯 생생하고 창문을 열면 지나가던 행인들 발길이 머리통을 걷어찰 것 같은 집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10년째 공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와중에 돈 빌려달라는 얘길 꺼낸다.
수영 언니가 가산디지털단지 웹툰회사 경리직 일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언니는 다른 웹툰 회사 그림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위 높은 성인 웹툰을 그리면서 반년 만에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언니의 꿈은 웹툰 작가였다.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지독한 웹툰을 그리는 수영에게 미조가 물었다.
미조는 수영 언니와 술을 마셨다. 미조는 구직 면접을 망쳤고 수영은 새로 시작한 그림 내용이 이전보다 심각해졌다. 복장이 기묘한 한 여자가 거리를 지나갔다. 캉캉치마처럼 겹겹이 단을 댄 짧은 치마에 머리를 양 갈래로 높게 묶고 리본 장식이 달린 무릎 양말을 신었다. 돌아선 여자의 얼굴은 사십대 후반에 가까웠다. 회사원 무리를 기웃거리며 전단지를 건네고 말을 걸었다.
“다 됩니다, 다 돼요.”
미조는 뒤미처 무슨 뜻인지 깨닫고 인상을 찡그렸지만 수영은 뭘 그런 걸로 심각해지냐고 말했다.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넌 내가 온종일 어떤 걸 그리는지 알면 기절할걸.”
책장을 덮고 싶었다. 다 하겠다는데. 원하는 건 다 하겠다는데. 몸이고 정체성이고 꿈이고 나발이고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얼굴과 행색, 행동이 우습고 끔찍하고 기묘해보인다는 사실을 직면하기가 힘들었다. “됩니다, 다 돼요”하는 여자의 말 위로 “받아들여. 다 마찬가지야. 어딜 가든 똑같아.”하는 수영의 말이 겹쳐 들렸기 때문이다.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겠다고 하는 발버둥인데 이렇게 추할 일인가 싶어서 화가 났다.
“나는 그런 회사 다니기 싫은데” 하고 대꾸하는 미조 역시 믿음직스럽기는커녕 대책 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그런 회사라도 다니기 싫으면 어떡할 건데? 지금 네 처지에 먹고 사는 일을 당장 어떡할 건데? 다그치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오려고 했다. 생활비를 쥐여줄 것도 아니면서 내 딸 같은 미조한테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그 일을 찾아봐, 잘할 수 있을 거야, 해맑게 웃으며 응원할 수 없었다.
미조의 엄마는 돈을 벌지 않았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혼자 사는 노인한텐 집주인들이 집을 잘 주지도 않는다는데. 대신 매일 한 편씩 시를 썼다. 미조가 써 보라고 했다. 엄마가 중증 우울증 판정을 받았을 때. 미조 자신이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독이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매일 시를 쓰고 낭송했다. 온종일 일자리를 구하고 집을 구하던 미조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엄마가 쓴 시를 들었다. 원망도 않고. 그런 엄마라도 품속을 파고들어 위안을 찾는 미조의 어깨가 너무 무겁고 복잡해보였다.
엄마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읽은, 오늘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미조는 시를 듣고 나서 본인의 하루와 엄마의 하루가 얇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겹치지는 과정을 떠올렸다. 수영도 언젠가 미조에게 문자로 그렇게 적어보낸 적이 있었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려서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레종(담배 이름)과 도림천에 버려져 있다고. ‘떡집에서 못 팔고 버린 떡 같은 하루’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재능이 많아도 최선을 다해도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없는 현실을 확인한 하루인 건가.
대륭포스트타워에는 구로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다고 했다. 60년대 가발공장의 여공들, 70년대 공업단지공장, 80년대 한국수출산업공단, 2000년대 G밸리의 밤 풍경. 그 사진 앞에 서서 수영이 미조에게 말했다.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미조는 수영이 보낸 문자를 다시 받는다.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웹툰이 진짜 잘 팔리는 상황에 갇혀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수영이 도림천에서 혼자 돛대를 피우며 문자를 보냈다. 답장하는 대신 미조는 일기장을 펴 든다. 벽 너머에선 엄마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서수 작가는 「미조의 시대」라는 소설의 마지막 단락,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정리한다.
시대가 돈을 들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질문하며 따라온 소설인데 말이다. 마지막 정리가 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멀고, 꿈은 더 가까운 그런 밤이라니. 역시나 답이 없는 건가, 좌절했다. 어쩐지 처음부터 읽고 싶지 않았었다. 가뜩이나 먹고 사는 일이 심란하고 불안한데. 직장도 없고 돈도 없는 딸아이 또래의 젊은 여자 이야기까지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읽지 않아도 갑갑함이 이미 생생해서 싫었다. 미조 엄마가 쓴 싯구절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도시의 주인이 나의 발끝에 불을 놓았다.” 이서수 작가가 ‘떡집에서 못 팔고 버린 떡 같은’ 우리의 하루를 확연히 드러내면서 ‘나의 발끝’이 아니라 마음에 ‘불’을 놓은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조처럼 내가, 과로에 시달리는 밤에도, 인생사 복잡함이 가슴을 옥죄여 올 때도, 잠을 줄여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현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성경책 히브리서 구절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밥을 짓지도 못할 만큼 평생 통증에 시달린 사람이었지만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웃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은 엄마가 어린 나에게 보낸, 그 보이지 않는 애정과 믿음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조의 엄마가 시를 쓰고 미조가 일기를 쓰는 일상이 이 막막한 세계에 보이지 않는 틈을 열어내지 않을까, 내심 희망했던 것 같다. 시대가 돈을 들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자기만의 대답을 그 안에서 만들어 가지 않을까, 희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가장 강력하게 신뢰하는 결말일지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가슴’
그룹홈에서 일하는 보육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네 아이와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2022년 3월부터 지금까지 23편의 글을 연재했습니다. 그룹홈 안의 역할이 많아지고 일들이 쌓이게 되면서 연재 글 올리는 것조차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쩍 부족한 글을 올리게 되면서 얼마나 죄송하고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아쉽지만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세모문 뉴스레터 연재를 마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족한 글도 성심껏 읽고 공감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힘을 내서 쓰고 일하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더욱 성장하고 깊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도록, 읽고 쓰는 시간만큼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